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교 [한] 喇嘛敎 [라] Lamaismus [영] Lamaism

티베트(西藏)를 중심으로 몽고, 부탄, 네팔 등지에 성행하는 불교의 한 종파이다. ‘라마’(bla-ma)는 스승이란 뜻으로 위대한 고승에게 사용되었던 존호였으나, 뒤에 일반 승려에게도 쓰여짐에 따라 티베트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르게 되었다. 라마교의 경전은 칸주르(Kanjur, Bka’agyur)의 100권의 전집과, 탄주르(Tanjur, Bstan’agyur)의 225권의 전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전집은 장기적인 발전을 거친 뒤인 1300년께 대체로 완결되었으며, 1728~1740년 북경(北京)에서 출판되었다.

라마교에는 18종파가 있는데 가장 유력한 것은 덕행파(德行派)이며, 종주인 달라이 라마(達賴喇嘛, Dalai-Lama)가 티베트의 정권을 장악하기도 했고, 그밖에 구교파(舊敎派), 황토파(黃土派), 토난파, 칼규파 등이 비교적 유력하다. 라마교의 교리는, 일반적 불교교리인 네 가지 영원히 변하기 않는 진리 곧 사체(四諦), 십이연기(十二緣起), 고(苦), 공(空), 무상, 무아를 내용으로 삼고, 그 위에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변형으로서 용수(龍樹, Nagarjuna)의 비밀 사상과 무착(無着)의 신비사상을 채택하여, 범신론적 우주의 본성을 불(佛)이라고 보는 한편, 절대자로서의 아축불(阿閦佛, Aksobhya)과 대일여래(大日如來, Mahavairocana)를 숭배한다. 불제자들은 관세음보살 육자명주(六字名呪)인 ‘옴마니밧메훔’(Om-ma-ni-pad-me-hum)을 부르면서 극락왕생을 기대하여, 갖가지 수인(手印)을 취하면서 비밀스런 상징으로 삼는다. 실천윤리로는 오계(五戒),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들고 있으나, 실질에 있어서는 성력(性力, sakti)을 위주로 하고 있어 퇴폐적인 면을 끌어 들였다.

티베트는 고대로부터 민족종교인 본교(Bon cult, 黑敎)가 있어 주술신앙이 성행하여 7세기경 불교가 인도의 탄트라(tantra)파의 대승불교의 형태로 처음으로 전래되자 서로 세력을 다투었다. 8세기에 이를 국교로 공인하고, 인도에서 승려를 초빙하였다. 그중에는 750년께 좌도밀교(左道密敎)의 비법에 능한 연화상좌사(蓮華上座師, Padmasambhava)도 끼여 있었는데, 그는 티베트의 고유종교인 본교를 불교로 습합하기 위해서 토착신들이 모두 부처 · 보살의 화신이라는 본지 불국토설(本地佛國土說)을 주장하여, 사찰을 세우고, 승단(僧團)으로 조직함으로써 라마교의 원조가 되었다. 교단은 연화의 제자 25인에 의하여 장악되었고, 성력 숭배의 경향이 짙은 좌도밀교로서 뿌리를 내렸다. 그 뒤 1038년 동인도의 아티샤(阿提沙, Atisa)가 와서 성력숭배의 타락을 깊이 걱정하여 종문(宗門)을 새롭게 하고, 계율을 부흥시켰다. 15세기에는 나중에 덕행파의 창설자이기도 한 총카파(宗喀巴, Tsong Khapa)가 현세의 이익을 비는 주술을 물리치고 계율의 준수를 강조하였다. 이리하여 라사(Lahsa)의 포탈라사를 근거로 하여 개혁운동을 일으킨 총가파의 후계자들이 ‘달라이 라마’를 만들어 냈다. ‘달라이’는 대해(大海)를 뜻한다. 16세기말 몽고의 알탄칸으로부터 달라이 라마라는 존호를 받게 되면서 역대 라마의 전체 칭호가 되어, 달라이 라마는 활불(活佛),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숭배받으며, 그가 죽으면 나라 안에서 상서가 있는 갓난애를 찾아서 다음 후계자로 삼는다. 라마교의 최고 지도자는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이며, 판첸 라마는 총카파의 제자인 케루브의 계통으로서 라마교의 둘째 가는 법주이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세계 뿐만 아니라 정권도 장악하는 최고지배자이며, 현재는 14대의 텐진 걈초이나 티베트의 중공에 대한 반란사건과 관련되어 인도에 망명 중이고, 판첸 라마는 역대로 전쟁설에 의하여 가사와 발우를 상속하며, 그 본지(本地)는 아미타불이며, 그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 하여 숭배받는데, 현재 10대가 전승되어 왔으나 중공치하에 있으므로 명확히 알 수 없다.

[참고문헌] A. Waddell, The Buddhism of Tibet, London 1895 / A. Grunwedel, Mythologie des Buddhismus in Tibet und der Mongolei, 1900 / G. Schulemann, Die Geschichte der Dalailamas, 1911 / L.A. Waddell, Lahsa and its Mysteries, London 1930 / A. David-Neel, Heilige und Hexer, Glaube und Aberglaube im Lande des Lamaismus, Leipzig 1931 / Bu-ston, History of Buddhism, II, 英譯 E. Obermiller, Leipzig 1933 / A. David-Neel, Magie d’amour et magie noire, Paris 1937 / S. Hummel, Lamaistishe Studien, Leipzig 1950 / W.Y. Evans-Wentz, Das tibetlische Buch der Befreiung, Munchen-Planegg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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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보 [원] Larribeau, Adrien Joseph

Larribeau, Adrien Joseph(1883~1974). 서울교구의 제9대 교구장이며 대전교구의 초대 교구장, 한국명 원형근(元亨根). 주교. 프랑스의 라로뮤(La Romieu)에서 태어났으며 1904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1907년 3월 10일에 사제품을 받고 곧 임지인 한국을 향해 고국을 떠났다. 1907년 5월 21일 서울에 도착한 그는 1908년에 만주 간도(間島)로 파견되어 삼원봉(三元峰)에서 첫 전교 활동을 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젊은 선교사들이 군복무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가자, 한국 교회는 일손이 달려 더욱 바빠지게 되었는데, 라리보 신부는 이때 충청도 지방을 맡아 40여개의 공소를 돌아 다녀야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는 성격이 쾌활하여 한국인의 성격적 특성과 잘 조화를 이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느꼈으므로 전교에 많은 성과를 올릴 수가 있었다.

1916년에는 서울교구의 당가신부가 되어 교구살림을 맡아 보았고, 1926년에 보좌주교인 드브레(Devred, 兪世俊) 주교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계승권을 가진 보좌주교로 임명되었다. 그 해 5월 1일 성성식을 갖고는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위임으로 실질적으로 서울교구를 다스렸다. 1933년에 뮈텔 주교가 사망하자 자동적으로 그의 뒤를 이어받아 서울교구장으로 취임, 1942년 1월 5일 사임할 때까지 일제하의 어려운 시기에 서울교구를 무사히 이끌어 나갔다. 더욱이 일제 말기에 이르러 민족문화 말살에 혈안이 된 일제는 교회에까지 탄압의 손을 뻗쳐, 전교의 자유를 제한함은 물론, 신사참배의 강요 등 교회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였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1927년 혜화동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이 결정적으로 덕원(德源)으로 이전하자 혜화동에 있던 베네딕토수도원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용산 신학교에서 소신학교를 독립시키는 등 방인성직자 양성과 교세 확장에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또한 5교구 교구장들과 연합하여 교리서와 한국 교회지도서를 통일시켰고, 교회출판물을 통제하여 새로 <가톨릭청년>을 창간함으로써, 민족문화 향상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소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더욱 교회를 탄압하여 외국인 성직자를 구금 추방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게 됨에 따라, 라리보 주교는 사임할 것을 결심하는 동시에, 조선 교회의 보존을 위해 한국인 성직자를 주교로 임명해 줄 것을 로마 교황청에 요청하였다. 이렇게 해서 노기남(盧基南) 신부가 방인사제로선 처음으로 주교로 서품되어 서울교구를 다스리게 되었다. 서울교구장직을 노 주교에게 넘긴 뒤 용산에 있는 신학교 자리에 은거한 라리보 주교는 8.15광복이 될 때까지 성 바오로회 소속 한국인 수녀와 고아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다.

1948년 충남지역이 독립된 포교지로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됨에 따라 이 지역의 책임자가 되었고, 1958년 이 지역이 대목구로 설정됨으로써 초대 교구장이 되었으며 1962년 교계제도의 설정과 더불어 정식교구로 승격됨과 동시에 대전교구장이 되었다. 그 후 주교좌 성당을 신축하는 등 대전교구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그러나 고령으로 점차 격무를 감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1965년 3월 현직에서 물러나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가, 1974년 8월 12일에 선종하였다. 그의 58년간에 걸친 한국 교회를 위한 봉사와 공로로, 1960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온 도뇌르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196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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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베리타스 [원] Radio Veritas

약칭 R.V.O.S. 필리핀에서 송신되는 가톨릭의 아시아 지역 복음방송. 1964년 교황 요한 23세의 뜻에 따라 서독정부와 미세레올, 그리고 미시오의 지원으로 설립되어 필리핀의 케손시티(Quezon city)와 말로로스(Malolos)에 송신소와 제작 스튜디오를 두었다. 방송의 목적은 아시아지역의 선교활동을 돕고 나아가 전 세계를 그리스도교화(化) 하고, 전 세계에 소식을 전하며, 교육을 심어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은 방송 시설의 이용을 원하는 각 나라들이 자국(自國)의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자국의 스튜디오에서 자국어나 영어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녹음테이프를 마닐라 R.V.O.S.로 보내면, 각국에서 파견된 아나운서들이 재편집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R.V.O.S. 본 방송국 스튜디오 제작 프로그램으로는 정규 영어 프로그램, 뉴스, 종교 및 사회적 내용의 일반방송, 그 밖에 아시아 대상국의 국어로도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상지역에 대하여 녹음시설과 인력 양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을 실시하며 그들의 자체적 프로그램 제작을 후원하고 있다. R.V.O.S.에는 각국의 방송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데, 현재 방송 대상국은 인도네시아 · 태국 · 스리랑카 · 인도 · 일본 · 중국 등이다. 한국을 위한 특별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으나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다.

[참고문헌] 최창섭 편,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총론, 성바오로출판사, 1978 / 최창섭 편, 교회와 미디어 각론, 성바오로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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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바티칸 [원] Radio Vatican

바티칸 시(市)에서 송신되는 가톨릭 복음방송.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의 활용가치를 재빨리 인정한 비오 11세(재위 : 1922~1939)는 1931년 ‘바티칸 라디오방송국’(Vatican Radio Station)을 개국, 단파를 이용하여 세계 모든 나라로 방송을 보냈다. 무선통신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마르코니(Marconi)가 처음 방송국의 설계와 시설을 맡았다. ‘바티칸의 소리’로 시작된 첫 방송은 라테란조약의 2주년 기념일에 송신되었는데, 이 조약에서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시의 유선 · 무선 활동을 허락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2개의 단파채널을 사용하여 10kw출력으로 방송했으나, 이후 교회의 관심으로 설비가 보강되어 1962년부터는 단파 100kw 출력으로, 하루 23.5시간 세계 31개 국어로 수백만 명의 청취 대상자에게 방송되고 있다. 현재 방송국은 바티칸시의 레오나인 타워에 있으며, 성직자와 평신도 200여명의 일하고 있는 방송국 설립의 목적은 가톨릭 사상을 전파하는데 있었으나 점차 그 기능의 확대되어 가톨릭 정보 매체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특히 2차 대전 중에는 전쟁 뉴스로 전쟁의 참상을 일깨워 주었다. 2차 대전 이후 편성 기능을 더욱 강화, 교회에 관한 뉴스와 교회활동은 물론 종교, 문화, 교육 전반에 관한 프로그램을 세계와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신생 국가 등에까지 청취 대상을 넓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참고문헌] 최창섭 편, 교회와 커뮤니케이션 총론, 성바오로출판사, 1978 / 최창섭 편, 교회와 미디어 각론, 성바오로출판사,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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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너 [원] Rahner

① 후고~(Hugo R., 1900~1968). 독일의 가톨릭 신학자이며 역사학자. 풀렌도르프에서 출생하여 뮌헨에서 별세. 동생 칼 라너(Karl Rahner)보다 3년 먼저 북 독일 예수회 관구 수련원에 들어갔으며(1919년)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공부하여 철학과 신학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1935년부터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전공은 교회사와 교부학이었으나 저술범위는 다양하였다. ≪Theology of Proclamation≫(1939, 영역 1968)에서 사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설교에 직접 소용이 되도록 전승, 지식을 재구성하고 교의신학을 재편성하는 일이라 주장하였다. ≪Man at Play≫(1949, 영역 1965)에서는 연극의 의미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교회의 상징인 마리아의 주제는 ≪Our Lady and th Church≫(1951, 영역 1961)에서 전개시켰다. ≪Greek Myths and Christian Mystery≫(1957, 영역 1963)에서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을 설명하였고 아울러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를 보존한 초대교회의 활약을 언급하였으며 나아가 고대 세계의 종교적 심성이 그리스도교에 의하여 체현(體現)되고 성화(聖化)되었음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였다.

② 칼~(Karl R., 1904-1984). 독일의 신학자, 프라이부르크에서 출생하여 인스부르크에서 사망하였다.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로 알려진 라너는 1922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932년 사제로 서품된 후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2차 대전 중에는 빈 대교구에서 본당사목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주로 대학에서 강의를 담당하였다. 뮌헨대학 교수시절 교황 요한 23세의 의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준비위원으로 임명되어 활약하면서, 공의회가 선포한 평신도의 전례 참여 등 중요한 결정사항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교리신앙성성의 일원으로 1969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설립한 국제신학위원회의 당연직위원으로 임명되기도 한 라너는 교황의 무류성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한 큉(Hans Kung) 신부에 맞서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옹호한 사실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방대한 그의 저작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바 있는 ≪Zur Theolologie des Todes≫(Freiburg 1961)(김수복 역 ≪죽음의 신학≫, 가톨릭출판사, 1983), ≪Der Mensch von Heute und Religion≫(변기영 역 ≪오늘의 인간과 종교≫, 성바오로출판사, 1971)를 비롯하여 ≪Das Dynamische in der Kirche≫(Freiburg 1958), ≪Esquisse d’une theologie de la paroisse≫(Paris 1961), ≪The Church and Sacraments≫(New York 1963),≪Spirit in the World≫(New York 1968)이 있고 이들 논문을 정대식 신부가 발췌 · 번역한 ≪영성신학논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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