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축일표 [한] 每日祝日表

교회력(敎會曆)에 따른 축일과 주일 및 연중 매일의 독서와 복음을 월일(月日)별로 표시한 소책자. 1924년 서울교구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 이전부터 간행되어 온 한 장짜리 축일표인 <첨례표>(瞻禮表)와 함께 사용되었다. 처음 간행 당시의 서명(書名)은 <매일첨례표>였고 그 뒤 매년 같은 서명으로 간행되어 오다가 1966년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에서 ‘첨례’라는 용어를 ‘축일’로 개정하자 <매일축일표>라는 서명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카테고리: 가톨릭사전 | 댓글 남기기

매일첨례표 [한] 每日瞻禮表 [관련] 매일축일표

매일축일표의 전신. ⇒ 매일축일표

카테고리: 가톨릭사전 | 댓글 남기기

매스컴위원회 [한] ∼委員會 [영] Mass Communication Committee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C.C.K.) 사회주교위원회 산하 전국 위원회 가운데 하나로 홍보매체를 이용하여 선교활동을 기획, 조정, 협력함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매스 미디어에 관한 교령>(Inter Mirifica)을 통해 “대중전달수단(mass media)을 복음 전파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교황청이 우선 매스컴위원회를 설치하고, 각국의 주교단에도 동 위원회의 구성을 권장하였다. 한국 주교단은 1967년 매스컴위원회의 구성을 결의하고, 김수환 추기경을 총재로 선임하였다. 기존의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을 주축으로 체제를 정비한 매스컴위원회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매스 미디어를 통하여 가톨릭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진력하였다. 매스컴위원회의 활발한 활동에 부응하여 산하에 여러 단체가 결성되었다. 1970년 가톨릭연예인클럽과 가톨릭문우회 및 가톨릭 방송인협회(UNDA KOREA), 1974년 가톨릭영화시청각협회(OCIC), 1977년 가톨릭출판협회(U.C.I.P.), 1981년 가톨릭사진작가협회 등이 각각 구성되었다.

카테고리: 가톨릭사전 | 댓글 남기기

매리지 엔카운터 [영] Marriage Encounter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새롭게 하여 결혼생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케 함으로써 가정, 나아가 교회와 사회를 쇄신시키려는 운동으로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Gabriel Calvo) 신부와 몇몇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청소년 지도 신부로 일하던 칼보 신부는 문제 청소년의 대부분이 가정문제로 인해 탈선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부의 참된 만남(marriage encounter)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길임을 인식하여 이 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 방법은 25쌍 내외의 부부와 지도신부가 한 팀이 되어 2박 3일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성실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부부가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 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운동은 그 후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1976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초창기 이 운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은 도널드 매키니스(Donald Maclnnis) 신부.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54번지에 한국 매리지 엔카운터 본부가 있고 각 교구별로 매리지 엔카운터가 조직되어 있다.

카테고리: 가톨릭사전 | 댓글 남기기

매닝 [원] Manning, Henry Edward

Manning, Henry Edward(1808-1892).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옥스퍼드 대학을 마치고 교직자가 되었고(1832년), 치체스터의 대집사로 임명되었다(1841년). 처음엔 복음주의자였으나 차츰 고교회주의(高敎會主義)로 이행, 뉴먼(J.H. Newman)이 가톨릭으로 개종(1845년)한 뒤 옥스퍼드 운동 지도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도 고람사건을 계기로 국교회를 떠나 가톨릭 교회로 옮겼다(1851년). 그 후 와이즈먼(N.P.S. Wiseman)에 의해 교직자로 임명되고 그의 뒤를 이어 웨스트민스터의 대주교가 되었으며(1865년), 이어서 추기경이 되었다(1875년). 철저한 울트라 몬타니즘(ultramontanism) 주장자로서,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 때에 그것을 주장하면서, 교황의 세속권과 교황무류설을 강력히 지지하였다. 추기경이 된 이후로는 사회개혁에도 진출, 런던 항만파업의 조정(1889년)을 비롯하여 빈민계급의 주택·교육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카테고리: 가톨릭사전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