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테를리 [원] Bitterli, Timotheus

Bitterli, Timotheus(1905∼1990). 몬시뇰. 왜관(倭館) 성 베네딕토수도회 초대원장, 초대왜관 감목대리, 제2대 덕원(德源) 면속구 및 함흥교구장 서리. 제3대 연길(延吉)교구장 서리. 한국명 이성도(李聖道). 스위스에서 출생. 1927년 독일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수도회에 입회하여 이듬해 수도서원을 한 뒤 뮌헨 대학에 입학, 1932년 졸업과 동시에 사제서품을 받고 이해 한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내한(來韓)하였다. 내한 후 덕원신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1940년부터는 원산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했으며, 1948년 휴가차 본국으로 귀국했다가 6.25전쟁의 발발로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미국 뉴톤 성 베네딕토수도회의 신학교에서 라틴어와 독일어를 강의하였다. 1951년 한국 성 베네딕토수도회 원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한국에 재입국, 왜관 성 베네딕토수도회를 설립하고, 대구교구로부터 왜관 감목대리구를 분할받아 사목하는 한편, 1952년 5월 덕원 및 함흥교구장 서리, 1954년 연길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었다. 그 뒤 1980년 고령으로 덕원 · 함흥 · 연길교구장 서리를 사임하고, 1982년부터 경북 칠곡군의 파티마 결핵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다.

[참고 : 비테를리 몬시뇰은 1990년 6월 7일 86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경북 칠곡군 석전면 중지리에 있는 왜관 수도원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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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스키 [원] Wyszynski, Stefan

Wyszynski, Stefan(1901∼ ). 폴란드의 가톨릭 성직자. 추기경. 1945년 홀론드(Hlond) 대주교 추기경의 사망으로 비진스키는 그니예즈노 및 바르샤바의 대주교좌 및 폴란드 수좌대주교좌를 계승하였고, 1953년 추기경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에 키엘체(Kielce)의 주교 카즈마레크(Czestaw Kaczmarek)의 재판 때, 그에 대한 고발이 불법임을 공산정부 수상 비에루트(Boleslaw Bierut)를 상대로 공개서한을 통해 항의했다가 투옥당하였었다(1953∼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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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전례 [한] ∼典禮 [영] Byzantine rite [관련] 동방전례

안티오키아(Antiochia) 전례가 발전된 것으로서 모든 동방교회의 전례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전례이다. 고대 비잔틴 제국의 전례였던 이것은 제국의 팽창과 함께 지중해 연안의 동방교회뿐만 아니라 다뉴브강 하류 지역과 발칸반도의 국가들, 슬라브민족국가로 퍼져 나갔고, 이주(移住)와 함께 유럽의 모든 지역과 남북 아메리카에까지 보급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 정교와 러시아 정교에서는 미사 성제와 성사 집행, 기타 다른 교회 의식에서 이 비잔틴 전례를 따르고 있어 로마 전례 다음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례이다.

비잔틴 전례는 성 바실리오(St. Basilius)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St. Joannes Chrysostomus)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두 가지 미사 경문이 있다. 성 요한의 것은 성 바실리오의 것을 수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진다. 비잔틴 전례는 칠성사(七聖事)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특히 성세성사와 성체성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례의 방법은 침수례(浸水禮)이며 세례 후 즉시 견진성사를 베풀게 되어 있다. 또한 ‘성체분배 전례'(the liturgy of the Presanctified)가 있는데 이는 전주(前週)에 축성해 둔 성체를 분배해 주는 것을 말한다. 비잔틴 전례력에 있어서는 교회력이 9월 1일에 시작되며 축일 날짜는 그레고리오력을 따른다. (⇒) 동방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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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양식 [한] ∼樣式 [영] Byzantine style

비잔틴제국(330∼1453년)에서 발생하여 서구에 큰 영향을 준 예술양식. 그리스 고전문화의 전통 위에 그리스도교적 요소가 결합되어 발전한 것으로 황제 유스티누스 1세(재위 : 527∼565)시대에 전성기를 이루고 약1,000년에 걸쳐 찬란한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 문화는 동로마제국과 동방교회의 예술적 표현이기도 하다. 타락한 현상이 아니라, 고대 후기에 알렉산드리아 등 동방에서 그 때까지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던 헬레니즘 문화가 차츰 그 빛을 잃어가자, 그것이 비잔틴에서 합류함으로써 하나의 새로운 유기적 양식을 형성하였던 것. 이 문화는 비잔틴제국의 성쇠와 함께 전개되었다.

문화의 특색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며 신비적 색채가 강한 점에 있었고, 비잔틴 사람들은 미라는 것을 외면적이고 가시적(可視的)인 것보다도 오히려 정신적인 가치에 의해서 의식하고 있었다. 비잔틴 문화는 발칸 · 소(小)아시아 · 북(北)이탈리아 · 시칠리아 등의 지역에서 전개되었으며 중세의 유럽에서 라틴 · 게르만계의 문화권과 어깨를 겨룰 만큼 성세를 보였다. 비잔틴문화의 유력한 분야인 미술은 궁정과 교회에서 발전하였다. 교회건축은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에 대원개(大圓蓋)[크고 둥근 지붕]를 두고, 창문이 적은 벽을 둘러쳐 외계와 차단시킨 내부공간에 신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면서도 동방의 영향을 받은 최고의 소재에 다채롭고 호화로움이 있다. 회화에서는 초기와 중기에는 모자이크가 시공되었으며,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의 <유스티누스 1세>와 그리스의 다푸네 수도원에 있는 <그리스도> 등이 대표적 작품이다. 말기에는 모자이크를 대신하여 프레스코 벽화와 이콘이 성행하였다. 조각은 일상용품인 식기 등에 부조(浮彫)를 가한 정도.

비잔틴 문화는 그리스 고전문화를 계승, 중세를 통해 유지하였으며 근세 유럽에 그리스 정신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발칸과 러시아에 거주하는 슬라브계 민족에게는 그들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공헌이 컸다. 비잔틴제국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불안한 때가 많았지만 문화적으로는 그 주위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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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시움 [원] Byzantium

동로마제국의 옛 수도. 1453년 터키군에 함락된 후로는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1923년까지 터키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스,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등 라틴식 전례의 총대주교좌(總大主敎座). 제2, 제5, 제6, 제8 회 공의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비잔티움은 기원전 7세기 중엽 그리스의 식민지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2세기 중엽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0년에 이곳을 로마제국의 새 수도로 정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하였다. 그는 여기에 화려한 수도를 건설하고, 335년 로마와 그리스의 미술품을 옮겨 장식하였다. 황제는 이곳에 수많은 그리스도 교회를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소피아(Sophia)성당은 비잔틴 예술과 고대건축술의 정화로 평가된다. 그는 이교의 신전을 짓는 것을 금했으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개방적이었으므로 예술과 의학, 법률이 융성하고 철학, 수사학, 변론술 등이 발달하였다. 이 곳의 교회들은 단시일에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총주교좌가 되고, 한때는 세계 총주교(ecumenical patriarch)로 자처했으나, 로마 교황은 이것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이곳, 비잔틴은 황제교황주의(皇帝敎皇主義)의 중심이 됐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남쪽 입구에 위치하여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는 이 역사적인 문화도시는 수많은 외침을 받은 역사로도 유명하다. 터키군이 이곳을 함락하여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멸망했을 때 동로마의 학자, 문인들은 이탈리아로 피해갔는데, 이것이 서유럽에 르네상스의 큰 원인의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395년, 로마가 결정적으로 분열된 후 동로마제국은 그 멸망에 이르기까지 콘스탄티누스 황제 치하의 그리스도교적 형태를 띤 로마 세계제국의 정통적인 계승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 지배자는 로마의 황제요, 그 백성은 로마인을 자칭하였다. 제국은 항상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전세계의 지배권을 주장하였다. 그 내적인 특징은 헬레니즘적 특색을 가진 동방적 요소와 융합된 그리스 세계의 그리스도 교화로서 국가가 교회보다 우위를 차지한 점이 그 특징.

[참고문헌] K.E.P. Wulzinger, Byzantinische Baudenkmaler zu Konstantinopel, 1925 / New Catholic Encyclopedia, Washington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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