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에서는 섞인 것이 조금도 없는 순전한 비물질성(非物質性)을 영성이라고 부른다. 본질적으로 적어도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品性)이나 성질, 또는 천부(天賦)의 총명을 영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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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서는 섞인 것이 조금도 없는 순전한 비물질성(非物質性)을 영성이라고 부른다. 본질적으로 적어도 본질 및 활동에 있어서 물질에 의존하지 않는 정신적인 것의 속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신령스럽게 총명한 품성(品性)이나 성질, 또는 천부(天賦)의 총명을 영성이라고 한다.
천주교 용어로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쓰여 왔으나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영복’이란 본래 ‘영원한 복락(福樂)’의 약어(略語)로서 만들어진 말인데, 뜻은 천당에서 받는 영원한 복락을 가리킨다. 이 말의 반대말에 해당하는 것은 ‘영벌’(永罰, damnation) 즉 ‘영원한 벌’이다.
‘영복’을 받는 사람은 의인(義人), 또는 죄를 짓지 않고 애덕(愛德)의 생활을 하다가 숨진 사람으로서, 이들은 그리스도의 판결로 영원한 생명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서 비로소 이 영원한 복락을 누릴수 있다. 하느님에게서의 축복을 받은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끝이 없는 행복의 상태를 말한다. 이 표현은 영원히 행복이 계속된다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의 충만도 의미한다. 이러한 생명의 충만을 신자는 이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가함으로써 가지고 있다. ≪한불자전≫(韓佛字典)의 풀이에 따르면, ‘영복’은 ① 천구의 성인들의 영화와 행복, 또는 영광스러운 행복, ② 영원한 행복(bonheur eterenel)을 의미한다.
악마와 저주받은 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히 받는 형벌. 세상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거절하고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아니한 사람은 죽고 나서 공의(公義)하신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저주받은 자’(마태 25:41)들은 “영원히 벌받는 곳으로 쫓겨날 것이며,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마태 25:46). 성서의 말씀에 따라 교회는 지옥의 영벌이 있다고 가르친다(Denz. 780).
스콜라 신학자들은 영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면, 지옥의 영벌은 세상에서 지은 죄에 상응해야 하는데, 죄란 인생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등지고 하느님 외의 다른 것들을 마치 최후 목적인 양 추구하는 것이므로, 그 벌 또한 하느님을 잃는 형벌뿐 아니라 다른 것들로부터 해(害)를 받는 형벌을 당해야 한다. 전자를 실고(失苦, poena damni), 후자를 각고(覺苦, poena sen년)라 한다. 실고는 모든 행복의 근원이요 선 자체이신 하느님을 영원히 만나지 못함으로써 당하는 고통이다. “분명히 들으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 모릅니다”(마태 25:12). 각고는 성서에서 인간 육신이 느끼는 아픔에 비유하여 기록한 고통이다. 지옥의 통곡은(마태 8:12, 22:13) 마음의 아픔으로, 죽지 않는 독충(毒蟲)은 양심의 가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 때 세례명을 받은 신자는 한 성인(聖人)의 축일을 자신의 영명 축일로 지킨다. 이 날은 친지들의 축하를 받으며 미사에 참석하고 성체를 영(領)하는 등 특별히 기념된다. (⇒) 세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