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원 성 베네딕토수도원 [한] 德源 聖~修道院

1927년 함경남도 덕원에 세워진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 1909년 한국에 진출하여 서울의 백동(柏洞, 현 惠化洞)에 수도원을 세우고 교육사업을 위주로 활동하던 오틸리엔 성 베네딕토회가 1920년 원산교구를 관할하게 되자 수도원을 포교지로 이전하게 되어 1927년 3월 덕원에 세워졌다. 피어하우스(Vierhaus, 河) 신부가 수도원 건물을 로마네스크 · 히루사우 양식으로 설계, 1926년 정지작업을 시작하여 1927년 3월에 완공하였다. 완공 후 서울에 있던 철공장과 목공장이 이곳으로 옮겨졌고, 1928년 덕원신학교 교사가 신축되고 1930년 인쇄소가 설치되었으며, 이어 병원이 개설되어 이후 원산교구의 전례, 교육, 문화, 출판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교회에 대한 박해가 가중되는 가운데 1949년 5월 원산교구장 겸 대원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를 비롯하여 수도원 내의 수사, 신부들이 체포되고 수도원을 포함한 모든 수도원 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폐쇄되었다. 시미트(C. Schmid, 金) 신부가 초대원장으로 1930년까지 재직했고, 로트(L. Roth, 洪) 신부가 1930년에서 1949년 5월 폐쇄되기까지 2대 원장으로 재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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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서도문 [한] 德敍禱文 [관련] 성모덕서도문

성모덕서도문의 준말. ⇒ 성모덕서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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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경 [한] 德鏡

1889년 중국 상해에서 상 · 하 2권 1책으로 간행된 마리아에 대한 신심서. 저자는 중국인 예수회 신부 이체(李杕, 1840~1911). 제목이 암시하듯 내용은 ‘덕(德)의 거울’로서 모범적인 일생을 산 마리아에 대한 것으로 상권에는 ‘성모전’(聖母傳)이라는 제목으로 19장의 상본과 함께 마리아의 전기가 실려 있고, 하권에서는 제목 없이 마리아에 대한 한 달 동안의 묵상자료 31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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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한] 德 [라] virtus [영] virtue

넓은 의미로 완전히 계발된 인간 능력, 또는 인간에게 있는 존재론적 가능성들이 완전 개화(開花)한 상태를 말하나 좁은 의미로는 윤리선(倫理善)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덕은 그 기원과 성격, 목적과 획득 양식에 따라 편의상 자연덕과 초자연덕으로 구분된다. 자연덕은 인간이 일반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선행의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즉 반복되는 행습(行習)으로 얻어지는 하나의 숙달이며 일정한 선행을 기꺼이 또 쉽게 하게 만든다. 그 예로 오랫동안의 행습으로 판단력을 키우면 상황에 따라 쉽게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초자연덕은 인간이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초월자이신 하느님께서 무상(無償)으로 베푸시는 덕을 의미하며 이는 인간이 타고난 자질을 고양(高揚)시키는 것이다. 거기서 인간이 자기의 구원을 바라고 초자연적 행위를 할 능력을 얻는다. 이는 하느님이 성세성사 때 주입해 주시는 것이기에 주부덕(注賦德)이라고도 한다. 인간적인 노력으로 습득하는 수득덕(修得德)이 아닌 만큼 친숙하게 기꺼이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초자연적인 행동이 나올 수 있는 적성과 가능성을 조성해 준다. 이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데는 은총의 도움을 입어야 할 뿐 아니라 인간편에서도 받은 은혜에 자신이 응답함으로써 현실화의 과정에 기여해야 한다. 이 때 수득덕이 주부덕의 작용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신앙의 차원에서 볼 때 순수 자연이나 순수 초자연은 실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므로 이와 같은 이론적 구별이 필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초자연덕에는 대신덕(對神德)과 윤리덕(倫理德)의 일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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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본당 [한] 大和本堂

원주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영해 데레사,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일대는 1890년대에 풍수원본당 공소로 설정되었고 이후 원주본당, 주문진본당, 강릉본당 등으로 관할이 바뀌면서 교세가 신장되어 1929년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평창군 대화면 대화리에 부임, 본당을 창설하였다. 윤예원 신부는 개인집을 마련하여, 개조, 성당으로 사용하였으나 화재로 소실되자 1933년 하(下)대하리의 구(舊) 공립보통학교 교사를 매입,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윤예원 신부 부임 이후 본당은 날로 발전하던 중 6.25 전쟁으로 인해 성당이 파괴되고 신자들이 흩어져 발전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종전 후 복구작업이 시작되어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1965년 원주교구의 설정과 함께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로 소속이 바뀌었다. 1969년에는 본당이 평창군 평창읍 중리로 이전되면서 본당이름이 평창본당으로 바뀌고 또한 성당이 신축되면서 주보도 로사리오의 성모로 바뀌었다. 현제 주임은 백승치(白承治, 요한) 신부이며, 1984년 교세는 신자수 762명, 공소 1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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