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한] 山上垂訓 [라] Sermo in monte [영] Sermon on the Mount [관련] 여덟가지 행복 주의 기도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설교 가운데 가장 포괄적인 설교로 가파르나움 근처의 언덕에서 군중에게 들려주었다. 마태오 복음의 5-7장에 기록되어 있고 루가복음에는 축소된 형태로 6장 20-26절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설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생활해야 할 것인가를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지상의 소금이 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의 지침으로 주어진 진복팔단(眞福八端, Beatitudines)에서 산상설교는 시작된다.

진복팔단의 첫 부분 ‘마음이 가난한 자'(마태 5:3)는 종종 잘못 해석되어 물질적인 가난과 정신적인 가난을 분리시켜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는 수가 많았다. 구약성서는 하느님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옹호자(시편 107:39-43)이며, 하느님의 대리자인 지상의 왕이 가난한 자를 돌봐야 함(시편 72:1-4)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전통에 따르면 이방인의 유혹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여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은 그들의 강직한 신앙심 때문에 가난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며, 그러한 가난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에 의한 것임을 제시하여 가난을 타파하여야 함도 아울러 보여준다. 이러한 가난은 구약의 후기, 즉 바빌론 유폐와 로마인에 의한 지배상황에서 발생한 메시아사상과 결부되어, 메시아의 구원을 확신하고, 그러한 메시아의 구원사업에 참여하여 투신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자, 혹은 마음이 가난한 자로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가난과 정신적인 가난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메시아사상을 매개로 서로 연결, 통일되어 있다. 루가복음에서 그냥 ‘가난한 자'(6:20)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좋은 시사점을 준다. 진복팔단의 다른 구절도 그 당시 유태인들이 처하고 있던 로마에 의한 압제상황을 젖혀놓고서는 이해하기 곤란하다. 즉 산상수훈의 참된 축복은 가난한 자, 의로움에 굶주린 자, (그러므로) 슬퍼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에게 내려지며 바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 건설이 주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또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예언자적 선언이다. 종말론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고 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임을 선언하고 이 역사(役事)를 위해 인간의 결단과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진복팔단에 이어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적 사상이 피력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율법이 구약의 율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윤리적 기준인 사랑으로 완성하려는 것임을 밝힌다. 하느님에게 가까워지는 방법으로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마태 6:9-13)를 가르쳤다. 산상수훈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인간의 결단에 대한 요청과 예언자이면서 교사인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산상수훈은 초대 교회공동체의 윤리적 기준에 잘 조화되며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윤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인간을 구속하는 율법이 아니라 인간이 온갖 억압에서 해방되기 위해 지켜져야 할 율법(복음)이다. (⇒) 주의 기도, 여덟가지 행복

[참고문헌] Augustinus, De Sermone Domini in Morte (Miogne PL 34), 1229-1308.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산 마리노 [원] San Marino

이탈리아반도의 중부에 있는 유럽의 최소 · 최고의 공화국. 면적 61.19km2, 인구 약 2만 1,000명(1982년 추계). 공용어는 이탈리아어이며, 통화도 이탈리아의 리라이다. 주요 산업은 농 · 목업 이외에 방직업 · 건재업 · 포도주 · 도기 · 피혁제조 등이며, 또 관광업과 우표발행으로도 큰 수익을 얻고 있다. 1982년 현재 전 인구의 100%가 가톨릭 신자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삭발례 [한] 削髮禮 [라] tonsura [영] tonsure [프] tonsure

칠품 중 제 1품급인 수문품(守門品)을 받기 전에 행해지는 예절. 머리를 깎음으로써 세속을 끊고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봉헌한다는 뜻의 이 예절은 보통 착복식과 같이 행해져 수도자인 경우 수도복을 입을 수 있고, 성직희망자인 경우 수단과 로만칼러를 착용할 수 있다. 성직희망자나 수도자 모두 신학교나 수도원생활이 시작되기 전에 최초의 삭발례를 받을 수 없다. 전에는 삭발례를 받음으로써 성직(聖職)에 입단하였으나 현재는 부제품(副祭品)을 받음으로써 성직에 입단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후묵상 [한] 死後默想

일반 신자들이 죽음을 묵상토록 하기 위하여 1894년 르장드르(Le Gendre, 崔昌根, 1866-1928) 신부가 저술한 책. 판형 13cm×22cm, 총 128면에 한글로 쓴 이 책에는 사후묵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서론에 해당되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고, 그 뒤에 ‘론사심판이라’, ‘론디옥이라’ ‘론텬당이라’, ‘공심판이라’ 하여 각각 사심판(私審判) · 지옥(地獄) · 천당(天堂) · 공심판(公審判) 그리고 연옥(煉獄)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천주가사(天主歌辭)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경향잡지> 1919년 통권 13호에 게재된 바도 있지만 감준(監准)을 받고 공간(公刊)되지는 않은 것 같다. 책의 맨 끝에는 ‘대청광서 20년 대조선 개국 503년 갑오 정월일 필 책주 최신부'(大淸光緖二十年大朝開國五百三年 甲午正月日畢 冊主 崔神父)라고 적혀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효론 [한] 事效論 [라] ex opere operato

성사(聖事)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행위인 성사적 예절에 내재하는 힘에 의하여 주어진다는 이론. 이는 성사의 유효성이 성사 집전자의 성덕(聖德)이나 의도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지에 관한 문제이며, 영향을 받는다고 긍정하는 인효론(人效論)에 대립하여 주장되었다.

역사상 이 문제가 처음으로 야기된 것은 256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주교였던 치프리아노와 당시의 로마 교황 스테파노와의 대립이다. 아프리카 교회에서는 이단자들로부터 받은 세례를 무효로 보아 그 세례자가 정통교회에 귀의할 때는 재세례를 베풀었으나, 로마 교회에서는 이단자들이 베푼 세례이더라도 정당한 절차와 성삼(聖三)의 이름으로 베푼 성사는 유효하다고 하였다. 아프리카 교회는 반달족의 침입으로 멸망(5세기 초)되어 그 전통이 중단되었고 로마 교회의 입장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 후 312년에 같은 문제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교회에서 도나투스 열교 사건을 통하여 재발되었다. 체칠리아노의 카르타고 주교 서품식을 공동집전한 3명의 주교 가운데 과거에 배교한 적이 있는 펠릭스 주교가 끼어 있었는데, 체칠리아노를 반대하던 엄격주의자들은 그의 서품을 무효라 하면서 도나투스를 주교로 선출하여 이에 대립시킨 사건이 그것이다. 그러나 정통교회는 체칠리아노의 주교 서품을 유효하다고 인정함으로써 성사의 유효성은 집전자의 성덕과 무관함을 보여 주었다. 8세기 이래 성직자들의 생활이 불성실해지자 마침내 프랑스의 알비인과 스위스의 보인 등은 정화운동을 벌이면서 타락한 성직자가 집전한 성사는 은총을 전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재위 : 1198-1216)는 독성 행위와 성사집전 행위를 구별지으면서 행위자(opus operans)의 행실이 깨끗하지 못할지라도 이행된 행위(opus operatum, 즉 그 자에 의하여 이행된 성사적 행위)는 깨끗하다(De Sacro Altaris Mysterio 3, 6)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구별방법은 13세기 중엽 모세의 예식과 그리스도교의 성사를 서로 구별하여 설명하는데 응용되었다. 즉 모세의 예식은 수령자의 신앙 정도에 따라 인효적으로(ex opere operantis) 은총을 주는 반면, 그리스도교의 성사는 사효적으로(ex opere operato) 수령자에게 은총을 준다고 한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사의 효력이 집전자의 성덕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트리엔트공의회는 성화의 사효성(事效性)을 재천명하였다(Denz. 1608).

사효론에 의하면 성사의 예절은 집전자의 의도보다 그리스도와 교회가 정해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객관적 의도가 성사 집전자를 강요하며 성사의 효력을 나타낸다. 즉 교회가 정해 둔 객관적인 절차와 사물이 구원의 은총을 실제로 전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사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집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사의 표징을 통하여 전달하고자하는 은총이 전달되도록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회의 예식을 집행하는 일이다.

성사의 유효성에 관한 한 사효론이 성사 신학의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 사효론은 성사 집전자의 개별적인 참여보다 교회의 객관적 조직을 더 중요시한다. 성직자는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선물을 성사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전달하는 봉사 직무를 가진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성직자의 의도를 초월한다. 즉 성사를 이루는 것은 교회 공동체이고 성직자는 중개역할만 한다. 이처럼 사효론은 성직자의 존재가 타인을 위한 것이라는 사제 영성(靈性)과도 부합한다. 또 사목상으로도 사효론은 신자들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성사의 효력이 성직자의 성덕이나 의도에 의하여 좌우된다면 신자들은 성사받기 전에 성직자의 사상과 사생활을 미리 알아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수령한 성사의 효력도 의심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사의 효과면에서 그리스도 안에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와 성사 수령자가 지니는 신앙의 역할에 대하여 상호 이해를 깊이 하게 되었다. 성사의 사효성을 인정한 트리엔트공의회는 성사가 성사 수령자의 신앙을 증진시키는 점이나 성사 수령자의 신앙이 성사 은총을 받는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함을 부정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공의회 교부들은 의화(義化)가 성령의 작용 정도와 이에 대한 인간의 지향 및 협력 정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명언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P.L. Hanley, Ex opere operato,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5, McGraw Hill, 1967 / 金慶恒, 聖事의 有效性, 神學展望, 36호, 1977.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