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세기 사이에 갈리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전례양식으로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 지방에 전교한 최초의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로마전례와 일치하지만 전례력의 배열, 빵과 포도주의 봉헌 때 의식, 미사의 모든 기도가 매일 바뀐다는 점 등이 다르다. 오늘날 밀라노나 토레도에서 사용되는 전례의 일부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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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세기 사이에 갈리아 지방에서 사용되었던 전례양식으로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 지방에 전교한 최초의 선교사들에 의해 도입되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로마전례와 일치하지만 전례력의 배열, 빵과 포도주의 봉헌 때 의식, 미사의 모든 기도가 매일 바뀐다는 점 등이 다르다. 오늘날 밀라노나 토레도에서 사용되는 전례의 일부와 비슷하다.
Calistus 1세 교황(재위 : 217~222). 성인. 순교자. 축일은 10월 14일. 로마의 성 갈리스도 묘지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Calistus 2세 교황(재위 : 1116~1124). 보르무스의 정책조약에 의해 임직권(任職權) 투쟁을 종결시켰다.
Calistus 3세 교황(재위 : 1455~1458). 스페인의 보르지아 가문 출신.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품행이 단정했고 온유한 성품의 인물이었다. 터키군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부심(腐心)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모든 그리스도 교인. 주로 개신교 신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서간의 이해를 위해서는 바울로가 서간을 보내는 교회의 역사적 상황을 필연적으로 알아야만 한다. 바울로로 하여금 개입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위기는 지역적 중요성을 땐 사건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탄생하는 교회의 발전에 중대한 순간이며 특별한 양식으로 이방인 들에게 파견된 바울로가(사도 9:15, 22:21,26:17)교회의 팽창에 있어서 갖고 있는 역할은 사도행전이 세세하게 전해 주고 있는데 그의 선교는 유태인 기원의 환경권으로부터 오는 지속적인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사도 15:1).
① 위기의 상황 : 이 위기는 3개의 중심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 교의적(敎義的) 위기 : 갈라디아서 1장 8절과 9절을 볼 때 바울로가 갈라디아에서 선포한 것과는 다른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권위의 위기 : 바울로에게 있어 사도직의 합법성은 위에서 언급된 자들에 의해 사도 바울로의 설교를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거부되고 있다.(5:1·13). ㉰ 다른 곳에서 온 자들에 의해 갈라디아의 교회들 안에서 선동된 위기 : 이들의 악한 영향을 받아 무기력하게 버틸 수 밖에 없었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폭력을 구사한다(1:6, 3:1, 4:17, 6:12).
이와 같은 위기는 극도로 고조되고 있었다. 바울로는 그렇게도 빨리 하느님을 외면하고 있다는데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1:6). 바울로가 서간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선동가들은 활발하게 갈라디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1:7, 4:17, 5:10, 6:12). 사도 바울로는 그들의 세력권에 들어갔거나 그 세력의 영향권에 깊게 스며들어가 있는 교회들에 이 서간을 보낸다. 그러므로 이 서간은 적들이 있는 가운데 교회들 안에서 읽혀질 것이고, 그래서 위기는 고조에 달할 것이다. 언급할 것은, 바울로는 항상 결정을 취해야먄 할 교회들에 서간을 보낸다는 점이다. 그의 목적은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류에 빠져 있는 자기의 교회들을 구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다.
② 수취인 및 저작 연대 : 저자는 갈라디아 사람들(3:1), 또는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1:2)에 이 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점은 바울로의 다른 서간들이 일반적으로 도시의 한 교회에 보내는(로마서, 고린토서, 필립비서, 골로사이서, 데살로니카서) 양식과는 조금 특수한 경우이다. 여기서는 여러 교회가 문제시 되고 있다. 19세기에는 남쪽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들에 이 서간이 보내진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었다. 이 경우라면, 이 서간은 첫 번째 선교여행 직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짙기 때문에 49년경 안티오키아에서 보낸 바울로의 첫 번째 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바울로다 두 번째 갈라디아 여행을 마친 뒤(4:13)그리고 사도행전 18:23에서 언급되고 있는 북쪽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서간을 보낸 것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즉 에페소에서의 기나긴 체류가 끝날 무렵인 56~57년 겨울에, 곧 로마서를 쓰기 6개월 전에 바울로가 이 서간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이 경우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유사성이 더 잘 설명될 수 있다.
③ 구조 : ㉮ 제1부 1:1-2:21(바울로의 선교). △ 바울로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만 온다(1:11-24). 바울로는 여기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정경성(正經性)을 입증하고 있다. △ 예루살렘의 제자들에 의해 인정받은 바울로의 사도직(2:1-10). 바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회의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 안티오키아의 논쟁에 의해 확인된 바울로에게 있어 사도직의 권위(2:11-21).
바울로는 의화(義化)의 교의(敎義)를 소개하는데 율법의 준수에 의해서가 아니라(2:15-21) 유일한 복음을 형성하는(1:6-10)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의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 제2부 3:1-4?31(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선포한 복음은 구약성서에 의해 확증된다). △ 서언 3:1-5, 갈라디아 사람들이 과연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죽을 위협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가? △ 율법과 신앙(3:6-29). △ 율법과 은총(4:1-31). ㉰ 제3부 5:1-6·10(복음의 자유). △ 할례에 대해서 자유인(5:1-12). △ 자유인, 그러나 사랑에 가득찬 자유인(5:13-25). △ 그리스도의 율법(5:26-6:10). △ 권고(6:11-18). 마지막 권고는 서간의 중심 주제로 환원된다.
④ 요약 : 바울로는 세 단계에 걸쳐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변호한다. ㉮ 어디서 복음이 유래하는가 하는 복음의 기원(1:11-2:21) : 바울로는 다마스커스에서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이 복음을 받았다. ㉯ 내포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3-4) : 바울로는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다시 취하면서, 율법이란 그리스도께 우리를 인도해 가기 위한 교육법이었음을 지적한다. ㉰ 우리를 어디로 끌어 가는가 하는 복음의 목적(5-6). 바울로는 자유를 향해 끌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스도 교인에게 있어서 계명이란 더 이상 있을 수없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 그리스도교인을 인도하는 내적인 율법, 곧 성령만이 있을 뿐이다. 성령에 의해 인도 되도록 자신을 내어 놓는 조건 하에서만 더 이상의 율법은 존재치 않는다. (安승鐵)
[참고문헌] Nouveau Testament, TOB,1977 / Pierre Bonnard, L’epitre de St. Paul aux Galates, Paris 1972 / A. Kueu, Introduction au Nouveau Testament, Emmaus, Paris 1982 / P. Grelot, L’achevement des Euifunes, Desclee, Paris / E. Charpentier, Pour une premiere lecture de la Bible, Cahiers evangile Nio Cerf, Paris 1974 / E. Charpentier, Pour lire le Nouveau Testment, Cerf, Paris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