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라] Michael [영] Michael

대천사(大天使) 가운데 하나인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성서에서 미카엘은 가브리엘을 도와 페르시아 호국신(護國神)과 겨루는 자로(다니 10:13·21), 극도로 어려운 때에 이스라엘을 지켜 주는 자로(다니 12:1) 나타나며, 대천사로서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려고 악마와 다투는 자로(유다 1:9), 부하 천사들을 거느리고 사탄인 용(龍)과 부하들을 무찌르는 자(묵시 12:7-9)로 묘사되기도 한다. 미카엘은 동방교회 내에서 병자를 돌보는 천사로 공경을 받고 4세기부터 교회의 주보가 되었으며, 서방교회에서는 천상군대의 우두머리이며 병사들의 수호자로 공경받았다. 미카엘에 대한 회화, 조각 등 예술품은 1400년 이전의 것만 해도 900개가 넘는다. 날개를 달거나 왕관을 쓰기도 하고 정의의 저울을 들거나 사탄에 대한 승리의 칼을 잡고 있는 모습 등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젊고 강건하며 갑옷을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모습을 하고 있다. 축일은 9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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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레오르 [영] Misereor

1958년 풀다(Fulda)에서 개최된 서독(西獨, Bundes Republick Deutschland) 주교회의가 구성한 기구. 이 주교회의에서 추기경 프링스(Frings)는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비참한 상황을 퇴치하기 위해 미제레오르의 구성을 제의하였는데, 그는 제안설명을 통해 ① 서독의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세속적인 권력의 추구를 포기하고 ② 지구상에 있는 기아와 질병 등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비참한 상황을 퇴치하기 위해 필요한 기금(基金, funds)을 적립하며, ③ 선진국의 국민들이 이러한 운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사순절 운동’(Lenten Campain)을 전개하자고 하였다. 이는 곧 미제레오르의 기본원칙으로 결정되었고, 나아가 주교회의는 미제레오르의 목적을 ① 서독국민의 생활양식의 변화, ②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존엄성 회복에다 두기로 하였다. 이러한 원칙과 목적에 따라 미제레오르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의 빈곤, 기아, 문맹(文盲), 실업의 퇴치를 위해 많은 양의 돈을 원조하였다. 미제레오르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양의 원조를 보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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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슈몽 [한] 三浦朱門

三浦朱門(1924∼ ). 일본의 소설가. 도쿄(東京) 태생. 1945년 도쿄대학 언어학과에 입학, 그 해 여름에 징병(徵兵), 이어서 종전을 맞이했다. 1948년 도쿄대학 졸업, 그 뒤 대학원을 마치고 니홍(日本) 대학 강사가 되었다. 제15차 <신시쪼오>(新思潮)의 동인. ≪명부 산수도≫(冥府山水圖, 1951)는 중국을 무대로 화가를 주인공으로 하여 예술의 비정함을 묘사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시마오 도시오(島尾敏雄), 요시유끼 준노스께(吉行淳之介) 등과 친교를 맺으며 ‘제 3의 신인’으로 활약하였다. 1973년 영세, 입교하였다. 1968-1969년의 대학 분쟁 때도 적극적으로 발언, 소설도 발표하였다. 대표작인 장편소설 ≪소형 정원≫( 庭, 1967)은 한 가정 내에서의 어버이와 자식 세 쌍의 부부관계를 통해 가정의 의미를 추구한 역작으로, 신쪼오사(新潮社) 문학상을 탔다. 그 밖에 ≪포나페섬≫(1956), ≪셀률로이드 탑≫(1959), ≪해로동혈≫(偕老同穴, 1963), ≪빛은 저 멀리≫(1978-1979) 등이 있다. 그의 작품테마가 초기의 예술지상주의적 경향에서 최근에는 소시민적 지식인 문제로 바뀌었다. 부인은 소설가 소노 아야꼬(曾野綾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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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사끼 까리따스수녀회 [한] 宮崎∼修女會 [영] Caritas Sisters

1937년 8월 15일 일본에서 사목하던 살레지오회(會) 소속 안토니오 카볼리(Antonio Cavoli) 신부에 의해 일본 미야사끼에서 창설된 수녀회. 1956년 10월 18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전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고 특히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이 회는 창설일자로 교황청 정식인가를 받았고, 1949년 회헌(會憲) 인가를 받았다. 1956년 당시 광주(光州) 교구장 헨리(Henry, 玄) 주교의 초청으로 같은 해 10월 3명의 수녀가 광주 남동으로 내한하여 본당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9년 광주 학동에 수녀원 건물을 신축하였고, 1957년부터 한국인 지원자를 받았다. 1968년에는 한국관구로 독립하였으며 54명의 수녀가 허원을 하는 한편 9개의 분원이 설립되었다. 1972년 서울 강남구에 진출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사업을 목적으로 교육관을 건립하였다. 현재 광주 · 제주 · 춘천 · 서울 · 수원 · 부산 6개 교구에 27개의 분원을 설치하여 본당활동을 하는 한편, 각 교구 내에서 그룹별 성서모임·피정(避靜) 지도 등을 통한 신자 재교육 활동, 노인대학 운영 등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학동 소재 한국관구 및 본원에는 1983년 12월말 현재 관구장 장도엽(張桃葉) 수녀를 비롯한 134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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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동본당 [한] 彌阿洞本堂

서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모칠고. 1942년 혜화동(惠化洞) 본당 산하 미아리 공소가 설치되고 1944년 11월 미아리 본당으로 분리되었으나 초대 본당주임 신인식(申仁植, 바오로) 신부는 1945년 5월에 정식으로 부임하였다. 4대 오연희(吳然喜, 마티아) 신부 때인 1950년 5월 신자수의 증가로 본당건물을 팔고 같은 미아동의 좀 더 넓은 집으로 본당을 옮겼다. 6.25의 피난시절을 거쳐 1953년부터 다시 사목이 시작된 후 신자수의 급증으로 인해 5대 본당주임 박일규(朴一圭, 안드레아) 신부는 1958년 성탄절에 현 길음동 대지(약 1,000평)의 성당 신축공사 완공을 앞두고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 집전으로 축성 미사를 봉헌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의 본당묘지(약 4만평)도 박 신부 때에 마련되었다. 박 신부는 미아동 본당에서 16년간 헌신적 사목활동을 하다가 1965년 69세로 은퇴, 1979년에 선종하였다.

1967년 7대 본당주임으로 박귀훈(朴貴勳, 요한) 신부가 부임, 당시 방대하게 증가한 교우들(8,333명)에 대한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1968년 정릉(貞陵) 본당, 삼양동(三陽洞) 본당(현 미아 3동 본당), 월곡동(月谷洞) 본당을 동시에 분리 창설시켰다. 1976년에 부임한 11대 이삼복(李三馥, 요한) 주임신부는 본당신자들의 숙원사업인 주일학교 교사 및 수녀원 건물을 1979년에 완공하였다. 미아동 본당은 미아5동 본당의 신설에 따라 1982년 9월 9일자로 그 명칭을 길음동(吉音洞) 본당으로 바꾸었다. 현재 관할구역은 돈암 1동, 정릉 1동, 길음 1, 2, 3동을 일원으로 하는 주거지역 및 상업지역이며. 신자수는 5,649명(1983년 현재), 현 본당주임은 14대 김충수(金忠洙, 보니파시오) 신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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