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원] Marcel, Gabriel

Marcel, Gabriel(1889-1973). 프랑스의 극작가이며, 그리스도교적 실존주의 철학자. 1929년 가톨릭에 귀의하고, 파리에서 대학교수로 봉직하면서 평론과 희곡 등 수많은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인격과 자유와의 연관관계를 철학적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자신의 구체적 상황을 해명했을 때, 인간은 우선 파멸당하여, 본래의 생명을 절단당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를 초월했을 때, 즉 자신을 절대자와 결합시키는 초월상태에서는, 인간은 이 생명을 발견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을 자각한다. 이렇게 해서 실존(實存)은 불안이나 비애보다는 희망 · 환희 · 예배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그의 희곡은 이러한 그의 인생관으로부터 이루어진 것이지만, 단순한 이념의 표현수단이라고만 볼 수 없다. 기법상으로는 입센(Ibsen)으로부터, 사상적으로는 니체(F. Nietzsche), 도스토예프스키 및 베르그송(H. Bergson)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주요 작품은 ≪La grace≫(1911), ≪Un homme de Dieu≫(1925), ≪Journal metaphiysique≫(1927), ≪Etre et avoir≫(1935), ≪Le mystere de l’etre≫(1951) 등이 있다.

[참고문헌] M. Bernard, La philosophie religieuse de G. Marcel. Etude critique, Paris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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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관련] 알라코크

⇒ 알라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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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리타 [라] Margarita, Scotiae

Margarita, Scotiae(1046-1093). 성녀. 축일 11월 16일. 스코틀랜드의 왕후. 헝가리 레스타에서 앵글로색슨 왕자 애덜링(Edward Atheling)과 헝가리 공주 아가타(Agatha) 사이에 태어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별세하였다. 소녀 시절의 대부분을 백부인 잉글랜드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의 궁정에서 지냈다. 1067년 헤이스팅즈(Hastings) 전투 후 헝가리로 돌아가다가 배가 스코틀랜드 앞바다에서 난파, 귀국을 못하고 1070년 스코틀랜드 왕 맬컴(Malcolm) 3세와 결혼하였다. 마르가리타의 아들은 스코틀랜드왕 데이비드 1세이다. 남편 맬컴 3세의 협력과 캔터베리 대주교 랜프랭크(Lanfranc)의 조언으로 일련의 교회 개혁을 일으킨 결과, 켈트족의 스코틀랜드에서의 종교 및 문화 생활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위대한 후원자로서 던펄럼(Dunferlum)의 홀리트리니티 대사원을 건설했을 뿐 아니라 아이오너(Iona) 및 그 밖의 켈트족 성당을 재건하였다. 병자와 빈민 구제에도 헌신하였다. 1249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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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파 [한] ∼派 [영] Maronites

시리아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전설에 의하면 요한 크리소스토모(J. Chrysostomus)의 친구인 시리아의 은수자 성 마론(St. Maron, ?~443년)의 제자가 스승의 사후 오론티스(Orontes)에 세운 수도원에 기원을 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7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는 곤란하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년)에서 그리스도 단의론적 이단으로 낙인찍혔으나, 후에 십자군 관계로 12세기에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2-1517)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이 파는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티나에 현존하고, 그 밖에 키프로스섬, 알렉산드리아, 미국에서도 볼 수 있는 시리아어의 오래된 전례(典禮)를 사용하며, 총대주교 및 8명의 주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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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트전례 [한] ∼典禮 [영] liturgy of Maronite

마로니트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 형태로, 성 야고보의 전례가 로마 전례화된 것. 마로니트란 시리아의 은수자인 성 마론(St. Maron, ?~443)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며, 레바논에 살면서 대부분 아라비아어를 사용하는 시리아인의 집단과 교회를 가리키나, 이들이 시리아, 팔레스티나, 키프로스, 이집트, 미국 등지에 흩어져 살면서 교황청과 유대를 갖고 구성하는 교회를 가리키기도 한다. 12세기 말엽 총대주교좌인 안티오키아에서는 성 야고보의 전례를 시리아어로 번역하여 다양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마로니트 전례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전례의 발전은 크게 두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전기(7-13세기)는 성찬의 전례 앞부분을 약간 발전시킨 것 외에는 안티오키아의 전례 전승을 따르고 있었으나, 후기(십자군의 도착에서 18세기 전례의 조문화가 완료될 때까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의와 제구의 라틴 전례화가 이루어지고 로마 전례식 성찬식이 도입되며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로니트 전례에는 안티오키아의 특징과 형태가 존속하고 있다. 공동기도를 드릴 때 아라비아어를 사용함을 원칙으로 하고 그 밖의 다른 언어 사용은 지역 대주교의 결정에 따르고 있는 것도 그 특징의 하나이다. 오늘날 마로니트 전례에 있어서 성사 예식은 서부 시리아의 전승을 따르고 있는데 견진성사는 시리아 전례 형태로 주교가 집전하고 영성체는 양형(兩形)으로 하지 않고 제병의 형상만으로 영한다. 전례로서는 미사경본, 성무일과 기도서, 예식서, 장례 예절서 등이 있다. 마로니트 교회의 중심 제단은 동쪽을 향하고 교회의 정문은 서쪽을 향하여 열리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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