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렌 [원] Verlaine, Pau1

Verlaine, Pau1(1844-1896). 프랑스의 가톨릭 시인. 메츠 태생. 파리에서 교육을 받고 고답파(高踏派)의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871년 천재소년 랭보(Jean-Nicolas Arthur Rimbaud)와의 숙명적인 만남으로 생활이 난맥에 빠져, 이 소년과 함께 유럽 여러 나라로 방랑 여행을 떠났다. 1873년 랭보에게 권총을 쏘고 2년형을 복역, 옥중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시집 ≪예지≫(叡智)를 썼다. 출옥 후에는 술과 매춘부에 빠져 다시 방탕생활로 돌아갔고, 시인으로 문명(文名)이 오를 무렵엔 시료(施療) 병원에 수용되었으며 ‘저주받은 시인’으로 파리 빈민가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그가 남긴 시집으로는 그 밖에 ≪말없는 연가≫, ≪행복≫, ≪애가≫, ≪저승에서≫ 등이 있다. 말라르메(S. Malarme), 랭보와 함께 상징파의 대표적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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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모렐 [원] Vermorel, Joseph

Vermorel, Joseph(1860-1937). 파리 외방전교회원. 교구선교사. 한국명 장약슬(張若瑟). 1860년 3월 28일 프랑스 리용(Lyon) 교구의 생 클레망 드베르(Saint Clement de Vers)에서 출생.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87년 9월 24일 사제신품을 받고 고국을 떠나 1888년 1월 14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 뒤 1918년에 맹장수술을 받으러 북경에 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50년 동안 한번도 한국을 떠난 적이 없이 오직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한국에 도착하자 곧 첫 임지인 남부지방으로 내려가, 그는 서울에서는 이미 볼 수 없게 된 상복을 입고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계속하였다. 1891년 보두네(Baudounet) 신부와 함께 피정을 위해 서울로 올라가던 도중 도둑떼를 만나 모든 것을 강탈당하는 등 갖은 박해를 겪으면서도, 그는 인내와 관용으로 가난한 교우들을 돌보는 데 전념하였다. 1893넌 리우빌(Liouville) 신부가 선종하자 그 후임으로 용산신학교에 부임하여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어 원산(元山)본당을 1년간 맡고 있을 때 간도(間島)에서 찾아온 김영렬(金英烈)이라는 청년에게 영세를 주어, 간도에 돌아가 복음을 전파케 함으로써, 장래의 연길교구가 탄생하게 하였다.

1897년에는 강경(江景) 가까이 있는 나바위에 본당을 건립하였다. 나바위 본당에 있을 당시인 1899년 교우와 외교인 사이의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폭도들이 베르모렐 신부댁을 습격하고 신부를 강경포(江景浦)까지 납치한 강경포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한성재판소(漢城裁判所)를 거쳐 평리원(平理院)의 판결로 6개월만에 종료되었다. 1911년 대구교구가 분립되면서 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1919년 드망즈(Demange)주교가 주교회의 참석차 로마로 가 있을 동안 잠시 주교좌성당에 가 있었을 뿐 1931년까지 나바위 본당을 떠나지 않았다. 1931년에 연로하여 본당 사목직을 떠나 성 바오로 수녀원의 지도신부가 되어 고아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치다가 1937년 5월 31일 77세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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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댜에프 [원] Berdyaev, Nikolai Aleksandravich

Berdyaev, Nikolai Aleksandravich(1874-1948). 러시아의 그리스도교적 종교철학자. 러시아의 키에프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클라마르에서 죽었다. 루이 6세 군대의 장교인 부친 및 가족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다가 1894년 키에프 대학에 입학, 체스토프(L. Chestov)와 알게 되어 마르크스주의 활동에 종사, 투옥되었다가 1898년 볼로그다(Vologda)에 유형되었다. 모스크바 대학에서 2년간 철학교수로 있다가 1922년 레닌주의자들에 의해 국외 추방되어, 베를린에서 종교철학협회를 발족 1924년부터 파리에서 활동하였다. 종교철학 평론지 (1925-1940년)를 편집하는 한편, 정통파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 가톨릭의 요인들의 상호 신앙고백 모임을 주최, 종교적 실존주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칸트, 헤겔, 마르크스, 쇼펜하우어, 톨스토이, 이프센,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솔로비요프(U.S. Soloviyov) 등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의 방대한 저작에서 받는 인상은 그의 독자적인 인격주의적 실존주의의 입장에 선 그리스도교 철학자의 정신이다. 그는 강단의 철학자로서보다 오히려 예언자, 문명 비평가로서 건필(健筆)을 휘둘렀으며, 자신을 헤라클레이토스, 니체에 견주기까지 하였다.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교의 고백, 조직, 신앙론에 대한 비평자로서 중요한 반면, 교회를 떠나 있는 지식계급에게 그리스도교의 근본이념을 소개한 공적도 크다. 영역(英譯)되어 있는 주요 철학저서는 ≪Dream and Reality : An Essay in Autobiography≫(뉴욕 1951), ≪The Divine and the Human≫(런던 1949), ≪The Beginning and the End≫(런던 1952), ≪The Destiny of Man≫(뉴욕 1960)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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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니니 [원] Bernini, Giovanni Lorenzo

Bernini, Giovanni Lorenzo(1598-1680). 바로크기의 가톨릭 최대의 예술적 천재. 나폴리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조각가, 건축가로 활약하였다. 고대 자연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초기의 바로크 예술을 세계사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로마를 교황의 세계적 권위에 걸맞는 도시로 건설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는 여러 예술을 융합시켜 회화적인 종합예술작품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였다. 건축에서 원근법(遠近法)과 거대한 공간처리를 철저히 구사한 그는, 베드로 대성당의 ‘베르니니 주랑(柱廊)’(1656-1665)에서 웅장한 가운데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재료 · 색채 · 채광(採光)의 효과를 가지고 환상이 넘치는 장엄함을 나타냈고, 실내장식의 미를 극치에 달하게 하였다. 특히 1646-1652년에 만들어진 산타 마리아 델라 빅토리오 성당 안의 성 데레사는 완전한 대리석 조각법이 십분 발휘되어, 산뜻한 구성 속에 그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의 명성은 나라밖까지 퍼져 1665년에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초대로 파리에 가서 그의 흉상(胸像)을 제작하였다. 또 분수 조각에도 뛰어난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피아차 나보나의 분수와 트리토네의 분수가 유명하다. 그의 예술적 창조력 및 활동성과 함께 종교적인 황홀감을 주는 것이 베르니니 작품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생활에서도 불타는 정열과 밀도 있는 교회정신을 잘 결부시킨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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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뇌 [원] Berneux, Simeon Francois

Berneux, Simeon Francois(1814-1866). 성인. 축일은 9월 20일.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제4대 조선(朝鮮) 교구장. 한국명 장경일(張敬一). 프랑스 르망(Le Mans)교구 소속 샤토 뒤 르와르(Chateau-de-Loir)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르망 교구의 소신학교와 대신학교에서 수학했고 1837년 5월 20일 사제서품을 받은 후 르망 대신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던 중 1839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1년 베트남의 통킹에 도착하여 전교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년간의 옥살이 끝에 구조되었고,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滿洲) 교구에서 12년 동안 전교하였다. 1854넌 만주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어 이해 12월 27일 주교로 성성되었고, 이듬해 다시 제4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56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 후 순교하기까지 10년 동안을 조선 교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 배론[舟論] 신학교를 세우고, 서울에 2개의 인쇄소를 차리는 외에 교세를 확장하는 등 조선 교회의 발전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러나 1866 2월 23일 체포되어 3월 7일 새남터에서 브르트니에르(de Bretenieres, 白) 신부, 도리(Dorie, 金) 신부, 볼리외(Beaulieu, 徐沒禮) 신부 등과 함께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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