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행 [한] 德行

덕(德)으로써 하는 행동 또는 착한 행위를 일반적으로 덕행이라고 말한다. 덕으로써 하는 행동이란 덕성(德性)스러운 행실을 가리키는 것이며, 착한 행위란 어질고 착한 행실을 지칭한다. 덕(virtue)이란, 그리스도교적으로 볼 때, 신앙에 비추어진 올바른 이성(理性)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습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좋은 활동습성(operative good habit)이 바로 덕인 것이며, 이 덕을 가진 사람의 행위가 이른바 ‘덕행’을 이룩하게 하는 것이다. ‘덕’이 선천적(先天的)이냐 후천적(後天的)이냐 하는 점은 논의하기에 따라 서로 갈라지는 시각(視角)이 있음직도 하지만, 어쨌든 인간의 바람직한 성격 일반과 마찬가지로, 후천적인 육성, 도야가 중요하다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중국의 경우, 군자(君子)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공자(孔子)의 학문이 나타난 이후부터 ‘덕’이란 인간적인 수양에 의해서 획득되어지는 도덕적인 능력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교의 덕과는 달리, 노장(老莊)사상에서는 근원적인 ‘도’(道)에 대한 것으로서, 이 ‘도’에 바탕하여 나타나는 역할, 능력, 자질 등을 덕이라고 불러 왔다.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덕행은, 그 기초의 확실성이나 투철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동기(動機)의 풍부함과 힘에 있어서도 비종교적인 덕행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의 도덕적 행위가 영원의 목표에 가치있는 것으로 볼 때, 그것은 은총(grace)에 의하여 차원이 높여지고 게다가 주관적으로도 신앙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목표로 향해져 있어야 함은 물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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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정리본당 [한] 德亭里本堂 [관련] 의정부본당

1930년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 덕정리(京畿道 楊州郡 伊淡面 德亭里)에 창설된 서울교구 소속 본당. 의정부본당의 전신. 주보는 하자 없으신 성모성심. 개성본당의 공소로 출발하여 1930년 피숑(L. Pichon, 宋) 신부가 초대주임으로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임진강 이남의 연천군(漣川郡), 가평군(加平郡), 포천군(抱川郡), 파주군(坡州郡), 양주군(楊州郡), 등 5개 군을 관할하며 의정부, 동두천, 신암리 등 각 처에 공소를 두었다. 1945년 2월 24일 피숑 신부가 사망하자 윤형중(尹亨重, 마태오) 신부가 잠시 본당을 맡았고, 이어 김피득(金彼得, 베드로) 신부가 부임, 1946년 본당을 의정부로 이전하여 의정부본당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덕정리는 의정부본당의 공소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의정부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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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수도원 [한] 德源修道院 [관련] 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

⇒ 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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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본당 [한] 德源本堂 [관련] 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

1927년 함경남도 덕원군 덕원읍(咸鏡南道 德源郡 德源邑)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덕원면속구 관할 본당. 주보는 성 베네딕토. 1927년 덕원 베네딕토 수도원이 창설됨과 동시에 수도원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덕원 베네딕토회의 수사 신부들이 사목을 담당했으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교회탄압이 가중되어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 수도원장 로트(L. Roth, 洪)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cher, 安) 신부, 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W.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되고, 이어 차례로 덕원 수도원 신부들이 체포됨과 동시에 수도원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도 폐쇄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본당 관내에 24개의 공소를 두었다. (⇒) 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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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면속구 [한] 德源免屬區

북한 침묵교회 교구의 하나.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독립된 교구. 1922년 조선 대목구에서 대구 대목구가 분리되고 조선 대목구에서 원산(元山) 대목구를 떼어내어, 앞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활동 중인 독일의 오틸리엔의 성 베네딕토회 선교사들로 하여금 함경남북도와 만주 북간도(北間島) 지방의 포교사업을 맡게 하였다. 베네딕토회는 당시의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요청에 따라 이미 1909년에 서울에 진출해서, 백동(柏洞, 지금의 惠化洞)에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사범학교와 직업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원산 대목구를 새 포교지역으로 담당하게 된 베네딕토회에서는, 1921년 5월 1일 사우어(Bonifatius Sauer, 辛) 신부가 주교로 승품되어 포교 중심지를 원산 가까이의 덕원(德源)으로 정하고, 우선 새 수도원과 신학교 그리고 공장들의 건립에 착수하였다. 1927년 수도원과 신학교 건물이 준공되자 1927년 서울에 남아 있던 신부들과 신학생들이 서울을 완전히 철수하여, 덕원으로의 이전이 끝났다. 이에 본격적으로 포교사업을 전개한 원산대목구는 날로 교세가 신장되어, 1928년 7월 19일에는 간도지방을 위해 연길(延吉) 지목구를 설정 독립시켜, 이미 이곳에 진출하여 포교 중이던 같은 오틸리엔의 성 베네딕토회원에게 위임하였다. 이어 1940년 1월 12일에는 덕원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몇몇 본당을 교황청 직속의 면속구(免屬區)로 분리 독립시키는 동시에, 종래의 포교지인 원산 대목구를 함흥(咸興) 대목구로 개칭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인 주교에게 넘겨주기로 하였으나, 우선은 덕원의 수도원장이 관리하게 되었다.

덕원면속구는 원산을 포함하여 불과 4개 본당으로 구성되어 수도원 주변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그 범위가 좁아 집중적으로 사목할 수가 있어 급속히 성장하였고, 더구나 교구에서 경영하는 공장, 병원, 인쇄소 등은 교구 발전의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구에도 도움을 주어 천주교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1945년 민족해방과 더불어, 불행히도 한반도의 북반부가 공산정권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수도원은 1949년 5월 9일 공산정권에 의해 몰수당하고, 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신부와 수사, 수녀들이 감금당하여, 갖은 고난 속에서 혹은 감옥에서 죽고, 몇몇 살아남은 사람들만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가, 다시 한국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우어 주교를 잃은 그들은 1952년 5월 9일에 비테를리(Bitterli, 李) 신부가 교구장서리로 임명되고, 그 해 7월 7일에 경상북도 왜관에 수도원이 설립되자 다시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왜관수도원은 후에 한국인 신부에 이양되었다. 현재 왜관 대수도원 대원장인 이동호 아빠스가 함흥교구와 덕원 면속구의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다.

[참고문헌] A. Kaspar, P. Berger, Hwan GAB 60 Jahre(還甲) Munterschwarzach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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