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티쿰’이란 라틴어의 원뜻은 여행에 필요한 양식을 말한다. 종교적으로는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이 성체를 받는 뜻으로 발전하였다. 옛날에는 노자성체로 불렸다. (⇒) 노자성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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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티쿰’이란 라틴어의 원뜻은 여행에 필요한 양식을 말한다. 종교적으로는 죽을 위험에 있는 사람이 성체를 받는 뜻으로 발전하였다. 옛날에는 노자성체로 불렸다. (⇒) 노자성체
대구 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사도 성 바울로. 비산동의 옛 이름은 날뫼이며, 날뫼는 대구 성밖 서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대구에서 제일 오래된 가톨릭 신자 가정이 살던 곳으로 유명하다. 1829년 기해(己亥)박해 때의 순교자 이 루도비코 일가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루도비코는 모친 수산나와 8세 된 프란치스코, 6세의 데레사와 함께 1855년 한티(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로 피난하여 산골에서 초근목피로 살아가다가 2년 후에 난이 평정된 줄 알고 비산동 본가로 돌아오는 도중 포졸에게 체포, 서울로 압송되어 치명하였다. 이 유서깊은 곳에 대구본당 소속의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09년이었다. 그 뒤 명치정(현 계산동)본당 보좌 소세(Saucet, 蘇) 신부가 약 2년간 비산 공소에서 전교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김영제(金永濟, 요한) 신부, 이약슬(李若瑟, 요셉) 신부, 장순도(張順道, 발라바) 신부 등이 이 공소를 돌보다가 1928년 6월 12일 미알롱(Mialon, 孟)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서 부임하였으나 신병으로 그해 귀국하고 아몽(Hamon, 河)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부임했고, 3대 이종필(李鍾弼, 마티아) 신부를 거쳐 4대 를뢰(Leleu, 盧) 신부가 1943년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사목활동을 전개하였으나 1945년 4월 13일 이후 광복될 때까지 일제(日帝)에 의해 연금생활을 강요당하였다. 6.25 동란으로 많은 본당이 파괴된 가운데서도 비산동본당은 교육사업과 재민 구호사업에 진력하였다. 1952년에는 성심유치원을 설립, 운영함으로써 유아교육에 관심을 표명하였고, 1955년에는 가톨릭 청년회를 결성되었다.
또한 1959년에는 비산동본당을 새로 지어 축성하였고, 1965년에는 비산동본당 성모상을 새로 모시게 되었으며 1975년 7월 21일에는 비산본당 수녀원 낙성식을 가졌다. 비산동본당은 1978년 6월 11일에 비산본당 설정 5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1983년 말 현재의 신자 수는 4,541명(남 1,771명, 여 2,770명)이다.
Vivaldi, Antonio(1675?∼1741). 이탈리아의 작곡가. 바이올린 주자. 베네치아 태생.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각지 및 독일에서 활약하였다. 합주협주곡, 독주협주곡에 뛰어났으며 오페라 작곡도 많이 남겼다. 특히 바이올린의 기교와 잘 짜인 형식은 후세에 절대적 영향을 주었으며, 오케스트라와의 합창을 위한 작품도 많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8 <사계>는 오늘날 일반에게 널리 애용되고 있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기악곡 발전에 힘쓴바 크다.
무효장애 중의 하나. 가톨릭 교회의 예식대로 행해지지 않은 혼인, 즉 본당 주임사제나 그 대리사제 앞에서 두 증인과 함께 행해지지 않는 혼인을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관면을 받고 행해지는 외교인과의 혼인에서도 해당된다. (⇒) 혼인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