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아제도 [원] Samoa Islands [한] ∼諸島

남태평양 중부, 폴리네시아 서부에 위치하는 제도. 면적 2,842㎢, 인구는 16만 명(1982년 추계)이다. 정치적으로는 서부의 서사모아 공화국과 동부의 미국령 동사모아로 나뉜다. 19세기 말 사모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미국·영국·독일의 세 나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린 끝에, 영국은 통가 제도를 보호령으로 하고, 미국과 독일이 서경 171°를 경계로 하여 동쪽은 미국이, 서쪽은 독일이 각각 영유하였다. 가톨릭 신자 약 4만 명, 본당 19개소(1982년 12월 추계)가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말 [한] 四末 [관련] 종말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네 가지 마지막 문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결국 죽어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리고 나서는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야한다. 그래서 죽음, 심판, 천당, 지옥을 천주교 요리문답에서 사말이라 불렀다. (⇒) 종말론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마리아 [영] Samaria [그] Samareia [히] somron

그리스도의 시대에 팔레스티나는 3개의 지구로 형성되어 있었다. 북부의 갈릴래아, 중앙에 사마리아, 남부에 유다가 있었다. 사마리아는 요르단강에서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펼쳐져 있었다. 구약시대에 12부족이 가나안땅을 분할 소유할 때 에프라임족(族)과 마나세족이 후에 사마리아 지방이라 불리게 될 부분을 소유하였다. 솔로몬왕 시대 이후에 사마리아는 북왕국, 즉 이스라엘 왕국으로 알려지게 되어, 남쪽의 유다 왕국과 구별되었다. 특히 사울, 다윗, 솔로몬 등 몇 사람의 왕들의 시대에 남북은 통일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강생 이전의 거의 모든 시대에 남북 양국은 적대관계에 있었다. 많은 유태인들은 그리스도가 사마리아인에게조차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요한 4,8-9). 사마리아가 가장 번영한 것은 기원전 8세기였다. 그러나 그 뒤 앗시리아군(軍)의 침략으로 사마리아인이 추방 유형당하였다. 현재 사마리아는 요르단의 북서부로 편입되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리원본당 [한] 沙里院本堂

이 본당의 전신인 봉산검수(鳳山劍水) 본당이 재령(載寧) 본당에서 분리 독립한 것은 1900년이었는데 초대 신부로 이종국(李鍾國, 바오로) 신부가 부임했으며, 1905년부터 6년간은 손성재(孫聖載, 야고보) 신부, 1911년 샤보(Julius Chabot, 車麗松) 신부, 1913년부터 이기준(李起俊, 토마스) 신부가 2년간 전교한 후 서흥(瑞興) 본당에서 또 1년간 전교하고, 1916년 마침내 사리원 본당신부로 부임, 이 본당은 정식으로 발족하였다. 이기준 신부는 사리원의 그 전의 공소는 물론 황주 · 서흥 · 봉산군 외에 평안도 중화지방과 황해도 신계지방 일부까지도 포함한 총 35개 공소의 1,500여명 신자를 관할하였다. 1936년 서울교구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金命濟, 베드로) 신부가 4대 본당신부로 부임하면서 감목대리구도 사리원 본당으로 옮겨왔다.

1934년 서울의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에서 4명의 수녀가 파견되어 전교사업과 유치원 및 성모성심학원 일을 맡아보기 시작하였다. 1937년을 전후하여 김명제 신부는 황해도 내에서 가장 웅대한 2층 벽돌 성당을 비롯하여 사제관(2층), 수녀원(4층) 등 일련의 건축공사를 완료하였으며, 그 무렵의 본당 총교세는 1,326명이었다. 1942년 5대 박우철(朴愚哲, 바오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8.15광복 이듬해인 1946년 12월 서울교구장 노기남(盧基南, 바오로) 주교의 명에 따라 27세의 전덕표(全德杓, 안드레아) 신부가 38선을 넘어 사리원 본당 보좌로 부임하였다. 그는 회갑이 넘은 박신부를 잘 보좌하면서 북괴 정치보위부의 감시하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열심히 사목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사리원 시내가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혼란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다가 그해 10월 정치보위부에 감금되어 혹독한 전기고문을 당한 후 살해당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후 유엔군의 1.4후퇴 때 신자들은 박우철 본당신부와 함께 남으로 피난함으로써 이 본당은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역대 주임신부는 1대 이기준(토마스, 1916-1923년), 2대 백남희(白南熙, 베드로, 1923-1933년), 3대 박정렬(朴貞烈, 바오로, 1933-1936년), 4대 김명제(베드로, 1936-1942년), 5대 박우철(바오로, 1942-1950년) 신부였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사랑의 선교회 [한] ∼宣敎會 [영] Convent of the Missionaries of charity

① 1950년 10월 7일 마더 데레사(Mother Theresa)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Calcutta)에서 창설된 수녀회. 1981년 6월 한국 진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하는 이 수녀회는 1981년 5월 데레사 수녀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초청에 의해 6명의 회원수녀가 처음 내한하였다. 서울 봉천동(奉天洞)에서 1981년 9월 현재의 서울 용산구 산천동으로 이전하여,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맹인부모와 그 자녀들에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분원장 래티시아(Laetitia) 수녀 외에 6명의 회원수녀와 한국인 지부장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② 1963년 마더 데레사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에서 창설된 남자 선교수도회(Missionary Brothers of Charity). 1977년 7월 5일 한국에 진출. 버림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활동 목적으로 하는 이 수도회는 1975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어 철수한 후 극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2명의 회원수사가 내한하였다. 서강대학교 예수회 신학원 내의 임시숙소에서 1977년 7월 20일 서울 삼선동(三仙洞)에 소재한 국제가톨릭형제회(A.F.I.)의 건물 일부를 빌어 이전하였다. 1979년 10월 한국인 첫 서원식을 가졌고 1980년 2월에는 한국지부에 극동관구 본부를 설치하였다. 1983년 12월말 현재 한국지부장 성낙두 수사 외에 21명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 · 남대문 · 중부시장 · 정신박약아 수용소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무의탁 중풍환자 등을 수용하여 돌보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