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기 [한] 排定記

본당의 주임신부가 관할 공소를 방문하기 전, 미리 공소 교우들에게 보내던 사목서한을 말한다. 한국 천주교회의 관례상 본당의 주임신부는 1년에 2회, 즉 봄 · 가을로 관할 공소를 방문하고 판공성사(判功聖事)를 집전해야 했는데 이 때 공소교우들에게 각 공소의 방문일정을 알리고 판공을 준비시키기 위해 배정기를 돌렸다. 현재 남아 있는 배정기로는 1890년부터 1913년까지 수원 갓등이(왕림) 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한 알릭스(Alix, 韓若瑟) 신부의 배정기 2통, 미리내본당 주임 강도영(姜道永) 신부가 1900년에 보낸 배정기 1통, 그리고 안성본당 초재주임 공베르(Gombert, 孔安國) 신부가 1901년에서 1906년까지 보낸 6통 등 모두 9통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공베르 신부의 배정기는 안성본당이 공세리본당에서부터 분리, 창설되던 해부터 초기 6년 동안의 본당과 공소의 형편을 살필 수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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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재 [한] 梨峴

교회사적지(敎會史蹟地). 전북 김제군 금산면(錦山面)에 있던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박해(迫害)시대 때부터 교우들이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다. 1879년 체포되어 만주로 추방되었던 드게트(Deguette, 崔東鎭) 신부가 1881년 재입국하여 이곳에 잠시 피신해 있었고, 1892년부터 1895년까지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신부, 조조(Jozeau, 趙得夏) 신부, 라크루(Lacrout, 具瑪瑟) 신부 등이 이곳을 근거로 전라도 일대에 전교하였다. 그러나 1895년 라크루 신부가 근거지를 수류(水流)로 옮기고 그 곳에 본당을 창설하자 배재[梨峴]는 수류본당의 관할지역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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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신학교 [한] 舟論神學校 [관련] 가톨릭대학

1855년 충청북도 제천(提川) 배론[舟論]에 설립된 성 요셉 신학교를 이르는 말.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학교. 초대 교장에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취임. 1866년 병인(丙寅)박해로 폐교되었다. (⇒) 가톨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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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 [한] 舟論

교회사적지(敎會史蹟地)이며 유서 깊은 교우촌. 현 지명은 충북 제천군 봉양면 구학리(忠北 堤川郡 鳳陽面 九鶴里). 이곳은 1791년 신해(辛亥)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와 옹기(甕器)를 구워 생활하며 신앙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마을이 위치한 계곡이 배(舟)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으로 불렸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황사영(黃嗣永)이 이곳의 옹기굴에 숨어 있으면서 조선 교회의 박해상황과 외국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을 적은 이른바 백서(帛書)를 작성했고 이를 북경(北京)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에게 보내려다 실패하고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1855년에는 배론 공소 회장 장주기(張周基)의 집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교장 푸르티에(Pourthie, 申)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1861년 최양업(崔良業) 신부가 문경(聞慶)에서 병사하자 푸르티에 신부 일행이 최양업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하였다. ‘성 요셉 신학당’은 1866년 병인(丙寅)박해 때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들이 체포되어 순교함으로써 폐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신학당 터, 최양업 신부묘소, 박해시대의 옹기굴 흔적 등이 남아있고, 1932년 몇몇 사제들에 의해 매입된 이후 1977년 원주교구에서 성지개발위원회를 구성하여 개발을 시작했으며 고(故) 양기섭(梁基涉) 신부에 의해 ‘성요셉 신학당’이 복원되고 피정센터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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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자 [한] 背敎者 [라] apostata [영] renegade [관련] 배교

다른 종교나 이념(理念)을 믿기 위해 스스로, 혹은 강제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버리는 사람. 구약성서에서는 야훼의 성전에서 이방인의 신(神)이나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배교자로 간주했고, 신약성서에서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사람들이 다시 개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사람들을 배교자로 간주하였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에 전파된 이후 4세기 까지는 로마황제들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들이 나오게 되었고 아울러 배교자들도 속출하였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밀고한 김여삼(金汝三), 1839년 기해(己亥)박해 때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를 비롯 많은 교우들을 밀고한 김순성(金順性) 등의 배교자가 있었다. (⇒) 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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