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치오 [원] Masaccio

Masaccio(1401-1428). 이탈리아의 피렌체파 화가. 원명은 Tommaso Guidi.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산 조반니 발다르노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었다. 마소리노(Masolino da Panicale, 1383?-1447)의 제자로서 로마의 산 클레멘테 성당 및 피렌체의 Santa Maria del Carmine 대성당에 있는 브란카치 성당의 프레스코 벽화작업에서 스승을 도왔으며, 이후 스승의 화업(畵業)을 계승하였다. 특히 브란카치 성당의 <낙원추방>, <희사금>(喜捨金) 등 벽화와 산타마리아노벨라 성당의 벽화 <성 삼위일체> 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치마부에(Giovanni Cimabue), 지오토(Giotto de Bondone)가 이룩한 극적 정신의 조형화(造型化) 전통을, 새로운 르네상스적 합리주의적인 공간표현 속에 회복 · 통일시킨 기념비적인 구성, 빛과 명암(明暗)의 표현에 대한 뛰어난 감수력, 독립된 실재(實在)로서의 물상(物象)의 재파악과 같은 조형적 집성(集成)에 의해 15세기 사실주의 확립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의 성전인물(聖傳人物)의 의지(意志)나 정념(情念)의 박진적 표현은 뒤이어지는 르네상스 회화의 인간적인 전개방향을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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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탱 [원] Maritain, Jacques

Maritain, Jacques(1882-1973).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인 가톨릭 철학자. 블르와(Leon Marie Bloy)의 감화로 1906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였고, 1940년 이후에는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1945년부터 1948년까지는 프랑스의 바티칸 주재 대사를 역임하였고 그 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형이상학 서론≫(Elements de philosophie), ≪인권과 자연법≫(The Rights of Man and Natural Law) 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자연법과 인권≫(김창수 역), ≪인간과 국가≫(한용희 역) 등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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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수녀회 [영] Franciscan Missionaries of Mary [한] ∼傳敎者∼修女會 [라] Congregat

1877년 1월 6일 마리 드 라 파시옹(Marie de la Passion) 즉 샤포탱(H l ne Chappotin)에 의해 인도 오타카문드(Otacamund)에서 창설된 수도회. 1958년 6월 27일 한국에 진출하였다. 관상(觀想)과 사도직을 통해 전교에 헌신하기 위한 본회의 명칭은 1882년 12월 8일 성 프란치스코 수도 3회에 가입할 때 마리아의 전교자 수녀회에서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로 개칭하였고, 1885년 교황청으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았다. 1954년 노기남(盧基南) 주교의 초청으로 내한하려 했으나 중국에서의 수녀원 추방운동으로 1958년 서울이 아닌 부산으로 진출하였다.

1960년 5월 부산 양정동(楊亭洞)에 정착하여 성모의원과 함께 수예실을 운영하였다. 1975년 2월에는 부산 성보의원을 폐쇄하고, 의료 혜택이 더욱 필요한 강원도 정선(旌善)으로 이전하여 1976년 5월 성 프란치스코 의원을 개원하였다. 한편 부산에서는 1961년 3월 성모여자중학교, 1964년 성모여자고등학교를 개교했으나 1974년 성모여중을 폐교하고, 1979년 6월 성모여고를 부산교구에 이관하였다. 1966년 서울 가리봉동에 수녀원과 의원건물을 완공함으로써 모두 이전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고, 1974년에는 부산에 있던 수련원도 서울로 이전하였다. 1972년 일본관구 소속에서 준관구(準管區)로, 1978년 정식 관구로 승격되었다. 1979년에는 원래 학교부지로 매입했던 곳에 선화기숙사(善花寄宿舍)가 완공되어 5월 1일 첫 기숙생을 입사시켰다. 현재 한국 관구 본부가 있는 서울 가리봉동 수녀원을 비롯하여 부산 양정동 수녀원, 강원도 정선 수녀원에서는 관구장 수녀를 비롯한 65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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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한] ∼姉妹會 [영] Little Company of Mary

1877년 7월 2일 메리 포터(Mary Poter) 수녀에 의하여 영국 노팅검(Nottingham)에서 창설된 수녀회. 1963년 11월 23일에 한국에 진출하였다. 낡은 공장 터에서 시작된 초창기에는 주로 임종 중에 있는 영혼들을 위한 봉사활동으로 시작하여 가난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고통을 몸소 나누는 것을 기본정신으로 하여 1886년 5월 교황청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1963년 당시 춘천교구장 퀸란(Thomas Quinlan) 주교의 요청으로 호주관구 소속 마크 메이어(St. Mark Maher) 수녀 외 2명의 수녀가 내한하여 강원도 지방에 정착,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65년 3월 15일 강릉(江陵) 갈바리 의원을 개원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고, 1973년 11월 20일에는 포천(抱川) 평화의 모친 의원을 개원한 뒤 1980년에는 치과를, 1981년에는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물리치료시설을 개설하였다. 1974년 11월 15일에는 서울분원을 신설하고, 1975년 현 서울 후암동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서울 · 강릉 · 포천에 분원이 있으며, 원장 마리 데레사 나일론(Marie Therese Nilon) 수녀를 중심으로 9명(1983년말 현재)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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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예술 [한] ∼藝術 [영] Marian art

성모 마리아를 소재로 하여 구성한 예술을 일반적으로 마리아 예술이라고 한다. 현존하는 것으로 마리아 예술중 가장 오래된 것은 로마의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에 있는 프리실라(Priscilia) 카타콤바 속의 벽화이다. 1세기말 혹은 2세기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아기 예수를 안고 앉아 있는 마리아 옆에 예언자로 생각되어지는 인물이 책을 들고 마리아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을 가리키는 형상을 프레스코(fresco) 화법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카타콤바에는 이 그림 이외에도 2-3세기경에 그려진 3개의 그림이 있다. 첫째 것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처녀의 무덤 위에 그려진 벽화로 처녀의 모범인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둘째 것은 베들레헴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셋째 것은 마리아를 방문한 천사의 이야기를 각각 소재로 채택하고 있다. 이것과 흡사한 그림이 로마의 도미틸라(Domitilla), 갈리스토(Gallistus), 성 베드로와 마르첼로(Marcellus), 성녀 아녜스(St. Agnes)의 묘지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5세기 이전의 것들로, 아녜스의 묘지에 있는 마리아의 그림에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문자가 그림의 양측에서 아기 예수를 향해 씌어져 있다. 이상과 같이 고대의 마리아에 대한 조각과 회화는 처녀이면서 동시에 어머니인 마리아와 그의 아들 예수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네스토리우스파에 반대하여 마리아의 모성을 정의 내린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마리아에 대한 예술은 동방에서 새로운 표현양식을 가지고 등장하게 된다. 즉 복음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던 이전의 양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마리아가 천상의 여왕으로 묘사되어 황금빛 옷을 입고 천상의 왕좌(王座)에 앉아 있게 된다. 이러한 표현양식은 곧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로 흘러 들어가게 되고 이들 국가의 마리아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마리아 예술은 비잔틴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비잔틴양식에서는 마리아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비해 로마의 예술가들은 마리아를 ‘상지의 좌’(上智∼座)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적인 차이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마리아에 대한 교리의 발전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역사가들은 마리아 예술과 종교사상의 관계를 추출해 내기도 하였다.

고딕양식에 있어서 마리아는 예수의 구원사업에 있어서 협력자인 성모의 자애를 나타내는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이것은 교회가 내적 쇄신에 전념하던 시대의 반영이었다. 한편 문예부흥기에 이르면 마리아 예술은 성모자(聖母子)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탈리아의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파라 안젤리코, 리피, 보티첼리, 코레지오, 티티안, 베로치오 등과 플랑드르의 반 에이크, 메믈링, 루벤스 및 독일의 홀바인, 뒤러 등이 이 시대의 대표적인 마리아 예술가였다. 바로크양식에서의 마리아 예술은 마리아를 악마의 정복자로 묘사하는 데 주력하였고 근대에 이르면 은혜의 중개로서의 마리아를 묘사하는 것이 커다란 흐름을 이룬다. 이것은 라사레트, 루르드, 파티마에서 공현한 마리아의 계시와 이에 대한 마가레트 마리아, 가타린 라보레, 돈 보스코 등의 가르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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