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드르 [원] Landre, Jean-Marie-Pierre-Eliacin

Landre, Jean-Marie-Pierre-Eliacin(1828~1863). 조선교구 선교사. 한국성(姓)은 홍(洪). 프랑스 태생인 그는 일찍이 성직자 되기를 원하여 사제품을 받은 다음, 소신학교 교사, 본당 보좌신부 등으로 본국에서 봉사하다가, 1856년 10월 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858년 3월 21일 한국 전교를 위해 고국을 떠나, 1861년에야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내포(內浦) 지방으로 파견된 그는 그 곳에서 전교활동 중 1863년 봄 중병을 얻어 9월 16일 충청도 황무실에서 선종하였다. 그가 입국한 지 불과 3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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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글르와 [원] Langlois, Charles Francois

Langlois, Charles Francois(1767~1851). 파리 외방전교회 지도자이며 신학교 교장, 신부. 프랑스에서 출생.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에 재직 중이던 1827년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Cappellari) 추기경으로부터 파리 외방전교회에 조선 교회의 포교권을 위임한다는 편지를 받고 신부수의 부족, 조선 입국로의 불확실, 동(同)회 내 모든 주교들의 승인 여부 불명, 재정난 등 4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였다. 그러나 1829년 당시 샴(Siam)교구 보좌주교이던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의 조선 파견 자원으로 1831년 교황청에서 조선 교회를 조선대목구로 설정함과 동시에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하자 결국 조선 교회의 포교권을 위임받는데 동의하였고 그 후로 조선 교회의 선교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참고문헌] Adrien Launay, Memorial de la Societe des Missions-Etrangeres, Paris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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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문학 [한] ~文學 [영] The rabbinical literature [관련] 랍비

랍비에 의한 저작과 그 활동을 말한다. 유대 나라는 70년경에 로마에 의해 지상에서 사라졌다. 히브리문학의 역사는 4기로 나눌 수 있고, 그 중 랍비문학은 대략 70~1000년에 해당한다. 중세(1000~1800년)가 제3기, 그 이후에 제4기로 본다. 유대 나라가 70년경에 자취를 감추게 됨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생활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신전도 파괴되고, 희생이나 전례의식도 거행할 수 없었으며, 다만 개인적 기도나 성서 독서에 의할 수밖에 없었으며, 주로 성서법의 연구 주석이 활발하게 행하여졌다. 200년경 랍비 유다가 ≪미시나≫(Mishna)를 지었는데, 이는 6책으로 교회법에 대한 것이었다. 그 후 6세기경 ≪탈무드≫(Talmud)가 저작되었으며, 그 후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탈무드≫는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팔레스티나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고, 이중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교회법뿐만 아니라 민속, 의학, 역사, 지리, 종교, 윤리, 전설, 속담 등 가히 백과전서적 대저작이다. 중세 이후의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남부 유럽으로 이주하였으며 아랍의 과학, 문화를 수용하여 유럽 각국에 전파하여 르네상스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때의 유대문학의 주제는 철학, 윤리, 성서, 역사, 수학, 천문학, 지리, 여행기, 히브리문법, 시 등이었다. 중세기의 가장 유명한 유대 시인은 유다 할레비(Judah Halebi), 솔로몬 이븐 기비롤(Solomon ibn Gabirol) 등이었다. (⇒) 랍비

[참고문헌] The Encyclopedia of World literature, vol.8, New York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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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영] Rabbi

구약성서에서 ‘랍’의 칭호를 가진 사람은 관직을 가진 훌륭한 사람을 말한다. 랍비는 문자 그대로 ‘나의 주인’을 뜻한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가리켜 ‘선생님’이란 뜻으로 불렀다(마태 23:7, 요한 1:38). 사도시대 이후에는 랍비는 유태교 성직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참고문헌]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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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탄시오 [라]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

Lactantius, Caecilius Firmianus(240?~320?). 그리스도교 호교가. 라틴교부. 북아프리카 이교도 집 안에서 출생하여 아르노비오(Arnobius)의 제자가 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기간 동안 니코메디아에서 수사학 교사로서 활약하였다. 그의 개종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303년 박해 때 공직을 잃고 2년 후 서방으로 가서 갈리아에서 살다가 동방으로 돌아온 것 같다(311~313년). 노년에는(317년경)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인 크리스푸스(Crispus)의 가정교사로 지냈다.

현존하는 그의 저서는 그리스도교와 관련 있는 것들뿐이다. ≪하느님의 업적에 관하여≫(De Opificio Dei, 303~304)는 인체(人體)의 해부학적 경이로움을 통하여 하느님의 섭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하느님의 가르침≫(Divinae institutiones, 313) 전 7권은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외교인들의 주장을 논박할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저술에서 이교도들의 신앙과 철학을 공격하면서 그리스도교, 정의, 진리, 경신(敬神), 진정한 종교, 종말론 등을 다루는 락탄시오는 그 논거를 성서에서보다는 ‘시빌의 신탁’(Sibylline oracles) 등 이교도의 예언서에서 찾아내고 있다. 이 밖에 ≪하느님의 분노에 관하여≫(De ira Dei, 314경)에서 하느님의 인간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심을 밝히고 ≪박해자들의 죽음≫(De mortibus persecutorum, 318경)에서 박해자들의 비운을 그렸다. 후자는 역사서로서 가치 있는 문헌이다. 락탄시오는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안내하기 위하여 형식의 미(美)를 존중할 필요에서 라틴어로 저술하였다. 그는 문체에 있어서 초기 그리스도교의 라틴어 저술가 가운데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락탄시오의 저술을 가리켜 “마치 치체로의 웅변이 흐르는 것 같다”고 예로니모는 극찬한다. 문예부흥기 때 ‘그리스도 교인 치체로’라고 불린 락탄시오는 그리스도 교리에 관하여 깊이 다루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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