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한] ∼法 [영] Roman Law

일반적으로 로마법은 다음 두 가지의 의미를 띤다. 하나는 로마의 법률체계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될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법전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될 경우에 갖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구분하지 않고 그냥 로마법이라 하기도 한다. 모든 로마법의 기초가 되는 법은 12동판법(기원전 451년)이다. 이 법은 고대의 관습법 가운데 재판집행에 필수적인 부분들을 법제화하여 공포한 최초의 성문법(成文法)이었다. 이 법에는 평민의 지위상승을 반영하여 평민들이 일상적인 권리와 사건을 취급한 부분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시민법(ius civile)이라고도 불려지며, 부당하게 침해받은 권리의 법적 구제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명예법(ius honorarium)으로도 지칭된다. 12동판법은 테오도시우스 법전(438년)과 유스티니아누스 법전(533년)이 편찬될 때까지 거의 1천년 동안 시행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편찬은 법학사(法學史)에서 하나의 신기원(新紀元)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의 편찬으로 이전의 법률체계가 종합되었고, 이후의 법전은 이를 바탕으로 세워지게 됨으로써 명실공히 서양법체계의 기반이 된다. 887년에는 바실리카가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다 새로이 형성된 법령, 황제의 칙령, 새로운 법해석 등을 첨가하여 새로이 법전을 편찬했으며, 945년에는 콘스탄티누스 7세의 명에 의해 다시 개정되었다.

로마법에 흡수된 중요한 사상은 스토아학파의 자연법(lex naturae) 사상이다. 자연법 사상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는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타당한 법에 의해 다스림을 받으며, 또한 받아야 한다는 원리다. 이로부터 법이 로마시민에게 뿐만이 아니라 로마시민권이 없는 이방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만민법(萬民法, ius gentium) 사상이 싹터 나왔다. 자연법 사상과 만민법 사상은 시민법을 개선, 확대시켰다. 한편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이러한 사상의 발전을 통해 형성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공법(ius publicum)과 사법(ius privatum)으로 나눠진다. 이 법은 평민들이 제정한 법(lex plebiscitum), 원로원의 충언(senata consultum), 행정관의 포고령(magistratum edicta), 법률가의 의견(responsa prudentium), 일반적인 원리(principium plasita) 등을 기초로 한 성문법(ius scriptum)과 관습법(ius nonscriptum)으로 구분된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이 다루고 있는 주요 사항은 자유민과 노예, 독립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과 의존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 법인, 재산취득의 양식, 증여, 부역, 차용, 부동산 담보, 재산소유, 상속, 유언, 계약, 의무, 판매, 고용, 조합, 협정, 대리행위, 가계약, 절도, 불법행위, 채무, 양도, 소송, 공식절차, 소환, 재판, 형집행, 금치산선고 등이다.

로마법은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행위와 양심문제에 적용하는 결의론적(決疑論的) 법률체계이며, 일반화와 개념정의를 회피하고 있다. 또 사례별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논리상 일관성은 결여되어 있는 부분도 많다. 가족을 순수한 시민의 단위로 생각하고 있으며, 점유권과 소유권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으며 범죄에 대한 징벌은 징벌이라기보다는 보복에 가까웠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그리스도교의 원리인 박애와 평등의 영향을 받아 로마의 형평법 개념을 만인의 양심에 일치하는 명백한 자연법적 정의 실현으로 확대, 발전하였다. 로마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신약성서가 기술된 배경과 그리스도교의 로마전도사(∼傳道史)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생존시기의 유대지방은 로마의 식민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이고, 로마의 그리스도교 박해도 기본적으로 로마법 체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의 재판이 로마의 유대지방 총독 빌라도 앞에서 행해졌다는 점과 빌라도가 예수에게 유태인의 왕인지 아닌지를 물었고, 예수는 “네가 말한 대로다”라고 대답함으로써 예수의 죄목이 ‘유태인의 왕’으로 붙여졌다는 점은 로마법의 이해가 신약 이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예수의 죄는 로마법에 성문화된 왕에 대한 반역죄에 해당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Sohm-Mitteis-Wenger, Institutionen des romischen Privatrechts, Aufl. 18, 1928 / W. Kunkel, Romisches Privatrecht, Berlin-Gottingen-Heidelberg 1949 / E. Levy, West Roman Vulgar Law: The Law of Property, Philadelphia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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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문제 [한] ∼問題 [영] Roman Question [관련] 라테란조약

1870~1929년까지 약 60년간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간에 불편했던 관계를 로마문제라고 한다. 즉 1870년 빅토르 엠마누엘이 로마를 공격하여 정복함에 따라 교황은 1,000여년 동안 소유하고 있던 교황령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의 거처를 로마로 정한 엠마누엘은 소위 보장법(保障法)을 제정하여 교황에게 연금을 제공하고, 일신상 불가침권과 영적 기능의 자유로운 행사를 보장하겠다고 교황에게 제의하였으나 교황청은 이 제의를 일축하였고, 한편으로는 교령 을 발표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정치에의 불참을 호소하였다. 이로써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1929년 라테란조약으로 로마문제가 종결될 때까지 이러한 관계는 계속되었다. (⇒) 라테란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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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 과르디니 [관련] 과르디니

⇒ 과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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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양식 [한] ∼樣式 [영] Romanesque art

11세기와 12세기에 서부 유럽에서 발달한 미술양식으로 고딕(Gothic)미술에 선행한다. 주로 이탈리아 북부지방과 프랑스에서 성립되어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에 전파되었고 각 지역에 따른 특성을 보여 주고 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고대 로마 미술을 계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서부 유럽 특유의 켈트적 또는 게르만적 예술요소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비잔틴 미술의 영향, 동방 그리스도교 미술의 영향, 이슬람의 영향 등 여러 대조적인 성격을 지닌 독특한 중세미술의 양식을 전개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미술은 그리스도교적인 종교의식에 바탕을 둔 종교미술로 그 중에서도 수도원예술이 그 중심이다. 대표적인 건축물의 대다수가 수도원의 성당 건축이며 이를 장식하기 위해 조각과 회화, 금속공예, 스테인드 글라스, 사본(寫本) 장식미술 등이 제작되었던 것이다. 로마네스트 양식이 가장 많이 적용된 것은 건축으로 이때에 이루어진 건축상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13세기에 거대한 궁륭을 갖춘 고딕식 대성당의 건립이 가능하였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은 두껍고 육중한 담을 쌓아 장중한 느낌을 주었으며 둥근 아치와 수평을 강조하였다. 독일의 마인츠 대성당과 롬바르디아의 밀라노에 세워진 성 암브로시오 교회가 좋은 예이다. 또한 교회 입구의 깊이 파인 부분에서 훌륭한 조각 장식들이 발견되는데, 돌 자체에 조각한 것이 많으며 자연적인 소재(사람, 동물, 꽃)를 디자인으로 표현하였고 기하학적으로 교차되는 도형과 페르시아식의 석상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훌륭한 예는 베즐레이 대성당, 프랑스의 므와샤크 수도원의 정면과 회랑,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입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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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회 [한] ∼敎會 [영] Roman Church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혹은 간단히 로마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는 로마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전세계 교회를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조금씩 달리해 왔다.

먼저 로마 교회라는 말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라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57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57~58년경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로마에는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바울로 이전에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이다.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문서는 <글레멘스의 제1서한>인데, 이 서한은 주교명단의 첫머리에 베드로의 이름을 적고 있다. 이때의 로마 교회란 ‘베드로에 의해 창설된 교회’ 혹은 ‘로마의 교회’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라는 말은 또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마에 뿌리박은 그리스도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관용령 이후 급격한 발전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는 현상도 빚게 된다. 이때부터 로마 교회는 로마지방의 교회라는 의미와 함께 이단에 대한 정통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동 · 서로마제국의 분열 후 격화된 교의논쟁으로 그리스도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되는데, 이때의 로마 교회라는 말은 동방교회에 대립된 교회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즉 로마 교회는 ① 그리스도,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可視的制度)로서의 교회다. ②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다. ③ 미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다. ④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교회다. ⑤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일각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이를 로마교황청 중심의 작은 교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로마 교회를 로마교(Romanism)라고 경시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s)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 교회는 교황청 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로마 교회라는 말은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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