오메트르 [원] Aumaitre, Pierre

Aumaitre, Pierre(1837∼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한국성(姓)은 오(吳). 프랑스 앙굴램(Angouleme) 교구의 에젝(Aizecq)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1862년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 해 6월 14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이어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프랑스를 떠나 1863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입국 후 수원(水原) 근방의 샘골[泉谷里]에서 조선어를 익히고 곧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가 전교하고 있던 충청도지방으로 내려가 전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고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위앵(Huin, 閔) 신부와 함께 자수, 3월 30일 충남 보령(保寧)의 갈매못(일명 고마수영)에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장주기(張周基), 황석두(黃錫斗) 등과 함께 군문효수(軍門梟首)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 후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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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제네스주의 [한] ~主義 [라] Origenismus [영] Origenism [독] Origenismus

넓은 의미에서의 오리제네스주의란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자 교부인 오리제네스와 그에게서 사상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장한 학설(學說)을 총칭하는 말이지만 좀 더 엄밀하게 규정하자면 그 가운데서도 특히 논쟁이 재기되었던 영혼선재설(靈魂先在說), 썩을 운명에 있는 육신과 부활할 육신의 분리설, 삼위일체에 관한 종속주의적인 입장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에게서 영향을 받은 오리제네스가 확립하였으며, 그의 제자인 디오니시오(Dionysius), 테오그노스토스(Theognostos), 디디모(Didymus)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아나스타시오(Anastasius),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enus), 바실리오(Basilius)를 비롯한 3∼4세기 신학자들의 사상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리제네스주의에 대한 반론은 3세기말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페트로스(Petros)와 올림포스의 메토디오스(Methodios) 등이 ‘영혼의 선재’와 “죽을 육신과 부활한 육신이 동일하지 않다”는 오리제네스의 설에 대해 공격하고 나섰고, 이에 대하여 체사레아의 팜필로스(Pamphilos)와 에우세비오(Eusebius)가 반박하면서 논쟁은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또한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동일실체(同一實體, consubstantiality)에 관한 교리’가 확립되면서 오리제네스가 주장한 삼위일체설이 정통성이 논의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이럴 즈음 에피파니우스(Epiphanius)가 그의 저서 ≪전체이단통박서≫에서 오리제네스를 최대의 이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른바 제1차 오리제네스주의 논쟁이 일어났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테오필로(Theophilus)의 중재에 의해 양자가 화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루피노(Rufinus)가 예로니모(Hieronimus)를 오리제네스주의적 경향을 지닌 인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재연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400년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회의는 오리제네스를 이단이라 선고하였다. 교황 아나스타시오 1세를 비롯한 동방의 많은 주교들이 이 결정에 동의하였고, 오리제네스주의자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에게 망명함으로써 논쟁은 끝났다.

오리제네스주의는 그 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6세기경에 예루살렘 부근의 사바스수도원을 중심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동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메나스(Menas)를 중심으로 한 반(反)오리제네스파들은 오리제네스주의를 규탄하고 나섰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칙령 <메나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오리제네스주의자들을 탄압할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하였다.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반오리제네스파의 주장을 반영하여 디두모스까지 이단으로 선고하였으며, 이에 찬성하지 않았던 아빌라의 알렉산데르(Alexander)를 추방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2차에 걸친 오리제네스주의 논쟁은 막을 내렸지만 오리제네스주의는 막시모(Maximus Confessor)를 비롯한 신학자들에게 계속 남아 있었다.

[참고문헌] K. Holl, Gesammelte Aufsatze, II, s. 310-35 / F. Die Kampf, Die origenistischen Streitigkeiten im sechsten Jahrhundert und das funfte allgemeine Konzil,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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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제네스 [라] Origenes

Origenes(185?∼254?). 알렉산드리아의 성서학자이며 주석가. 교부.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으며 202년의 박해 때 부친을 여의었다. 주교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의 충돌로 피신한 교사 글레멘스(Clemens)대신에 알렉산드리아 교리신학파의 지도자로 지명되었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영위하였다.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 마태오 복음서 19장 12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또한 이교철학자와의 호교적 논쟁에 대처하기 위해 신플라톤주의와 이교문학을 공부하였다. 215년에 이어 230년 팔레스티나의 재방문 때 그 곳 주교들에 의해 서품받은 문제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추방되어 231년 체사레아(Caesarea)에 정착, 그 곳에 유명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250년 데치우스(Decius)의 박해로 고문받았으며 끝내 사망하였다.

성서주석서로는 ≪핵사플라≫(Hexapla)가 유명하며 그 밖에 그의 성서주석은 구약의 거의 전부와 4복음서들을 망라하고 있다. 신학서는 ≪원리에 대하여≫(De Principiis)가 주목되며 금욕적 저서 ≪순교에의 권고≫와 ≪기도에 대하여≫가 고대에 널리 읽혔다. 마르치온설을 반대한 그의 교리는 완전히 초월적인 일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였으나 철학적 사색은 가끔 매우 대담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의 정통성은 가톨릭 교회로부터 다소 의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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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토독시 [라] Orthodoxia [독] Orthodoxie

오르토독시(Orthodoxy)란 말은 그리스어 ‘오르도스’(orthos, 올바른)와 독사(doxa, 의견)의 합성어로 ‘올바른 믿음’을 가리키며 비정통적인 이설(異說, heterodoxy)나 이단(異端, heresy)이 아닌 정통신앙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보존하고 있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전통적으로 사도들에 의해 계승되어온 보편적인 가르침”을 가리킨다. 동방교회들을 에페소 공의회와 칼체돈 공의회를 인정하는 교회들이야말로 ‘성스럽고 보편적인 정통교회’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정통신앙을 보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계승자인 로마 주교와의 유대를 맺지 않고 있는 동방교회의 신앙이 정통신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베드로의 유일한 계승자인 로마 주교의 지도아래 있는 가톨릭 교회가 정통신앙을 보존하고 있음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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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도 [라] Ordo

① 성사 기타 전례 집전을 위하여 성청이 펴낸 여러 예식서의 하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미사와 성사의 개정된 부분을 반영하는 새 예식서들이 간행되어 왔다. ② 매일 미사와 성무일도(聖務日禱)에 대한 지침이 간략히 명기되어 있는 전례주년 캘린더. 각 교구나 관구 또는 수도회는 자체의 오르도(Ordo)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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