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뎀토리스트회 [한] ~會 [라] Redemptoristae

1732년 성 알퐁소 리구오리(St. Alphonsus Maria de Liguori)에 의해 창설된 성직자 수도회. ‘지극히 성스런 구세주수도회’라고도 한다. 저작활동은 비롯하여, 본당에서의 영신수련 지도 및 미신자에 대한 선교활동 등의 사도직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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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주의 [한] ~主義 [영] Leninism [관련] 공산주의

레닌(V.I. Lenin, 1870~1924) 및 그의 노선을 따르던 볼셰비키의 이론과 실천의 총체를 레닌주의라고 부른다. 스탈린은 레닌주의를 “제국주의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시대에 적합한 마르크스주의”라고 규정하여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계승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자유경쟁을 기초로 한 산업자본주의 단계에 적합한 소위 공산주의 혁명이론이라면, 레닌주의는 자본의 집중과 생산의 독점을 기반으로 한 소위 제국주의 단계에 적합한 공산주의 혁명적 이론과 실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계급투쟁설이나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이론 등은 마르크스주의에서와 마찬가지로 레닌주의에서도 종교적인 관념 및 도덕적인 법칙의 영원한 타당성과 불변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지 근본 관념과 대각선적으로 대립하여 그리스도교적인 공동체 관념에 정면으로 모순된다.

레닌주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 ≪일국사회주의 혁명론≫ 등에 그 특징이 나타나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물론 그들의 잘못된 견해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하면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을 억압하게 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는 가운데 자본주의는 붕괴하고, 새로운 생산관계 즉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자체 모순을 제국주의의 모습을 통해 부분적으로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됨에 따라 선진 자본주의 여러 나라는 자국의 모순을 후진국에 전가하기 때문에 제국주의 단계에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며,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발전 속에서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후진국에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견강부회(牽强附會)의 결론을 끄집어 낸다.

이리하여 레닌은 사회를 전환시켜야 할 결정적 세력으로서의 노동계급이 직업적인 혁명가의 조직인 당과 결합될 때에만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동시혁명론’ 대신 ‘일국사회주의 혁명론’을 주장하였다. 또 레닌은 공산주의 사회를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한다는 소위 과도기인 사회주의 사회와 고차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뚜렷하게 구별하였다. 이 밖에도 폭력혁명 불가피론, 혁명사상 주입설 등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 공산주의

[참고문헌] 비오 11세,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관한 회칙,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편, 1931 / 바오로 6세, 행동에의 부름, 1971 / L. Treadgold, Life of Leni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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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정교회 [한] ~正敎會 [영] Russian Orthodox Church [독] Russisch-Orthodoxe Kirche [관련] 정

⇒ 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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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드르 [원] Landre, Jean-Marie-Pierre-Eliacin

Landre, Jean-Marie-Pierre-Eliacin(1828~1863).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성(姓)은 홍(洪). 프랑스 태생인 그는 일찍이 성직자 되기를 원하여 사제품을 받은 다음, 소신학교 교사, 본당 보좌신부 등으로 본국에서 봉사하다가, 1856년 10월 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58년 3월 21일 한국 전교를 위해 고국을 떠나, 1861년에야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내포(內浦) 지방으로 파견된 그는 그 곳에서 전교활동 중 1863년 봄 중병을 얻어 9월 16일 충청도 황무실에서 선종하였다. 그가 입국한 지 불과 3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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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글르와 [원] Langlois, Charles Francois

Langlois, Charles Francois(1767~1851). 파리 외방전교회 지도자이며 신학교 교장, 신부.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에 재직 중이던 1827년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Cappellari) 추기경으로부터 파리 외방전교회에 조선 교회의 포교권을 위임한다는 편지를 받고 신부수의 부족, 조선 입국로의 불확실, 동(同)회 내 모든 주교들의 승인 여부 불명, 재정난 등 4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러나 1829년 당시 샴(Siam)교구 보좌주교이던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의 조선 파견 자원으로 1831년 교황청에서 조선 교회를 조선대목구로 설정함과 동시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하자 결국 조선 교회의 포교권을 위임받는데 동의하였고 그 후로 조선 교회의 선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참고문헌] Adrien Launay, Memorial de la Societe des Missions-Etrangeres, Paris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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