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한] 五倫臺韓國殉敎者紀念館

한국 순교자들의 순교정신의 증거와 희생의 흔적을 기리면서 이 땅의 후예들에게 순교자들의 정신과 그 사랑의 위업을 전달하기 위하여 1982년 9월에 설립되 기념관. 한국순교복자수녀회(韓國殉敎福者修女會)의 창설 초창기부터 윤병현(尹炳賢) · 홍은순(洪恩順) 수녀 외 많은 수녀들이 순교자들의 유물 서책(書冊) 및 형구(刑具) 등을 수집하여 연구하고 간직해오다가 1973년부터 기념관 설립계획에 착수하여 1982년 개관하였다. 기념관 내에는 순교자들의 유품뿐만 아니라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부인의 협력으로 왕실 관계 의상과 장신구 등의 유물도 전시되어 있고, 순교자성당 및 부산(釜山)에서 순교한 8사람의 순교자들의 유해도 이장되어 있다. 또한 한국가톨릭문화연구소도 설립되어 있어 연구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현재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 산 15의 1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관장으로는 한국순교 복자수녀회의 김옥희(金玉姬) 수녀가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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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대 [한] 五倫臺

순교자 묘지, 순교자 기념관, 순교자 기념성당, 한국 순교복자수녀회 소재지. 이곳에는 1868년 6월 수영장대(水營將臺)에서 군문효수(軍門梟首) 당한 동래 전교회장 이정식(李廷植, 요한), 그의 아들 이관복(李寬福, 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소사(朴召史, 마리아), 조카 이삼근(李三根, 베드로), 이월주(李月柱, 야고보), 차장득(車長得, 프란치스코), 양재현(梁在鉉, 마르티노), 옥소사(玉召史, 발바라)의 묘가 안장된 곳. 이들은 ‘박근기(朴根基) 사건’이 일어나 체포되었으며, 모진 악형에도 배교하지 않고 마침내 순교하였다. 유해는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갈멜수녀원 뒷산 등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7일 이 곳 오륜대로 이장되었다. 오륜대에는 이들의 순교 100주년인 1968년 한국 순교복자수녀원이 설치되었고, 순교복자기념관 및 기념성당도 아울러 건립되었다.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 산15의 21에 있는 복자수녀원 안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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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회 [한] ~會 [라] Oratoriani [영] Oratorians

1564년 성 필립보 네리(Fillippo de Neri)에 의해 창립, 1612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공인된 공동생활을 하는 재속사제(在俗司祭) 및 수사의 모임. 수도회는 아니다. 그 후 다년간에 걸쳐 여러 종류의 독립된 공주(共住)생활의 주원(住院)이 존재해왔으나 1942년 연합조직이 결성되었다. 회원인 사제와 수사가 공식서원을 하지 않은 채 공동생활을 한다. 원장(院長)은 3년마다 선출된다. 오라토리오회의 목적은, 특히 학생과 청년들 사이의 사목활동, 설교, 교육에 의해 영적 · 지적 발육을 촉진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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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토리오 [라] oratorio [관련] 가톨릭음악

⇒ 가톨릭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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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따 줄리아

오따 줄리아(?∼1651).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가 그 곳에서 순교한 조선인 동정녀(童貞女). 오따(大田)는 일본식 성(姓), 줄리아는 세례명. 1900년 중국 상해에서 간행된 심용제(沈容濟) 신부의 ≪高麗致命事略≫에는 왕족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있다[有一高麗王族李氏女子 聖儒立亞被倭將]. 임진왜란 때 천주교인 왜장(倭將) 고니시 유끼나가(小四行長)에게 3살의 어린 나이로 붙들려 일본으로 끌려간 뒤, 고니시 유끼나가 부부(夫婦)에게 입양되어 어려서부터 양모(養母) 유스티나의 종교적 교육을 받아 성장했고 예수회 선교사 모레혼(Morejon)신부에게 영세하고 수도자와 같은 극기 · 인내 · 기도로써 생활하였다.

1600년 양부모가 죽은 뒤 도꾸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가 정권을 잡게 되자 도꾸가와의 시녀(侍女)로 들어갔고, 그 뒤 도꾸가와의 천주교 박해령으로 일본내의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 또는 유배당하게 될 때 오따 줄리아도 도꾸가와에게 배교의 위협을 받았으나 배교를 거부하고 21세 때인 1612년 4월 20일 유배형을 받아 오오시마(大島), 니이시마(新島)를 거쳐 이해 6월 고오즈시마(神津島)로 유배되었다. 유배형을 받고 배에 오르기 전 항구까지의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을 오르는 예수를 묵상했고 또 예수회 선교사 파에즈(Paez) 신부에게 자신의 유배소식과 함께 기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한 교우로부터 유배도 일종의 긴 순교라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유배길에 올랐다. 고오즈시마에 도착 후, 양부(養父)의 친구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후손들의 보호를 받아가며 어렵게 생활했으나 그러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항상 극기와 인내와 기도를 잊지 않았다. 1651년 40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인 고오즈시마에서 사망하였다.

그 뒤 1958년 12월 25일 일본인 교우들과 교포교우들이 최초로 오따 줄리아를 추모하는 행사와 함께 기념비를 고오즈시마에 세웠고 1970년 고오즈시마에서 제1회 줄리아제(祭)가 열린 후 지금까지 매년 줄리아제가 열리고 있으며 1972년 10월 26일 묘토(墓土)가 환국되어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광장의 줄리아 기념비 유택(幽宅)에 안장되었다.

[참고문헌] 고오즈시마(神津島)의 별, 경향잡지, 통권 1255호, 1972. 10 / 韓龍煥 · 徐相堯 共著, 福音의 證人,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 1972 /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上, 분도출판사, 1979 / 平田都 · 田村裏次 共著, おたわヅコリフ, 東京中央出版社,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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