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첨례 [한] 副瞻禮

≪한불자전≫(韓佛字典)에 의하면 부활주일과 성령강림주일 다음에 오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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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주교 [한] 副主敎 [라] provicarius

일반적으로 오늘의 총대리와 비슷한 직책을 맡아보던 주교나 신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주교는 부감목과도 상통되는 말이다. 부주교는 주교일 경우와 신부일 경우로 구별되는데 박해시대에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언제나 계승권을 가진 보좌주교(Coadjutor)였다. 1930년대부터 신부가 부주교직을 맡아보게 되는데 이것은 대목구(代牧區)나 지목구(知牧區) 같이 포교의 교구제도 아래서의 부주교(Provicarius)였다. 1962년 한국에 교구제도가 설정되면서 부주교는 총대리(Vicarius generalis)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한 동안 부주교란 말과 혼용되었다. 신부인 부주교는 대목(代牧)이나 지목(知牧)으로부터 특별한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 한 하등의 권한이 없다. 또 대목이나 지목이 사망하거나 체포되면 그것을 즉시 교황청에 알리고, 교황청에서 별도의 조치가 있을 때까지 포교지의 지도권을 인수하고 즉시 대목의 공석 중 포교지를 관할할 대리자를 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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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품 [한] 副祭品 [라] diaconatus [영] deaconary [프] diaconat [관련] 칠품

7품 중의 제6품급으로 미사예절 때 예절을 도울 수 있는 권한과 강론 및 성체를 영해줄 수 있는 권한을 주기 위하여 주어지는 품. 상삼품 중의 하나이며 만22세 이상이 되어야 서품될 수 있다. (⇒) 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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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한] 副祭 [라] diaconus [영] deacon [프] diacre

과거 칠품(七品)중 대품의 하나인 6품, 즉 부제품을 받은 자. 사제의 아래이고 차부제(次副祭)의 위. 교회에 봉사직으로 서품을 받은 남자. 임무는 설교, 세례, 결혼식 주관, 본당의 운영, 그외 사항에 있어서 사제를 보좌하는 일이다. 그 기도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부제서품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고, 서품이 유효한 것이 되기 위해 요구되어진다. “주여 이들에게 성령을 내리소서. 당신의 7개 선물의 은혜로 이들이 부제의 직위를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소서.” 부제의 위치와 임무는 사도시대 이후 변해 왔다. 1세기 글레멘스 시대에서 교부시대에 이르기까지 부제는 주교 아래에서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하고 그 범위는 상당히 광범한 것이었다. 말씀의 전례 중 서간과 복음서를 읽고, 신도의 봉헌예물을 거두며, 기증자의 이름을 2매씩 판에 적어 미사 중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주교를 도와 성체를 나눠 주고, 성체를 병자의 집에 전달하며, 기도를 선창하고, 주교의 허가를 받아 세례를 행하고, 박해 때 탈락한 자들을 받아들였다. 부제의 수는 원래 교구마다 7인씩으로 한정시켰고, 오늘날에도 로마에는 7인의 부추기경이라는 형태로 전통을 지키고 있다. 중세에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Assisiensis)와 같은 저명한 부제가 있었지만 일시적인 지위로 떨어져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제직을 준비하는 일시적 부제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임무를 염두에 둔 종신부제 제도도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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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사 [한] 赴燕使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北京]으로 파견되던 조선시대의 외교사절을 말한다. 정사(正使), 부사(副使), 서장관(書狀官) 등 3인의 사신(使臣)과 200여명의 수행원으로 구성되며, 부연사의 종류로는 동지사(冬至使) · 정조사(正朝使) · 성절사(聖節使) · 천추사(千秋使) 등의 정기 사행(使行)과 사은사(謝恩使) · 주청사(奏請使) · 진하사(進賀使) · 진위사(陳慰使) · 진향사(進香使) · 고부사(告訃使) 등의 비정기 사행이 있었다. 부연사행(赴燕使行)의 성격은 사대(事大)라는 정치적 목적 이외에 조공(朝貢)과 하사(下賜)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공무역(公貿易), 수행원들과 중국 상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사무역(私貿易) 등 경제적 목적을 갖고 있었고, 또한 문화 접촉과 전달의 수단이기도 하였다. 특히 명말(明末) 청초(淸初)에 이르는 17∼18세기 동안 부연사행들은 서구문화(西歐文化)의 전달에 크게 공헌하였다. 1603년 이광정(李光庭)이 리치(Ricci, 利瑪竇)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갖고 귀국하고 이듬해 황윤중(黃允中)이 <양의현람도>(兩義玄覽圖)를 갖고 귀국한 이래, 1631년 정두원(鄭斗源)은 북경에서 예수회선교사 로드리게스(J. Rodriquez, 陸若漢)와 만나 서학(西學)에 대해 담론하고 자명종(自鳴鍾)·화포(火砲)·천리경(千里鏡) 등 과학기계와 서학서를 선물로 받아 가지고 귀국하였다. 1720년 이이명(李-命)도 북경에서 예수회선교사 쾨글러(P. Kogler, 戴進賢)와 수아레스(J. Suarez, 蘇霖)를 만나 역산 · 지리 · 종교에 대해 담론했으며, 1776년 홍대용(洪大容)도 북경의 남당(南堂)에서 예수회선교사 할레르시타인(A. von Hallerstein, 劉松齡)과 고가이슬(A. Gogeisl, 管友管)을 만나 서학에 대해 담론하였다.

이를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1636년 병자호란 이후 1784년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세례받기 전까지 147년 동안 167여회의 부연사행들이 북경을 왕래했고, 1603년부터 1783년까지 부연사행에 의해 ≪천주실의≫(天主實義), ≪영언여작≫(靈言蠡勺), ≪직방외기≫(職方外紀), ≪변학유독≫(辨學遺牘), ≪칠극≫(七克) 등 37여종의 서학서와 많은 과학기구 등이 전래되었다. 이러한 부연사행들의 서학서, 서구과학 기술에 대한 소개는 실학자들로 하여금 서구와 서구 과학기술에의 관심과 연구를 유발시켰고 드디어는 한국 천주교회가 자생(自生)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뿐 아니라 부연사행은 한국 교회와 북경 교회와의 연락수단으로도 이용되어 1784년 이승훈은 동지사의 서장관에 임명된 부친 이동욱(李東郁)을 따라가 북경에서 예수회선교사 그라몽(Grammont, 梁棟材)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고, 1790년 윤유일(尹有一)의 북경 방문을 비롯하여 1793년 지황(池璜), 1796년 황심(黃沁)과 옥천희(玉千禧), 1823년 정하상(丁夏祥) · 유진길(劉進吉) · 조신철(趙信喆) 등의 북경 방문도 부연사행 특히 동지사행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들 조선 교회의 밀사들은 부연사행을 통해 북경을 왕래하며 조선 교회의 상황을 북경 교회에 보고하고 아울러 성직자영입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문헌] 李元渟, 赴燕使行의 經濟的一考―私貿易活動을 中心으로, 歷事敎育, 第7輯, 歷史敎育文硏究會 / 朴鍾鴻, 西歐思想의 導入批判과 攝取, 韓國天主敎會史論文選集, 第1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76 / 李元渟 赴京使行의 文化史的 意義, 史學硏究, 第36號, 韓國史學會, 1983 / 裵賢淑, 朝鮮의 傳來된 天主敎書籍, 韓國敎會史論文集,Ⅰ, 韓國敎會史硏究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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