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에서 1887년까지 신학교가 소재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강원도 관할이었으나 현재는 경기도 여주군 관할로 되어있다. 부엉이가 많다고 하여 부흥골이 아니라 부엉골이라는 설도 있다. (⇒) 가톨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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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서 1887년까지 신학교가 소재했던 곳으로 당시에는 강원도 관할이었으나 현재는 경기도 여주군 관할로 되어있다. 부엉이가 많다고 하여 부흥골이 아니라 부엉골이라는 설도 있다. (⇒) 가톨릭대학
성 토요일 부활 전야제에서 특별한 의식과 함께 축성된 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크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보통 밀랍(蜜蠟)으로 만들어진다. 벌들은 초대 교회시대부터 동정성을 지닌 피조물로 여겨져 교부들은 벌을 동정 성모의 상징으로, 이 벌들의 밀랍으로 이루어진 밀초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부활초의 기원은 갈리아 전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중세에 성지 행렬, 십자가 경배, 무덤 조배(朝排) 등 복잡한 성주간 전례가 도입될 때 빛의 상징으로 부활 전야제에 도입되었다. 부활초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으며, 십자가 위에는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A)가, 십자가 밑에는 마지막 글자인 ‘오메가'(Ω)가 씌어져 있고, 그 해의 연수가 표시되어있다.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기념하기 위한 다섯 개의 상흔(傷痕)이 십자가 끝부분과 중앙에 있는데 예전에는 여기에 향로 덩어리를 넣었다.
사제가 부활초를 새 불에서 점화하여 제단 앞까지 행렬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광명'(Lumen Christi)이 노래된다. 신자들의 초가 부활초에서 차례로 점화된 뒤 부활초는 독서대 옆에 마련된 촛대에 세워지고 ‘부활찬송'(Exultet)이 노래된다. 사제는 이날 부활초를 성세수에 잠그면서 성세수를 축성한다. 부활초는 부활시기 동안 독서대 옆에 마련된 촛대에 세워져 미사와 성무일도 등 전례가 거행될 때 켜진다. 부활초는 관습적으로 ‘예수승천 대축일’ 미사 중 복음 선포 후 꺼졌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쇄신된 전례력에서 부활시기가 ‘성령강림’으로 끝나게 되자 부활초도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켜두게 되었다. 그 후는 적절한 곳에 보관하여 영세식이 있을 때마다 불을 켜도록 하여 영세자들의 초를 부활초에서 점화시킨다. 장례미사에서도 시신을 제단 가까이 인도하고 또 전송할 때 사용된다.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 모든 그리스도교 축일 중 가장 오래되고 큰 축일.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의 사업을 주로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완성하셨다.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3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 주일이 주간의 정점을 이루듯이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을 이룬다.
이 날은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결되는데, 신약의 부활절은 이 날의 뜻을 더욱 심오하고 완전하게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음력으로 계산하여 초봄의 만월인 니산(Nisan)이라는 달의 14일을 파스카 축제일로 지냈으며 동방교회도 이를 따르는데, 서방교회는 니산달의 14일을 지내지 않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냈다. 오늘날에는 성 빅토리오(St. Victor, 재위 : 189∼199) 1세 교황의 선언에 따라 춘분(3월 21일)이 지나고 만월이 되면서 맞이하는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다. 부활주일부터 성신강림주일까지의 50일간은 하나의 축일같이, 하나의 ‘큰 주일’ 같이 기쁨으로 요약하며 지낸다. 이 50일간은 특히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이 기간은 부활시기라 한다. 이 시기의 주일들은 하루의 부활주일처럼 여긴다. 그래서 부활주일 다음 주일들을 부활 제 2, 3, 4, 5, 6, 7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50일간의 부활시기는 성신 강림주일로 끝맺는다. 부활시기의 첫 8일을 부활 8부로서 주님의 대축일로 지낸다. 부활 후 40일에 예수 승천을 경축한다. 그러나 예수승천이 의무적 대축일이 아닌 지역에서는 부활 제7주일에 예수 승천을 지낸다. 예수 승천 다음 성신강림 전 토요일까지의 평일에는 파라클레토(Paracletus, 위로자) 성신의 강림을 준비한다. 이때는 성수예식 아스페르제스(Asperges)와 통상 삼종 안젤루스(Angelus) 대신에 비디 아쾀(Vidi Aquam)과 레지나 첼리(Regina Coeli)가 낭송된다. 이날의 중요성은 40일간 지속되는 사순절 기간과 성주간, 그리고 뒤따르는 부활시기에서 보여진다. 고대 교회에서 예비신자는 부활전야, 즉 성 토요일 밤을 지새운 뒤 부활절 아침 일찍 세례를 받고 성체를 영하였으며 부활주간 내내 흰 옷을 입고 지냈다. 부활 전야는 교회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 도시를 등불로 장식하여 이 날을 기념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이전의 전통에 따라 전야미사를 드렸으나 10세기경 서방에서는 오후 미사로, 14세기경에는 성 토요일 아침미사로 당겨졌으며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부활 첫 미사를 토요일에 봉헌하였었다. 그러나 1951년부터 부활 첫 미사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드리는 것이 허가되었으며 1955년에는 이것이 의무화 되었다.
교회는 전례서에 나와 있는 대로 성3일과 함께 부활절을 경축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3일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 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주의 수난 금요일과 할 수만 있다면 성 토요일 부활 전야까지 파스카 단식을 지킨다.
주께서 부활하신 밤에 지내는 부활 전야제는 “모든 전야제의 어머니”와 같은 것으로서 이로써 교회는 밤을 새워가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부활을 성사적으로 경축한다. 그러므로 이 전야제 예식은 전부 다 밤에 거행된 것이다. 즉 예식을 밤이 시작된 다음에 시작하고 주일 새벽 전에 끝마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마태 28:1-15, 마르 16:1-14, 루가 24:1-12, 요한 20:1-21). 서방에서의 ‘이스터’라는 말은 새벽과 밤을 관장하는 튜튼족의 여신의 이름에서 나왔으며, 크리스마스의 경우처럼 그리스도교 축일이 이교도의 축제를 대신한 예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새 옷을 입고 부활 달걀을 주고받았으며, 부활 때 먹는 양고기, 부활 토끼, 부활 과자, 부활 햄 등과 관련된 관습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교회법의 규정에 따라 부활절에 하는 영성체. 교회법(제920조)에 의하면, 모든 신자는 적어도 일년에 한번 영성체할 의무를 지며, 이 의무는 부활시기에 이행해야 함을 원칙으로 한다. 영성체 의무를 이행할 부활시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삼주일 전날까지이다(Direc. comm. n.179). 사죄(死罪)있는 신자는 영성체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함은 물론이다.
2세기와 3세기에 부활축일의 날짜를 둘러싸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일어났던 논쟁.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사건을 기념하는 유태교의 파스카 축제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모든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축제의 예표였으며 이러한 상호관계는 부활축일을 정하는데 작용하였다. 그래서 동방교회는 유태교에서 초봄 니산(Nisan)달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므로 부활축일 역시 요일에 관계없이 니산달 14일로 고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니산달 14일인 만월(滿月)이 지난 후 첫 번으로 오는 일요일을 부활축일로 하자는 서방교회 사이에 논쟁이 계속된 것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축일의 근거가 사도 요한과 필립보에까지 소급한다고 했으며 서방교회는 그 전통이 성 베드로와 바울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싼 양자 사이의 분규는 교황 빅토르 1세(재위 : 189∼199)가 로마의 관습을 지키지 않는 이들에게 파문을 조처했으나 동방교회가 이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났다. 그러나 안티오키아(Antiochia) 교회가 이를 따르게 되자 논쟁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325년 니체아(Nicaea) 공의회에서야 논쟁이 해결되었다. 공의회는 모든 교회에서 춘분이 지나고 그 다음 첫 번으로 오는 만월(니산달 14일)이 지난 후 첫 번으로 맞이하는 일요일을 부활축일로 지낼 것을 결정하였다. 또한 서방 로마 교회는 부활축일을 결정하기 위해 95년 주기(cycle)를 택했으나 켈트(Celtic) 교회는 532년 주기를 택해 부활주일이 서로 달라 영국의 앵글로색슨 교회에서 커다란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9세기에는 모든 교회가 95년 주기를 따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