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한] 民族主義 [영] nationalism [관련]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혈연, 문화, 전통, 언어를 같이하는 민족공동체가 민족의 통일, 독립 및 발전을 지향하여 추진하는 사상 또는 운동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족주의는 중세 봉건사회가 붕괴하고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싹트기 시작하였다. 중세는 서로 다른 민족들이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고 한 민족으로서의 통일보다 봉건영주가 중심이 된 계급사회가 인간공동체의 핵심이었다. 그 뒤 십자군으로 중세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문예부흥으로 민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민족주의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침략 이후 타국의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었다. 외국의 침략이나 지배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민족적 지도자가 필요하였다. 이것이 절대군주를 등장시키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고 여기에서 민족주의와 군주정치는 밀착하기 시작하였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와는 달리 후진국 또는 식민지에 있어서의 민족주의는 자유주의 운동과 결합하였다. 강대국에 의하여 지배되었던 많은 식민지들은 민족적 독립과 함께 인민의 자유와 입헌정치(立憲政治)를 요구하면서 투쟁하였다.

민족주의 운동의 주체는 역시 신흥 시민계급이었다. 이들은 민족적 감정,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자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하여 타국을 배격하거나 억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많은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기에 민족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와의 상관성이 생긴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한쪽으로는 자유와 독립, 다른 한편으로는 억압과 침략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교회적 입장에서 민족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다양하게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종, 언어, 습관, 전통도 다양하게 발전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하느님은 다양한 민족이 서로 다른 은총 속에서 인류 공동체로서 결합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보다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을 배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은 민족상호간의 대립이나 투쟁을 원하지 않으며 모든 인류가 하나의 백성으로서 형제애를 드러내기를 바라고 있다. 즉 사랑과 일치를 위하여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지, 다양성 때문에 분열과 시기와 투쟁이 합리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민족주의에 대해서 가장 크게 문제되는 것은 강대 민족에 의한 소수 민족의 억압, 식민주의 문제 및 민족간의 상호협조다. 오늘날 인간 사회를 보다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유대를 보다 완전하고 튼튼하게 하려는 데에 몇 가지 장애가 있다. 보수적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주의가 그것이다. 최근에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자주성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나, 이러한 감정도 전 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다. 과격한 민족주의는 민족들을 고립시키므로 민족의 참된 이익을 잃게 한다. 특히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거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하고 강화하려면 모든 민족들의 노력과 지식과 자금을 집결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인종차별주의는 강대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새로 독립한 국가에 있어서 부족이나 정당의 대립 속에 숨어 있는 인종차별주의는 정의를 크게 해칠 뿐 아니라 시민의 안녕과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종차별주의가 식민자들과 원주민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고 건설적인 상호이해를 방해하였으며, 실제로 약소민족은 강대국의 억압에 대해서 심한 원한을 품었다. 인종차별주의는 또한 후진국들 사이의 상호협력을 방해하고 국내에 있어서도 개인이나 가족이 인종이나 피부색 때문에 억울하게도 다른 시민들로부터 소외되고 인권마저 무시당하여 불화와 미움의 씨가 되었다.

불의(不義)한 환경 때문에 차별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족, 국적, 피부색, 문화, 성별 등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도 포함한다. 특히 개탄해야 할 일은 무수한 피난민들과 그리고 인종, 민족,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조직화된 박해를 받고 있는 집단이나 백성의 처참한 생활조건이다. 이런 인종차별과 박해는 가끔 대량학살의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새로운 형태의 신식민주의(新植民主義)가 출현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감쪽같이 가면을 쓴 것일지라도 과거에 많은 민족들이 당한 식민주의보다 절대로 나을 것이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국제 관계의 불안과 세계평화에 위험을 가져왔다. 국제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인권선언과 그 실현을 위한 국제조약이 많이 체결되었다. 그래도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인 차별대우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인권은 비록 무시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너무나 자주 충분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즉 현실적 상황에 비해서 입법조치가 너무 불완전하다. 입법조치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정의와 평등의 인간관계를 수립하기는 극히 불충분하다. 복음은 이들을 특별히 존중하라고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사회 안에서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의 인류는 국제 분야에 있어서 보다 광범한 국제협력의 확립을 요구한다. 거의 모든 민족이 독립은 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불평등과 온갖 형태의 종속상태에서 해방되었다고 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선진민족과 후진민족 사이의 대립은 날로 더욱 커지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는 스스로의 장래운명과 현재 진행되는 각종 변화의 과정과 그 뜻에 대하여 자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경제, 문화, 정치발전의 명백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민족은 최고도로 기계화된 반면에, 다른 민족은 아직도 후진된 경제 속에 살고 있다. 어떤 민족은 재화의 풍요함을 마음껏 누리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다. 어떤 민족은 고도의 문화를 누리고 있는데, 다른 민족은 이제야 겨우 근대화를 착수했을 뿐이다.

현대인은 보다 나은 정의를 희구하고 있으며,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사이의 상호존경에 바탕을 둔 보다 튼튼한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민족들이 기아와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으며 한편에서는 치열한 군비 경쟁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에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이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5-16). 오늘날 여러 민족에서 무수한 남녀가 굶주리고 무수한 소년 소녀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숨져가고 있다. 기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육체성장과 정신계발이 늦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지역의 주민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비록 고도의 경제발전이 이룩되었다 하더라도 당면한 경제적 곤궁을 해결하기에 절대로 충분하지 못하다.

오늘날 부강한 민족이 급속도의 경제 성장을 하는 반면에 가난한 민족들은 아주 느린 발전밖에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민족간의 불균형은 날로 더욱 심해진다, 어떤 민족에게서는 인구에 비해 남아돌아가도록 식량을 풍부히 생산하는가 하면, 다른 민족에서는 결핍을 느끼고 있다. 특히 경제적 선진민족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치의 순위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고 사멸되고 혼돈되고 있다. 그들은 영적 가치를 무시하고 망각하고 부정하면서 기술과학의 진보, 경제적 발전. 물질적 안일을 생의 목적의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선진민족이 후진민족에게 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한 독소의 하나이다. 후진민족들은 기나긴 전통으로 말미암아 가장 중요한 인간가치의 일부를 아직도 생명있게 인식하고 보존하고 있다.

도덕적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는 다른 민족들의 자유, 안전, 영토보존을 해치는 것은 절대로 금지한다. 따라서 강대한 민족들이 다른 약소 민족들과 경제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경우에 그들간에 몇 가지 규준들을 제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경우에 약소 민족들에게 다른 민족들과 다름없이 정치적 독립을 수호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치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자연적인 민족들의 권리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들 약소 민족들에게도 경제발전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들이 완전하게 보호되어야만 약소 민족들도 물질적 생산에 있어서나 혹은 문화발전에 관한 문제들에 있어서 자기 시민들의 공동선과 번영을 적절하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 앞선 민족들이 저개발 민족들에게 여러 가지형식으로 원조를 하되 각 민족의 고유한 도덕적 가치들과 그들의 조상들로부터 전승되는 특성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어떠한 정치적 지배욕도 삼가야 한다. 모든 국가의 위정자들이 소수 민족들의 언어, 문화, 전통적 풍습, 경제적 자원 및 기업들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공헌하는 것은 확실히 정의에 합치된다. 때로는 소수 국민들이 그들에게 지워진 고통스러운 상태나 혹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인해서 자기 민족의 특수한 요소들의 중대성을 과장하는 나머지 모든 인간들에게 해당되는 가치들을 소홀히 하고 마치 인류가정의 선익은 자국 민족의 선익을 위하여 이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이다. 반대로 이러한 소수 민족들이 자기들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에서 편익(便益)을 도모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이들이 다른 문화적 전통을 지닌 민족들과 접촉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신적 총명과 마음의 완성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되며,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민족에 속하는 가치들이 자기 자신들의 살과 피로 변화될 것이다. 이것은 소수 민족들이 다른 국민들과 유대를 지속하고, 이들의 전통과 문화에 참여하기로 노력하고, 민족들의 문화발전에 지장이 되는 불화를 제거할 때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 피지배 민족들로 하여금 자신의 독립을 성취시킬 권리를 평화롭게 행사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하여 가하여지는 모든 종류의 무력행동이나 강압적 조치는 중지되어야 한다. 유럽의 식민지 통치를 그리스도교적 원리에서 돌이켜 볼 때 식민주의는 그 본질적 성격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용납될 수 없다.

교회는 제민족과 제문화의 가치와 그 고유성을 이해하고 있다. 교회가 아직도 얼마나 오랜 역사의 길을 걷게 될 지는 모른다. 주님의 재림(再臨)까지는 아직도 아마 수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서 지난날은 겨우 교회사의 일부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회는 그 사명과 본성에서 인간문화의 특수형태나 특수한 정치적 경제적 및 사회적인 체제에 얽매이지 않고 보편적인 부(富)와 발전을 바라고 있다. (⇒) 국가주의 (韓庸熙)

[참고문헌]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1967 / 사목헌장, 79 / 바오로 6세,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1972 / 바오로 6세, 세계안의 정의, 1971 / C.J.H. Hayes, Essays on Nationalism, 1926 / H. Kohn, The Idea of Nationalism,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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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한] 民數記 [라] Liber Numeri [영] Book of Numbers

1. 이름 : 히브리의 이름은 Bemidebbar[광야에서]이다. 70인역은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숫자 때문에 arithmoi로 칭하였고 민수기란 이에 따른 것이다. 혹자에 의하면,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책제목은 숫자 자체보다 세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1:20-46, 3:14-51, 26장에 나오는 병적(兵籍) 조사 또는 인구 조사에서 이 책명이 유래했을 수도 있다.

2. 내용과 구성 : 민수기의 구성이 뚜렷하지 못하고 사건의 나열과 법에 대한 언급이 복잡하게 얽히어 있다. 별로 많지 않은 시대적 또는 지리적 내용을 근거로 구분한다면 ① 1:1-10:10, 시나이 광야에서의 체류, ② 10:11-22:7, 카데슈와 그 부근의 지역을 향하여 광야를 건너 감, ③ 22:2-36:13, 모압 지방의 체류로 나눌 수 있다.

다른 한편 ① 1:1-10:10, 행진을 준비, ② l0:11-20:13, 실패, ③ 20:14-36:13, 요르단을 향한 행진 등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이런 구분들은 유익하긴 하지만 역사적 사건의 나열만으로는 민수기에서 언급되는 법과 규정을 파악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못된다. 분명한 것은 민수기가 모세오경 중 먼저 취급된 대목과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시나이에 도착한 사실과 거기에 있었던 계시는 민수기가 전제하는 사항이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민수기가 모세오경 중 다른 부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1:1-10:10은 주로 경신례에 관한 규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규정들은 출애급기와 레위기의 글들과 상관관계가 있다. 민수 5:5-10은 레위기 5:20-26을 보완하고, 민수 8:1-4은 간략한 형식으로 출애 25:31-40을 반복하고 민수 8:5-22은 3:5-13에서 서술된 레위들의 축성을 정화의 견지에서 다시 취급하고 민수 9:1-14은 출애 12장에 나오는 빠스카 규정을 보충한다.

민수 1장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어 한 진지에 모으는 것에 대하여 언급한다. 그런데 5:1-4에 의하면 이 진지는 야훼가 계시는 거룩한 곳으로서 부정한 사람은 다 밖으로 내 보내므로 그는 안전케 될 수 있다. 이에 준하여 5:11-31, 6장, 8:5-22, 9:1-14는 각각 다른 경우에 있어 부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지의 거룩함과 야훼의 현존은 사제의 강복(6:22-27), 야훼의 말씀(7:89), 그리고 성소를 덮고 있는 구름 때문에(9:15 이하)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이 끝에 취급된 테마는 출애 40:2·34-38에 나오는 것을 다시 다룬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름이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주할 때 이들을 이끌기도 한다. 출애 40:34-38에서 다루어진 구름의 이 둘째 기능이 민수 9:15-23에 나온다.

민수 10:11-20:13은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체류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출애 15:22-18:27의 내용과 흡사하다. 특히 민수 20:1-13과 출애 17:1-7은 이스라엘이 모세와 야훼를 거스려 도전하는 내용을 묘사하고 있다. 민수 10,11-20:13에서 유난히 드러나는 야훼에 대한 그리고 모세를 거스려 일어나는 도전 및 원망은 굶주림과 갈증 때문이 아니고 약속된 땅으로 가는 길이 위험하다든지(14:2 이하) 모세의 특수한 위치(16:1-11, 17:6) 때문이다. 야훼를 거스리는 내용을 제시하는 데에는 그의 거룩함에 대한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11:18, 16:3 · 5 · 7, 17:2 이하, 20:12 이하). 이런 견지에서 경신례적 규정들이 이 부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민수 15장은 제사에 대한 보충규정인데 40절에서 야훼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을 위해 거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눈에 띈다. 15:26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용서는 13장 이하에서 취급된 정탐 역사에서 이스라엘이 죄지은 대목과 연결되고 18장은 16장에 나오는 코라의 무리의 반란과 관계가 있다. 18장에서 ‘거룩함’이 여러 번 나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장은 붉은 암소의 재로 깨끗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20:1-13에는 모세와 아론이 불신 때문에 약속된 땅에 못 들어갈 것을 기록하고 있다.

20:14-36:13도 이야기와 경신례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야기들은 약속된 땅으로 가는 길에서 겪는 위험을 다루고 있다. 이중 5왕과 충돌하는 내용이 눈에 뛴다. 즉 에돔왕들(20:14-21), 아랏(21:1-3), 아모릿왕 시혼(21:21-30), 바산왕 옥(21:33-35), 모압왕 발락크(22-24)이다. 22-24장은 발락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나 사실은 빌레암의 활약이 크게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빌레암 이야기로 이해되고 있고 22-24장은 독립적으로 오랜 전승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수록되었다고 본다. 특별히 24:3-9및 15-19절은 본래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찬미의 노래로 보고 23:7-10, 그리고 18-24절은 빌레암 이야기를 완성해가면서 가미된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은 다른 위험은 불뱀(21:4-9 참고)을 통한 벌과 모압족 출신의 부인들 때문에 이스라엘의 바알신을 공경할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25장). 26장에서는 인구조사가 다시 실시되었는데 시나이에서의 조사 대상자(1장)는 다 죽었음을 확인한다(14:29 참고), 27:12-23에서는 요수아가 후계자로 지목됨으로 이 시대가 끝났음을 알린다. 31장에 미디안족을 정벌하는 기록 외에는 나머지 본문에서 이야기의 요소는 줄어든다. 27:1-11, 28-29장, 30:2-17, 36장에서는 여러 가지 규정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32장에서 동요르단 부족에게 관한 지역 안배를 취급하나 여기서는 후대에 이루어진 지역 확장을 고대에 투영하여 설명했다고 본다. 서(西)요르단 지역 분배는 33:50-34:29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35장은 레위인의 거주지와 살인자의 도피성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33장에 나오는 광야에서의 거처지에 대한 언급은 후대에 시도한 재구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33:50-56에 신명기 학파의 특성이 엿보이는 것을 보면 신명기는 모세오경 중 이미 언급된 것 외에 신명기 역사서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모세오경과 신명기 역사서를 연결하는 집성사적 요소 및 모세오경의 집성사적 요소가 다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수기는 모세오경을 집성하며 전체의 끝맺음을 시도한 듯하다. 아론의 죽음(20:22이하) 미리암의 죽음(20:1), 모세의 죽음에 대한 예고(27:12), 엘레아잘과 요수아에게 전권을 이양함(27:15-23) 등이 그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민수기를 쓰는데 사용된 사료(史料)는 야휘스트, 엘로히스트, 제관기 및 많은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5:1-9:14에는 제관기의 작업을 엿볼 수 있고 33장을 제외한 민수기의 끝부분 그리고 15장에는 제관기가 사료로 사용됐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11-14장에는 야휘스트, 그리고 20:14-21, 21:12 이하에서는 엘로히스트의 자취를 볼 수 있다. 빌레암의 이야기는(22-24)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다.

3. 신학 : 민수기에 특별한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나름대로 고유한 주제와 관점을 보여주므로 일정한 개별성(個別性)은 있다고 생각된다.

출애 25장부터 레위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규정이 성소(聖所)와 경신례에 대한 것이고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이 규정에 의거하여 단체를 형성한 것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모세오경은 이스라엘이 미래의 이상적인 공동체상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광야에서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이룩했음을 보여 주려고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민수기의 레위족에 대한 관점도 독특하다. 12부족을 셀 때 레위족은 거론되지 않는다. 레위는 성소에서의 봉사를 위해 특별히 선별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후예인 사제들을 돕게 되어 있었다(3:6이하, 4:19-28, 4:33, 8:22, 18:2). 사제보다 낮다고 하는 것은 에제 44:10-14에서와 같이 일종의 벌로 간주되지 않고 오히려 레위족에게 고유한 신학을 반영한다. 즉 레위는 봉헌돼야 할 처음 태어나는 모든 맏아들의 대신으로 야훼께 소속된다(3:12이하, 3:40-50, 8:16).

이스라엘이 시나이를 떠나자 또 잘못을 저지르고 야훼와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불평을 하고 반항한다(11:4, 4:3, 16:13, 20:3, 21:5). 야훼는 놀랍게도 벌을 내리신다(12:12-15, 16:21·35, 25:5). 민수기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오래 머물러야 했던 것도 불신에 대한 벌과 보속이라고 본다(14:11·33). 모세와 아론이 약속된 땅에 못들어가는 것도 그들의 불순명 때문이다(20:12-24). 그러나 이들의 전구로 야훼는 당신의 화를 진정시키신다(14:11-20, 17:11-15).

이로써 모세와 아론, 그 후계자들의 종교적 권위가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난다. 모세가 예언자 및 아론보다 뛰어난다(12:7). 아론의 아들들은 사제로서 기능, 권위, 수입 등에 있어서 레위족과 구별된다(3장, 8장 이하). 모세는 요수아에게 지팡이를 주어(20:25-29), 그리고 엘레아자르에게 사제권을 주어서(20:25-29) 각각 지도자와 사제가 되도록 하며 이로써 그들의 직분이 계승되게 한다. (沈勇燮)

[참고문헌] H. Gressmann, Mose und seine Zeit, 1913 / W. Rudolph, Zum Texte des Buches Numeri ZAW 52, 1934 / M. Noth, uberleferungsgeschichtliche Studien, Tubingen 1973 / S. Wagner, Die Kundschaftergeschichten im A. T, ZAW 76, 1964 / G. W. Coats, Rebellion in the Wilderness, 1968 / V. Fritz, Israel in der Wuste, 1970 / W. Gross. Bileam, Literarund formkritische Untersuchungen der Prosa in Numeri 22-24, Munchen 1974. 주해서로 P. Heinisch(Bonn 1936), H. Cazelles(Paris 1952), B. Baentsch(Gottingen 1903), J. Gray(Edirburgh3 1956), M. Noth(Gottingen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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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덕효 [한] 閔德孝 [관련] 뮈텔

뮈텔(Mutel) 주교의 한국명. ⇒ 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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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극가 [한] 閔∼

민극가(閔∼, 1787-1840) 순교자.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스테파노. 인천(仁川)의 양반집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모두 외교인이었으나 모친이 사망한 후 부친이 중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족과 함께 입교하였다. 20세 때 아내를 잃고 부친의 뜻에 따라 재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는데 6-7년 후 재혼한 아내와 딸이 또다시 사망하자 집을 나와 서울 · 인천 · 부평 · 수원 등지를 떠돌며 교리서적을 팔아 생활해 나갔다. 가는 곳마다 냉담자들을 권면하고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한편 자선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고 이러한 열성으로 회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1839년 기해(己亥) 박해로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자 서울과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의 직무를 열심히 이행하던 중 그해 12월 서울 근교에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혹형 · 고문 · 유혹 등 갖은 수단으로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모두 물리쳤고, 감옥생활 중에도 배교했거나 마음이 흔들리는 교우들을 권면하여 다시 신앙을 찾게 하였다. 1840년 1월 30일 포청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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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원] Michelangelo, Buonarroti

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창작활동을 전개했는데, 특히 피렌체(Firenze)와 로마(Roma)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매우 거대하고 정열적이며 종교적인 색채가 농후하다. 조각으로는 수많은 작품 중 <피에타>(Pieta, 1494-1495,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다비드>(Davide, 1501-1504, 피렌체)와 거대한 모세 상(Moses像)이 새겨진 교황 율리오(Julius) 2세의 묘비(墓碑) 등이 특히 유명하며, 회화의 대표작으로는 로마 시스티나(Sistine) 성당의 천장화와 벽화 <최후의 심판>(1535 -1541) 등이 있다. 또한 건축미술로는 수많은 궁전건축과 성당건축 중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둥근 천장은 그의 명성과 영예를 영원히 후세에까지 전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최대 예술가로 지칭되는 미켈란젤로는 또한 시인(詩人)으로서도 그 재능이 뛰어나 여러 작품을 남기었는데, 현대에 와서도 이탈리아의 역대 걸작시선(歷代傑作詩選)에는 반드시 그의 시작품과 함께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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