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문학 [한] ~文學 [영] The rabbinical literature [관련] 랍비

랍비에 의한 저작과 그 활동을 말한다. 유대 나라는 70년경에 로마에 의해 지상에서 사라졌다. 히브리문학의 역사는 4기로 나눌 수 있고, 그 중 랍비문학은 대략 70~1000년에 해당한다. 중세(1000~1800년)가 제3기, 그 이후에 제4기로 본다. 유대 나라가 70년경에 자취를 감추게 됨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생활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신전도 파괴되고, 희생이나 전례의식도 거행할 수 없었으며, 다만 개인적 기도나 성서 독서에 의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로 성서법의 연구 주석이 활발하게 행하여졌다. 200년경 랍비 유다가 ≪미시나≫(Mishna)를 지었는데, 이는 6책으로 교회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 후 6세기경 ≪탈무드≫(Talmud)가 저작되었으며, 그 후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탈무드≫는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팔레스티나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고, 이중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교회법뿐만 아니라 민속, 의학, 역사, 지리, 종교, 윤리, 전설, 속담 등 가히 백과전서적 대저작이다. 중세 이후의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남부 유럽으로 이주하였으며 아랍의 과학, 문화를 수용하여 유럽 각국에 전파하여 르네상스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의 유대문학의 주제는 철학, 윤리, 성서, 역사, 수학, 천문학, 지리, 여행기, 히브리문법, 시 등이었다. 중세기의 가장 유명한 유대 시인은 유다 할레비(Judah Halebi), 솔로몬 이븐 기비롤(Solomon ibn Gabirol) 등이었다. (⇒) 랍비

[참고문헌] The Encyclopedia of World literature, vol.8, New York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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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영] Rabbi

구약성서에서 ‘랍’의 칭호를 가진 사람은 관직을 가진 훌륭한 사람을 말한다. 랍비는 문자 그대로 ‘나의 주인’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가리켜 ‘선생님’이란 뜻으로 불렀다(마태 23:7, 요한 1:38). 사도시대 이후에는 랍비는 유태교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참고문헌]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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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탄시오 [라]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240?~320?). 그리스도교 호교가. 라틴교부. 북아프리카 이교도 집 안에서 출생하여 아르노비오(Arnobius)의 제자가 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기간 동안 니코메디아에서 수사학 교사로서 활약하였다. 그의 개종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303년 박해 때 공직을 잃고 2년 후 서방으로 가서 갈리아에서 살다가 동방으로 돌아온 것 같다(311~313년). 노년에는(317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인 크리스푸스(Crispus)의 가정교사로 지냈다.

현존하는 그의 저서는 그리스도교와 관련 있는 것들뿐이다. ≪하느님의 업적에 관하여≫(De Opificio Dei, 303~304)는 인체(人體)의 해부학적 경이로움을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가르침≫(Divinae institutiones, 313) 전 7권은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외교인들의 주장을 논박할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저술에서 이교도들의 신앙과 철학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교, 정의, 진리, 경신(敬神), 진정한 종교, 종말론 등을 다루는 락탄시오는 그 논거를 성서에서보다는 ‘시빌의 신탁’(Sibylline oracles) 등 이교도의 예언서에서 찾아내고 있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분노에 관하여≫(De ira Dei, 314경)에서 하느님의 인간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심을 밝히고 ≪박해자들의 죽음≫(De mortibus persecutorum, 318경)에서 박해자들의 비운을 그렸다. 후자는 역사서로서 가치 있는 문헌이다. 락탄시오는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안내하기 위하여 형식의 미(美)를 존중할 필요에서 라틴어로 저술하였다. 그는 문체에 있어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라틴어 저술가 가운데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락탄시오의 저술을 가리켜 “마치 치체로의 웅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예로니모는 극찬한다. 문예부흥기 때 ‘그리스도 교인 치체로’라고 불린 락탄시오는 그리스도 교리에 관하여 깊이 다루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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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피에르 [원] La Pierre 또는 Lapierre

La Pierre 또는 Lapierre(?~?). 프랑스 중국파견함대 분함대장(分艦隊長), 해군대령. 중국명 납별이(拉別耳). 프랑스에서 출생. 1846년 세실(Cecile) 제독이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를 포함한 3명의 프랑스 선교사 학살에 대해 조선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한 후, 이에 대한 회신을 받고자 1847년 7월 2척의 군함에 메스트로(Maistre, 李) 신부와 최양업(崔良業) 부제를 태우고 중국을 출발하였다. 그러나 조선 근해에 이르러 전라도 고군산도(古群山島)에서 배가 좌초되어 조선정부의 회답을 받지 못하고 종교의 자유를 청하는 서한을 전라도 관찰사에게 전한 후 구조하러 온 영국(英國)배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조선정부는 그 후 세실의 편지에 회신을 보냈는데 이 회신은 마카오에 있는 라피에르에게 전달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敎會史硏究, 1, 한국교회사연구소,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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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르카드 [원] Lafourcade, Arnaldus

Lafourcade, Arnaldus(1860~1888). 조선 교구 선교사. 한국성(姓)은 나(羅). 프랑스의 바스크 지방의 랑드르(Landres) 지방과의 경계인 유르퀴(Urcuit)에서 태어난 그는 강인한 성격에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가장 어려운 포교지인 한국으로 가게 한 원인인지도 모른다. 1883년 2월 19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86년 9월 26일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1일에는 한국으로 떠났다. 그 이듬해 서울에 도착한 그는 곧 전라도 지방으로 파견되어 동료인 두세(Doucet) 신부를 도우며 한국말을 배워, 가을에는 독자적으로 한 구역을 전담할 수 있었다. 34개의 공소를 돌아다니며 1,170명의 신자들로부터 고해를 듣고, 52명에게 영세를 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으나, 험한 산길을 찾아 헤매며 불편한 잠자리와 맞지 않은 음식은 그토록 건강했던 몸을 점차로 잠식하여, 임지에 내려온 지 1년도 못되어 병석에 눕게 되었다. 외딴 이역땅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가 싶었으나 우연히도 동료신부와 젊은 베르모렐(Vermorel) 신부가 그를 도우려고 찾아왔다가 그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에 입국한지 불과 1년 반도 못되는 1888년 7월 11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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