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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간행된 한글번역 4복음서.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성경 한글번역 계획에 따라 1906년부터 당시 황해도 황주(黃州)본당 주임 한기근(韓基根) 신부와 황해도 봉산 검수(檢水)본당 주임 손성재(孫聖載) 신부가 4년간에 걸쳐 번역한 것으로, 손 신부는 마태오복음을 번역하고, 한신부가 나머지 3복음의 번역과 전체의 역주(譯註)작업을 했으며 뮈텔 주교가 감준(監準)하였다.
한기근 신부는 책의 출판에 앞서 일반 교우들의 강독을 위해 띄어쓰기와 마침표를 사용하려 했으나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우리 철자법은 많은 시정이 요구되나 감히 시정하지는 않았다”고만 밝힐 뿐이다. 책의 크기는 14.5cm×8.5cm, 445면의 양장판이며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60년간을 한국 천주교회의 유일한 복음서로 교우들에게 읽혀 왔다. 번역에 사용된 텍스트는 라틴어판 ‘불가타'(Vulgata)로 추정된다.
⇒ 판관기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로부터 사무엘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 구약성서에서 7번째에 위치한다. 이 판관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각 부족들에 의한 가나안 정복에서 시작하여 엘리야, 사무엘 시대까지, 즉 기원전 12∼11세기에 걸친 역사 사건들을 토대로 삼고 있다. 저자의 목적은 하느님의 섭리, 즉 배신행위는 항상 처벌되고, 하느님에 대한 충실은 항상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하는 데 있었다. 판관이란 이 시기에 이스라엘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 히브리어의 판관이란 말에는 ‘구원자’란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즉, 백성을 외적(外敵)으로부터 구해주는 사람이다. 나중에는 더 나아가 사람들은 판관에게 판결을 의뢰했고, 그를 일종의 집정관(執政官)으로 받들고(판관 4:5), 헬리(Heli)(1사무 4:18) 및 사무엘과 그 아들들(1사무 7:8 이하)을 판관의 반열에 넣었다. 그러나 개개의 종족은 아직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대표자들로 간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판관기는 내용에서 크게 3부로 나누어진다. 첫머리 부분(1:1, 3:6)은 여호수아기(記)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여호수아시대가 목표로 삼았던 가나안의 완전 정복이 아직도 달성되지 않은 까닭을 천명한다. 즉 이스라엘은 야훼를 아주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훼는 이교 민족,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자신의 정화(淨化)를 위해 그 후 오랫동안 생활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민족, 즉 가나안인을 비롯한 가지각색의 인접민족을 통해서 이스라엘인을 처벌하였다. 둘째 주요 부분(3:7, 16:31)을 이루는 것은 이스라엘인과 이들 인접민족과의 투쟁이다. 이 투쟁은 6명의 대(大)판관과 6명의 소(小)판관, 도합 12명의 판관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글 12편의 각 판관들의 이야기는 일정한 의도적 계획에 입각해서 서술되어 있다. 즉, 이스라엘인들이 악(惡)을 행하면 야훼는 그들을 억압하기 위해 그들의 적을 보낸다. 그들은 야훼에게 갈구한다. 야훼는 구원자가 될 판관을 보내고, 판관은 적을 쳐부수어 평화를 회복한다. 이 예언자적으로 고안된 플랜은 제1화인 판관 오드니엘(Othoniel)(3:7-11)에서 가장 눈에 띄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된다. 그 대신 그 다음의 이야기들이 훨씬 생기 있고 힘찬 느낌을 준다. 아비멜렉(Abimelech)의 이야기(9장)는 이 부분의 원줄거리에서 벗어난다. 또한 셋째 부분의 끝부분(17-21)도 역시 원줄거리와는 다르며,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두 가지 추가, 즉 단족(族)의 이동과 베냐민족에 대한 조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까 둘째 부분과 셋째 부분의 이야기는 편자(編者)가 원래 있던 것을 정리해서 실은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편자는 판관 오드니엘에서는 본이 될 만한 서술법을 안출하고 그 밖의 판관들 이야기는 그것에 준해서 안배(按配)하였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전체 이야기 앞에다 서문(序文)을 배치하였다. 이 서문은 그와 동시에 본문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역할을 하고 있는 유다민족을 위한 변명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다윗의 최초의 치세(治世) 때 제작된 것이며, 그 권력의 영향권이 아직도 남방에 한정되어 있을 무렵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판관기에는 후에 다소간 가필(加筆)되었다. 그리고 텍스트 중 약간부분이 훼손되어 있다(70인역 성서는 그 부분을 수복하는 데 공적이 있다). 판관기의 의의는 사실적(史實的) 면보다 오히려 종교적 면에 있으며, 이교민족은 야훼의 손에 의해 이스라엘인들을 징계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모든 점에서 하느님의 지배에 대한 확신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이것이 이 책에 불후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사사기(士師記)라 했으나 1970년대에 성서의 공동번역과정에서 그 명칭을 ‘판관기’로 고쳐 부를 것을 확정하였다.
[참고문헌] O. Eissfeldt, Die Quellen des Richterbuches, 1925 / K. Wiese, Zur Literarkritik des Buches der Richter, 1926 / A. Vincent, Le Livre des Judge, Paris 1952 / J. Bright, A History of Israel, Philadelphia 1960.
성세 · 고해 · 성체 · 견진 등 사본문답(四本問答)을 수록한 교리서. 1864년 간행된 ≪성교요리문답≫의 별칭이기도 하다. 1864년 초간(初刊) 이후 1925년 ≪천주교요리문답≫이 간행되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교리서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에 영세 · 고해 · 성체 · 견진문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본문답으로도 불렸다.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의 내용과 체제를 축소 필사한 것으로, 크기는 소지하기 편리한 8.6cm×11.2cm의 수진본(袖珍本)[오늘날의 포켓판에 해당되는 소형책자]이며 총 36장(張)의 분량에 성세문답 69조목, 고해문답 36조목, 성체문답 23조목, 견진문답 22조목 등 모두 150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성교요리문답≫과 함께 1934년 ≪천주교요리문답≫(天主敎要理問答)이 간행되기 전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교리서로 사용되었다. (⇒) 성교요리문답
교리문답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네 가지 문답 즉 영세 · 고해 · 성체 · 견진문답을 말한다. (⇒) 사본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