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레 [원] Eire [관련] 아일랜드

⇒ 아일랜드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에우티케스주의 [한] ∼主義 [영] Eutychianism [관련] 그리스도단성론

5세기에 발생한 역사상의 설(說.)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이 우리들과 동질(同質)이 되는 것을 부정하고, 또한 강생(降生) 이전에는 2개의 성이 있었으나 강생 이후에는 신성(神性)과 인성이 구별이 없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이 발생하였다. 그 초기의 단성론자들 중에서 주창자(主唱者)는 콘스탄티노플 교외의 수도원장 에우티케스(Eutyches, 375?~454?)였다.

이들의 주장은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은 448년 콘스탄티노플 지방회의에서 드류라이온의 주교 에우세비오에 의해 단성론적 이단으로 고발당하여, 총대주교 플라비아노(Flavianus)에 의해 파문과 동시에 파면당하였다. 이에 대해 에페소 군도공의회(群盜公議會, 449년)에서는 반대로 그가 정통신앙임이 선언되어 복직했으나, 451년의 칼체돈 공의회에서는 이 파의 총수(總帥) 디오스코로스(Dioskoros)가 파면 추방되고, 에우티케스도 후일에 추방되었다. 현재도 아직 동방에서 콥트교회와 시리아의 야곱파교회가 이 단성설을 주장하고 있다. (⇒) 그리스도단성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에우티케스 [라] Eutyches

Eutyches(375?∼454). 콘스탄티노플의 교외수도원장.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이단자.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의 수창자(首唱者)로,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이 우리들과 동질(同質)임을 부정, 또한 강생(降生) 전에는 2성이 있었으나 강생 후에는 신성(神性)과 인성의 구별이 없어졌다고 주장하였다. 처음에 동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궁정에 세력을 가지고 네스토리우스파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콘스탄티노플 지방회의(448년)에서는 오히려 드류라이온의 주교 에우세비오에 의해 단성론적 이단으로 고발당하고, 총대주교 플라비아노에게 파면당하였다. 이에 대해 에페소 군도회의(449년)에서는 거꾸로 그가 정통신앙임이 선언되어 복직했으나, 칼체돈 공의회(451년)에서 그 파의 총수 디오스코로가 파면 추방되고, 그 자신도 후에 추방당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에우제니오 [라] Eugenius

Eugenius, 3세(1383∼1447). 교황(재위 : 1431∼1447). 원명 Gabriel Condulmaro. 베네치아 태생.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의 조카. 젊어서 아우구스티노파(派)의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시에나 주교(1407년), 추기경(1408년)이 되었다. 교황으로서의 그는 수도자적 경향이 강하고 정치적 경험은 부족하였다. 폭동이 일어나 피렌체에 망명하였는데(1434∼1443년), 그동안 바젤 공의회에 대항하여 교황의 권위를 수호하려고 분투했으나, 공의회측은 마침내 펠릭스 5세를 대립교황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망명지에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교회와의 합동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 조약은 오래 가지 못했으나 그의 권위를 강화하게 되었다. 이 르네상스 아성인 피렌체에 체재 중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접촉하여 문학 · 예술의 비호자가 되었다. 로마로 돌아와(1443년) 이듬해 터키인(人)에 대한 십자군을 일으켰으나, 바르나(Varna)에서 패배하였다. 임종의 자리에 누운 그에게 독일황제 사절은 화해와 복종을 하겠다는 선언을 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바젤 회의에서 승리한 셈이며, 이 승리와 앞서 적은 교회합동은 교황청의 새로운 흥륭(興隆)에 공헌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에우세비오 [라] Eusebius

① 체사레아의~(E. Caesariensis, 260?~339).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사가.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팔레스티나 태생. 스승인 팜필로스(Pamphilos)를 통해 오리제네스(Origenes)의 계보 학통(學統)을 이어 오리제네스가 수집한 카이자리아의 그리스도교 도서관에서 학구의 일생을 보냈다.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 284~305)의 대박해 때까지는 카이자리아의 장로로 있다가, 후에 주교로 취임하였다(313년). 그의 신학적 경향이 오리제네스적인 종속론(從屬論) 계통을 계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리우스 논쟁 때는 아리우스의 입장에 동정하였다. 니체아회의에서는 ‘호모우시오스 신경(信經)’에 일단 서명했지만, 그 후의 논쟁 발전에서는 아타나시오파(派)에 반대입장을 취하며, 항상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 306~337)의 통일정책을 받아 들였다. 대박해에 종지부를 찍은 대제의 출현은 그로서는 대망의 ‘구원의 시기’가 도래한 것으로 생각되어 대제에게 여러 번 송사(頌詞)를 바쳤고, 대제의 사후에는 ≪콘스탄티누스전≫(Vita Constantini)을 저술하였다. 이 전기에는 대제가 경건한 신앙자로 묘사되어 있어서, 후세의 학자간에서 여러 가지 평가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 ≪콘스탄티누스전≫이나 송사에서 그는 대제의 제국을 하느님의 지배의 지상(地上)에 있어서의 모상(模像)으로 생각하고, 황제는 하느님의 대리인, 하느님의 모상,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란 황제이념을 창조하였다. 이 이념이 바탕이 되어 황제를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보는 동방교회의 전통이 생겼고, 1917년의 혁명 때까지 러시아에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콘스탄티누스에 관해서는 그밖에 ≪콘스탄티누스 치정 30년 기념연설≫(335)이 대표작이다.

그의 저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서(歷史書)로, 아브라함의 탄생(기원전 2015년?)에서 303년까지를 연표(年表)로 만든 ≪연대기≫(年代記)는 중세 역사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303년부터 재삼 증보되어 325년에 10권으로 완성한 ≪교회사≫는 그리스도교 승리의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호교적(護敎的)인 목적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며, 수많은 귀중한 문서 · 저서 발췌를 수록, 고대교회사를 아는 데 없어선 안되는 사료(史料)의 보고(寶庫)이다. ≪교회사≫의 부록(附錄)에서 후에 확대 독립된 ≪팔레스티나 순교자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의 실제를 아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호교적인 2대 저술로는, 이교도를 대상으로 한 ≪복음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 15권), 유태인을 대상으로 한 ≪복음의 증명≫(Demonstration evangelica, 20권)이며, 이 두 개의 저서에는 고전 그리스의 사상가들로부터 방대한 인용이 있어, 그의 박학을 증명해 준다. 그밖에 성서석의(聖書釋義)도 많이 썼지만, 오늘날 잔존한 것은 적다.

그의 사상은 본질적으로 오리제네스적, 중용적이다. 정통파인 호모우시오스를 배척하는 동시에 아리우스주의도 배척한다. 그는 또한 아타나시오(Athanasius)의 교설을 ‘사벨리우스주의’라고 비난하였다.

[참고문헌] M. Weis, Die Stellung des Eusebius im arianischen Streit, Freiburg 1920 / J. Stevenson, Studies in Eusebius, Cambridge 1929.

② 베르첼리의~(E. Vercellensis, 283/~371). 성인. 축일은 8월 2일. 주교. 수도원 창건자. 반(反)아리우스주의자. 사르디니아에서 태어나 이탈리아 베르첼리(Vercelli)에서 별세하였다. 교황 율리오 1세(재위 : 337~352) 밑에 성직자로 있다가 344년경 베르첼리의 초대주교로 임명, 수도원을 세우고 많은 성직자들과 공동신앙생활에 들어갔다. 그는 서방에서의 수도원 생활의 도입자로 일컬어진다. 아리우스 문제 해결을 위해 교황 리베리오의 사절의 한 사람으로 로마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에게 가서 교회회의 개최를 요청하였다. 355년의 밀라노 교회회의에서는 성 아타나시오(Athanasius)를 비난하는 선언에 서명을 거부하고 팔레스티나로 추방되었다가,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고 율리아누스 황제가 즉위하자 귀국이 허용되었다. 362년 성 아타나시오와 함께 알렉산드리아 교회회의를 주최, 비타협적인 주교들 사이를

화해시키는 결의사항에 찬동하였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그는 프와티에(Poitiers)의 주교 힐라리오(Hilarius)와 협동으로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대항하였다. 그는 추방당했을 때의 고난 때문에 순교자로 숭경받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