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전례 [한] ∼典禮 [라] ritus Romanus [영] Roman rite

미사성제의 봉헌, 성사와 준성사의 집전, 성무일도의 봉송, 교회 직무의 수행 등에 있어서 로마 교구가 실천하고 있는 공인된 양식. 그 기원은 3세기의 교회 전례에 있으며 이는 공통성을 지니면서도 다양하였다. 로마전례는 교황 대(大) 그레고리오(재위 : 590-604년) 시대 이후 크게 네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여 왔다. 12세기에는 라틴어 사용 지역에 널리 전파되었고, 중세기 동안에는 여러 가지 전례 형식으로 파생되었는데 그리 중요하지 않는 부분만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1570년에 교황 비오 5세는 파생된 전례형식 중 대부분을 폐지시켰으나 이때부터 로마식 전례는 갈리아 전례 및 스페인 전례로부터 깊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초기의 로마 전례는 소박하고 간결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 장황한 갈리아 전례나 시적(詩的)인 동방 전례와 뚜렷이 구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로마 전례서에는 다른 전례의 장점들이 많이 수용되어 있다. 로마 전례 미사의 주요 특징은 미사 전문(典文)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기도를, 영성체 직전에 평화의 인사를 각각 두고 있는 점이다. 20세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과 전례개혁이 다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개혁은 교황 바오로 6세가 지적했듯이 로마 전례와 모순되지 않는다. “로마적인 것은 우리의 가톨릭적 본질의 기초”(교황 훈시 Facile Conicere, 1968. 10. 14)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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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라] Epistola ad Romanos [영] the Epistle to the Romans

바울로는 그리스 북부지역인 마케도니아에서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를 발송하고 나서 오래지 않아 친히 고린토로 내려가 석 달 가량 머물렀다(사도 20:3). 이때가 아마도 58년 춘분 전이었을 것이다. 바울로가 서기 36년경에 개종했다면 그는 무려 20년 이상 지중해 동부 여러 지역에서 전도한 셈이다. 그는 지중해 동부지역 전도는 일단 마친 것으로 보고 장차 서부지역 극변에 위치한 스페인에 가서 전도할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그전에, 그리스 여러 교회에서 거두어들인 모금을 예루살렘 모교회에 전해 준 다음 로마 교회를 찾아보고 나서 스페인으로 갈 예정이었다(로마 15:22-29). 그리하여 자신이 설립하지 않은 로마교회에 자신을 소개하는 뜻으로 58년초에 고린토에서 편지를 발송했으니, 이것이 곧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러니까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일종의 신임장이라 하겠다. 모처럼 평온한 가운데서 석 달가량 시간적 여유를 갖고 쓴 서간이기 때문에 그의 서간들 가운데서 구조적으로 가장 짜임새가 있을뿐더러 사상적으로 가장 원숙한 서간이다. 그러나 바울로의 사고범주와 언어표현 가운데는 오늘날 통용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다. 신학사적 연구와 해석학적 성찰을 거쳐야 비로소 참뜻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이제 서간 순서에 따라 그 내용을 집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바울로는 당대 교회에 유행한 예수 그리스도 신조로서 복음의 내용을 밝힌다. “그분은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의 부활 이래 능력을 누리는 하느님의 아들로 책봉되셨습니다”(1:3b-4a). 그러고 나서,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누구나 구원을 받는다는 명제를 이렇게 내세운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믿는 이라면 누구나, 먼저 유태인 그리고 헬라인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느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 (복음) 안에 하느님의 의가 신앙에서 신앙으로 계시됩니다. ‘믿음으로 의인이 된 이가 살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1:17-18). 나머지는 모두 이 유명한 명제의 설명이라 하겠다. 바울로는 인간이 자기 업적으로 의롭게 될 도리도 전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논리를 끈질기게 편다(1:18-3:20, 3:21-8:39). 이것이 소위 종교개혁 이후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의화론(義化論), 성의론(成義論), 일명 의인론(義認論)이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하는 복음을 비교적 잘 받아들이는 반면 예수님과 바울로의 동족인 유태인들이 복음을 배척하는 현상을 두고 바울로 사도는 슬픔과 아픔을 토로하면서 결국에 가서는 이스라엘 백성도 구원받으리라는 희망을 피력한다(9-11장). 12-15장은 훈계편이다. 서로 겸손하고 화목할 것(12:1-21), 로마제국에 대해서도 양심적으로 복종할 것(13:1-7), 무엇보다 법의 완성인 사랑을 실천할 것(13:8-10), 종말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것(13:11-14), 신앙이 약한 이들을 각별히 보살필 것(14:1-15:6),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화합할 것(15:7-13)을 바울로는 부르짖었다. 끝으로, 16장에는 장황한 인사와 부탁(1-16, 21-23절), 이단 경고와 축복(17-20절), 영광송(25-27)으로 짜여 있는데, 이는 후대 어느 독자의 가필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鄭良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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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예식서 [한] ∼禮式書 [라] Rituale Romanum [영] Roman Ritual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예식서. 교구 사제들을 돕기 위한 사목 지침과 함께 미사와 성사(聖事) 집행을 위한 기도와 예식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런 유형의 책은 12세기에 수도원을 위하여 작성되었는데, 재속신부는 14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예식서들을 갖게 되었다. 교구 사제들은 처음에 교구 예식서들이 없었기 때문에 지역적 관례에 따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전례 예식서들을 편찬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하여 생겨난 여러 가지 예식서들을 통일하기 위하여 1614년 교황 바오로(Paulus) 5세(재위 : 1605~1621)는 추기경 상토리오(J.A. Santorio)의 예식서(1584년), 도미니코 수도회의 카스텔라니의 ≪sacerdotale Romanum≫(1537), 라테란 수도회의 사마리노의 sacerdotale에 근거한 로마예식서를 제정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관습들이 대단히 강하게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예식서는 매우 느리게 보급되었다.

이 책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개정되었는데, 그는 교황의 축복을 위한 두 개의 의식서를 추가하였다. 또한 레오 13세는 1884년 원형판으로 출판하였고, 현재는 로마 교회법에 따라 개정 증보된 1925년판을 표준으로 사용하고 있다. 로마예식서는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제1장은 성사 집행을 위한 일반적인 지침을, 제2장은 세례성사, 제3장은 견진성사, 제4장은 고해성사, 제5장은 성체성사, 제6장은 병자 방문과 병자성사, 제7장은 죽은 이를 위한 예절과 장례, 제8장은 혼인성사, 제9장은 여러 가지 축복들, 제10장은 행렬, 제11장은 호칭기도(litany), 제12장은 구마(驅魔)를 취급하고 있다. 이 밖에도 네 부분으로 된 부록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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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순교록 [한] ∼殉敎錄 [영] Roman Martyrology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공인하는 순교록으로 이전까지 전해 내려오던 다양한 순교록을 집대성하여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584년 출판하였다. 그후 가톨릭 교회에서 통용되었고,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1784년 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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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성청 [한] ∼聖聽 [관련] 교황청

⇒ 교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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