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 [한] 背敎 [라] apostasia [영] apostasy [그] apostasis

세례를 받은 자가 한번 공헌한 서약을 버리는 행위. 라틴어의 apostasia는 ‘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 ‘신과의 이별’을 뜻하며 그리스어의 apostasis는 ‘반역’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배교는 ①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는 것(apostasia a fide), ② 수도생활을 버리는 것(apostasia a monachatu), ③ 성직생활을 버리는 것(apostasia a clericatu)의 3가지 형태가 있고, ②는 수도자와 수녀가, ③은 성직자가 비합법적으로 종교직을 물러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①의 경우다. 구역성서에서는 야훼에 대한 반역(여호 22:22), 유태교 신앙의 포기(1마카 2:15)를 배교로, 신약성서에서는 모세율법의 배척(사도21:21),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2데살 2:3)를 배교하는 말로 기록하고 있다. 배교한 자를 보통 랍시(lapsi)라고 부르는데, 이교(異敎)의 신상(神像)에 희생제물(犧牲祭物)을 바친 자(sacrificati), 이교의 신상에 분향(焚香)한 자(thurificati), 희생제물을 바치기로 한 자(libellatici)들을 가리켰다.

3세기 데치우스(Decius) 황제의 칙령에 의해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배교자가 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스스로의 행위를 반성하고 그리스도교로 돌아오려는 사람이 많았다. 성 고르넬리오(St. Cornelius)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St. Cyprianus)는 배교자의 교회 복귀를 장려하였고 주교회의에서는 공식적으로 보상행위를 한 배교자의 복귀를 허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노바시아노(Novatianus)는 이러한 관대조치에 반대하고 떨어져 나가 이교집단을 형성하였다. 그 뒤 배교자에 대한 공식적인 규정은 니체아 공의회에서 마련되었다. 한편 근대의 배교는 종래와 같은 이교도의 개종도 있긴 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역시 무신론으로 빠져드는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르네상스와 계몽기를 거쳐 19세기에 이르면 교회 이탈운동이 광범하게 일어나게 된다.

이리하여 현대적인 배교의 원인은, 전쟁과 자본주의적인 사회모순에 대한 교회의 태도, 국가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교회의 태도, 날로 늘어가는 교회의 부(富), 결혼제도와 산아제한에 대한 교회의 자세, 진보와 과학을 적으로 보는 교회의 시각(視角) 등에 회의를 느낀 그들의 마음은 교회소원의 경향을 가진 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이른 지금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신자들의 교회 이탈을 막는 것이 사목의 긴급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교회가 신자들의 교회 이탈을 막고 제 위치를 정립하기 위해서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도 사실이다. 교회는 교회 반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그리스도교가 가진 기본적인 자세에 충실해야할 필요성 앞에 서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교회는 하느님의 현대적 계시를 읽어야 할 것이다. 즉 공의회의 사목헌장에서는 무신론이 발생하는 원인의 하나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비판을 지적하고 있다.

[참고문헌] B. Violet, Die Kirchenaustrittsbewegung, 1914 / K. Algermissen, Die Gottlosenbewegung der Gegenwart,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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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관겸 [한] 裵~

배관겸(?~1800). 순교자. 세례명 프란치스코. 충청남도 당진(唐津)의 진목동[長項里]에서 태어났다. 이벽(李壁)의 전교로 입교했고, 1791년 신해(辛亥)박해 때 체포되었으나 고문에 못이겨 배교하고 석방된 후, 서산(瑞山)을 거쳐 언천(漹川)의 양제리(揚堤里)로 이사, 배교한 죄를 뉘우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1798년 교우들과 함께 마을에 경당(經堂)을 짓고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기다리던 중 11월 10일(음력 10월 3일) 체포되어 홍주(洪州)로 압송되었다. 홍주에서 여러 달 동안 심한고문과 형벌을 당했으나 이겨냈고, 청주(淸州)병영으로 이송되어서도 팔다리가 부러지고 살이 터지는 고문과 형벌을 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고수, 마침내 1800년 1월 7일(음 1799년 12월 13일)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60여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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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적아 [한] 龐迪我 [관련] 판토하

예수회 중국선교사 판도하(Pantoja)의 한자명. ⇒ 판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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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성직자양성 [한] 邦人聖職者養成 [관련] 한국인성직자양성

⇒ 한국인성직자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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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한] 方言 [라] glossalalia [영] glossalalia [그] glossalalia [독] Glossalalie

초대 교회 시대에 일어난 현상(現象)의 하나로, 성령의 선물을 받아 각국어로 이야기한 사도들의 말을 가리킨다. 방언은 바벨탑시대에 혼란스러워진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구원의 보편성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glossalalia는 그리스어의 grossa(혀)와 lalein(말하다)가 합성된 말로 ‘혀로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을 받은 상태에서 설교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이것을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성령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사도 2:13-15). 그리고 그것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방언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하였고(1고린 14), 사랑이 없는 방언에 대해 비판하면서 방언을 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1고린 14:13-14), 만약 통역할 수 없거나 통역하는 사람이 없으면 방언을 해서는 안 된다(1고린 14:27-28)고 가르친다. 즉 방언이 ‘천사의 말’(1고린 13:1)이라고 할지라도 사랑이 있어야 하며, 그것을 일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방언을 하느님 나라의 말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바울로는 방언의 남용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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