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참설 [한] 圖讖說 [관련] 풍수지리설

1. 개념 : 세상의 운수(運數)와 인간의 미래를 예언하는 동양적 변혁사상의 일종. 일명 참위설(讖緯說). 도참(圖讖)의 도(圖)는 토지를 구분하여 기록한다는 의미의 글자였으나, 점차 그 의미가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미래에 일어날 사실의 비밀스런 상징(象徵, symbol), 전조(前兆, omen), 암시(暗示, suggestion)로서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즉, 장래에 어떠한 사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그 사상(事象)의 표지로서 어떠한 형식의 도(圖)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또한 도참의 참(讖)은 참언(讖言), 참서(讖書), 참기(讒譏), 참록(讖錄), 참요(讖謠) 등의 준말로 볼 수 있는 바 미래에 대한 예언이나 비기(秘記)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참이란 장래의 사실, 특히 인간생활의 길흉화복(吉凶禍福), 성쇠득실(盛衰得失)에 대한 예언이나 징조를 지칭하는 용어라 할 수 있으며 음양오행사상, 풍수지리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도참사상은 지기쇠왕론(地氣衰旺論), 왕도회귀론(王都回歸論), 피란보신론(避亂保身論) 등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있는 바, 이는 모두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과 풍수지리사상이 결합되어 제시된 이론이다. 지기쇠왕론은 망국(亡國)의 기지(基地)를 떠나서 지기(地氣)가 성한 것으로 주장되는 다른 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왕도회귀론은 왕조(王朝)의 흥망을 자기쇠왕설에 근거하여 논하면서 국가의 중심지인 왕도가 국가멸망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동 · 회귀한다는 사상이다. 피란보신론은 십승지지(十勝之地)에 관한 주장을 통하여 드러나는 바와 같이, 전쟁과 흉년 및 질병의 피해를 모면할 수 있는 지역을 찾고자 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점을 통하여 볼 때 도참사상은 사회적 전환기에 등장하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반영한 사회변혁사상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도참사상이 비록 양기풍수설(陽氣風水說)에 주로 근거하여 전개된 것이라 하더라도, 도참사상과 풍수지리설은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현재 ‘풍수도참’이란 용어가 많이 쓰여 지고 있지만, 이 용어는 풍수와 도참이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파악되어서는 아니 되며, 도참사상이 풍수지리사상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전개과정 : 도참사상은 중국 주대(周代) 말엽인 기원전 4~5세기경에 불안한 시대상과 관련하여 출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중국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때는 한대(漢代)였으며, 당대(唐代)에 이르러 전성시대를 맞게 되었다. 한국사에서 도참사상의 경향이 드러나고 있는 시기는 7세기 중엽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보면 이때 백제의 멸망을 예언하는 참설(讒說)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삼국통일 이후 신라 하대(下代)에 이르러서는 도당유학생(渡唐留學生)들을 통하여 당(唐)의 도참사상이 강하게 전파되어 신라의 멸망과 고려의 창건을 예언하는 각종 도참설이 성행하였다. 고려가 건국된 이후에도 국가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도참사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삼별초(三別抄)의 반란 때에도 도참사상이 등장하여 고려왕조의 멸망을 예언하는 데에 활용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고겨 말기에도 신돈(辛旽)이 <도선비기>(道詵秘記)의 지기쇠왕설을 이용하여 충주(忠州)로 천도할 것을 전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조선왕조에 이르러 왕조의 기반이 미처 확립되지 못한 상황에서 도참사상은 계속 성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15세기 조선왕조에서는 왕조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도참사상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도참서들을 수거하여 소각시킨 바가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말엽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전후한 시기에 이르러 조산왕조에서는 위기의식 높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과 관련하여 도참사상을 기록한 감결서(鑑訣書)인 <정감록>(鄭鑑錄)이 출현하였다. <정감록>은 조선 후기에 유행되던 수십 종의 감결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 책은 <정이문답>(鄭李問答) 등 여러 명칭으로 불리고 있으며, 정감(鄭鑑)과 이심(李心)으 대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조선의 국운(國運)을 예언하여 조선왕조의 멸망과 정진인(鄭眞人)에 의한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병란(兵亂)을 피하기 위한 십승지지로 영월(寧越), 단양(端陽), 풍기(豊基)를 비롯한 10여 곳의 피난처를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정감록>은 조선후기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왕조적 질서에 저항하는 민중반란에 있어서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홍경래의 난’(洪景來亂)에서도 정감록적 발상이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참사상과 <정감록>이 가지고 있던 체제 부정적 측면 때문에 조선왕조에서는 이의 유포를 엄격히 금지시키려 하였지만 이 사상은 더욱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감록>은 일제시대와 광복 이후 한국전쟁의 기간에도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3. 평가 : 도참사상은 전근대적 자연관(自然觀)에 입각하여 사회변혁을 시도하려던 사상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사회변혁의 필연성과 사회적 위기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방편으로서 피란보신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 점 때문에 도참사상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의 해석과 평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즉, 하나는 도참사상이란 불합리한 기존의 질서를 부인하는 사회변혁사상으로 파악하여 이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반면에 도참사상이란 과학성이 결연된 미신의 일종이며, 역사의 주체인 민중에게 회피의식만을 강조하는 망국적 견해로 보려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역사상으로 볼 때 도참사상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 기능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며, <정감록>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회피의식은 <정감록>의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편, 조선후기 도참사상의 전형적 예인 <정감록>은 당시 성행하던 실학(實學)에서와 같은 과학성이 결여되어 있고, 미래의 새로운 사회체제에 대한 확고한 대안을 제시해 주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정감록> 사상의 요체는 일종의 메시아니즘(Messiahnism)적 성격으로 파악되는 바이며, 이에 근거하여 이씨왕조(李氏王朝)의 변혁을 촉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도참사상이나 그 대표적 저서인 <정감록>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공식 견해는 표시된 바가 없었다. 그러나 도참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예언적 요소 때문에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를 미신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도참사상은 일종의 역사현상으로 파악되어야 하며, 여기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미신으로 판단하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趙珖) (⇒) 풍수지리설

[참고문헌] 鄭鑑錄集成, 亞細亞文化社, 1984 / 朝鮮秘訣全書 / 崔昌祚 韓國의 風水思想, 民音社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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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유 [한] 塗油 [관련] 기름부음

⇒ 기름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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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의 은총 [한] ~恩寵 [라] gratia actualis [영] actual grace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은총안에 살도록 도와주는 은혜. 은총이란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요, 하느님 자신이지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인간이 받아들이고 응답하도록 초대하여 주신다. 인간이 이 응답의 생활을 하도록 도움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도움의 은총이라 한다. 즉 하느님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당신 도움의 은총을 거절치 않으신다.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에 응답할 수 있게 하며, 자신을 준비하고 개방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인간 자유의 편에서 힘이 되어 주는 현실적인 도움을 도움의 은총이라 한다. 이 호칭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성화(聖化)의 은총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이 은총이 인간의 자유를 도우면서 함께 작용하는 은총이라 하여 협격의 은총(gratia cooperans)이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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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현상 [한] 都市化現象 [영] plenomenon of urbanization [관련] 도시사목

생산과정의 분업화 · 통합화, 공업, 상업 및 교통의 발달,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 교육, 문화적인 혜택 등의 이유로 농촌이나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함으로써 발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도시화 현상이라 한다.

① 인구문제 : 인구 수용력을 넘어 균형을 잃은 도시화 현상은 그것 자체가 문제인 동시에 도시문제를 발생시키는 근원이 된다. 왜냐하면 도시로 유입된 인구는 노동인구도 있지만 생활능력이 결여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② 생활환경문제 : 도시사회에서는 표면적이고 부분적인 인간관계가 우세하고,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는 혈연적 · 지연적인 결합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는데다가 매스컴에 의한 말초적 자극이 가해져 가족해체현상과 지역사회 해체현상이 일어난다. 이에 따라 가출, 이혼, 범죄, 비행, 매춘, 자살 등의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도시사회는 가능적으로 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을 비인간적인 조직에 종속시켜 조직속의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③ 사회문제 : 도시의 광범한 유휴노동은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이에 따라 노동문제가 야기된다. 격렬한 도시생활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난 실업자들은 빈곤으로 인해 슬럼가나 매음굴로 몰려든다. 이곳은 이상(異常)성격 소유자, 범죄자, 가출인, 부랑자들의 온상이 된다. 매음은 빈곤과 결부된 여성의 생활문제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형식적인 단속과 금지로 근절될 수 없다. ④ 교육문제 : 도시사회에서는 가족해체현상에 따라 가정교육이 농촌보다 더욱 절실한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되는 수가 많다. 학교와 사회교육이 이러한 결함을 메워 주어야할 처지에 있지만 도시사회는 이를 수행할 수 없는 형편에 있다. 이 때문에 청소년의 각종 비행과 범죄가 넘쳐흐르게 된다. ⑤ 교통문제 : 도시교통문제의 근본원인은 수용능력을 초과한 과다한 인구에 있겠지만, 도시생활이 주야간 인구 이동, 그것도 주간의 도심으로의 인구 집중과 야간의 외곽으로의 인구 분산이 반복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이 도시교통의 정체현상을 이루는 주요한 원인이다. ⑥ 산업문제 : 대도시에서는 정치 · 행정 권력에 밀착한 산업과 상업이 지방도시와 농촌지역을 지배하려고 한다. 또 공단지대와 인간생활에 의한 환경오염은 인류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⑦ 행정문제 : 이 같은 문제들은 현재의 문제 일뿐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하고 계획적인 정책이 수립되어야 하며, 교회는 도시화 현상에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사목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부분적으로는 도시화 현상에 따르는 사목문제를 다루고는 있으나 아직은 체계적이지 못하다. (⇒) 도시사목

[참고문헌] 사목헌장, 서론 / 바오로 6세, 행동에의 부름,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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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사목 [한] 都市司牧 [영] urban pastoral

도시 사목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필요로 하는 사목활동이라고 좁혀서 생각하는 것이 적절한 듯하다. 이렇게 한정해보면, 도시사목은 농촌인들이 요청하는 농촌사목(農村司牧)과는 어느 정도로 구분될 수도 있을 것이고, 농촌인이나 도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사목활동을 일반사목(一般司牧)이라고 한다면, 일반사목과도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도시에서만 특별히 요청되는 사목활동이 주로 다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도시사목 활동을 거론하기 전에 사목활동은 무엇인지 먼저 고찰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사목활동은 목동이 가축떼를 돌보고 있다는 성서의 비유에서 유래한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육성하기 위한 모든 일과 활동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사목활동에 매우 여러 가지 일들이 포함된다. ‘사제직무 교령’에 의하면 신자 공동체의 건설, 그것의 일치를 위해서 참고 책망하는 것, 교리교육, 전례의 집행, 회합 소집과 진행,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을 돕는 것, 젊은이와 가정을 도와서 신자생활을 인도하는 것, 병자와 임종자를 방문하는 것, 예비자들에게 세계 준비를 시킴, 자선사업, 기도와 보속 등이 모두 사목활동의 일부이다(사제직무 교령 6).

상당히 오랫동안, 사목활동은 매우 좁은 의미로 이해되어서 몇 가지 활동만이 포함되었었다. 어린이와 예비자의 교리교육, 성사집행, 고아와 노인을 돌보는 자선사업, 환자를 위한 병원사업,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과 옷을 마련해 주는 애긍시사 등이 사목활동의 전부라고 생각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더불어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자유 · 평등 · 인권사상이 강해지면서 사목활동의 개념이 크게 넓어져 갔다. 전통적 사목활동 외에 사회 부조리에 대한 지적과 비판, 그것들을 없애려는 여러 가지 행동들도 사목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인정되었다. 사목활동의 개념이 언제부터 넓어지기 시작하였는지 분명히 규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1891년에 발표된 회칙 <노동헌장>에서 교황 레오 13세는 교회의 최고 사목자의 임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심각한 노동자문제를 야기시킨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였다. 교황은 억울한 대우를 받는 노동자들의 권리옹호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교회의 중대한 임무라고 하였다. 그래서 대체로 그 때부터 사회 부조리의 제거와 인권 신장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도 사목활동의 일부로 인정되고 그 개념이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사목활동 개념의 확장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더욱 확고해졌다는 것은 틀림없다.

사목활동과 복음 선포는 동일한 활동을 가리키는 두 개의 말마디에 불가하다. 사목활동의 경우와 같이 복음 선포의 개념과 매우 좁게만 이해하여, 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주는 것과 기타 다른 성사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과 <선교활동 교령>에서 복음 선포의 더욱 충족스럽고 넓은 뜻이 발견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도 복음 선포는 넓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복음 선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위반되는 인간의 판단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양식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 잡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복음선교 19).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음 선포의 뜻을 더욱 명백히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겠다. “만일 복음 선교가 복음과 인간의 구체적 생활과의 관계, 즉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생활 사이에 지속적으로 있는 상호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복음 선교라고 할 수 없다. 복음 선교에 있어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 인간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생활, 사회 공동생활, 국제관계, 평화, 정의, 개발 등에 대하여 명백한 견해를 표시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복음선교 29). 그런 까닭에 복음선포와 사회 발전이나 해방(解放) 간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은 사회경제적 문제와 관련된 존재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계획가 구원계획과 구원계획과도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 선포에 있어서는 정의, 해방, 발전, 평화의 문제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여 참된 인간 발전을 증진시키지 못하면 사랑의 계명과 명령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복음선교 31). 물론 강조될 점은 복음 선포에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영역의 인간 해방을 위한 노력이 포함되고 있지만, 그 둘이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 해방과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다 해도, 동일한 것은 아니며, 인간 해방과 발전의 실현은 하느님 나라의 내림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복음선교 35).

도시상황과 도시인이 요청하는 사목활동에는 다양한 활동이 있겠으니, 여기서는 노동사목과 기초공동체 운동만을 다루고자 한다. 산업화의 필수적인 부분인 공장들은 도시에 건설되며 그에 따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도시로 몰리게 된다. 이 공장 노동자들의 영성 생활 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조건의 개선과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을 노동사목(勞動司牧)이라고 부른다. 또한 산업화에 따라서 도시가 성장하고 팽창한다. 도시에는 무수한 사람이 섞여 생활하고 서로의 작업과 직장이 상이하기 때문에 익명성(匿名性)이 높고 특히 도시인이 거주하는 인근지역 내 사람들 사이에도 익명성이 높아서 서로 모르고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신자들이 같은 인근지역에 거주하면서도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정한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을 규합하여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두는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기초공동체 운동이다. 노동사목과 기초공동체 운동은 도시상황과 도시인이 요청한다는 점과 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을 돕고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점에서 공통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것들 간에는 차이점도 크다. 노동사목은 일정공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나 꽤 넓은 지역에 산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삼으며, 그들의 생활 향상과 인권 신장에 큰 관심을 두는 반면에, 기초공동체 운동은 비교적 좁은 인근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삼고, 그들간의 친밀한 인간관계의 형성과 공동체의 구성을 일차적 목표로 두고 있다.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사목활동은 대개 세 가지 방면에서 진행되었다고 보인다. 첫째는 노동문제와 노동자에 대한 교리적 원리적 입장을 고위 사목자인 주교와 교황이 선포하고 대중에게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는 교회의 원리가 사회 안에서 실효성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원리의 정신을 담은 법률 제정을 촉진하는 활동이며, 셋째는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조직하고 의식화시키며 교육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사회적 교리와 원리가 포괄적이고 본격적으로 선포된 것은 1890년에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이 발표된 때부터이고, 그 이후 1981년에 발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노동하는 인간>을 포함해서 대개 9개의 사회회칙이 나왔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회회칙의 관심은 넓어지고 다양해졌으며, 사회원리에 대한 이론도 다듬어지고 정교화되었기 때문에, 그 회칙들은 중요한 문헌으로 남아 있고, 우리말로 모두 번역되었다. 가톨릭 사회원리를 법률에 반영시켜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생활조건과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은 케틀러(Kettler) 주교의 선도 하에 1850년대에 독일에서 먼저 착수 되었으나, 이 방면에서 많은 공헌을 한 이는 미국의 라이언(Ryan) 신부이다. 그는 1909년에 회칙 <노동헌장>의 정신을 담은 법률이 미국에도 없다는 점에 창안하여 수십년간 노력하였으며 1935년부터 미국연방회의에서 제정된 노동조합법(와그너 법), 사회보장법, 공정근로기준법의 출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 법률은 우리나라에서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노동위원회법, 노동청의 조종법 등의 기초가 되었다.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조직하고 단체교섭을 통해서 그들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노력에 협력하는 노동사목은 독일 교회가 1850년대에 시작하였고, 이 사목활동은 영국과 미국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회칙 <노동헌장>이 발표된 이후에는 그런 사목활동이 더욱 활성화되어, 많은 나라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있던 노동조합과는 별도로, 기독교 노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하였다. 노동조합의 육성을 위한 사목활동과 연관을 맺으며 발족한 노동자의 조직체가 가톨릭 노동청년회( J.O.C.)이다. 이 운동은 벨기에에서 기독교 노동조합의 지도 신부로 일하던 젊은 카르딘 신부가 1925년 4월 18일에 가톨릭 청년노동자들을 규합하여 발족시킨 조직체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전 세계적으로 파급되면서 급격히 성장하였다. 1950년에는 가톨릭 노동청년회가 60여개 국가에 조직되었고, 1958년 한국 가톨릭 노동청년회가 조직되어 국제협의회에 가입할 당시에는 70여개 나라에 전파되어 있었다. 가톨릭 노동청년회는 통상적 의미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 청년을 신자답고 책임성이 있으며 의식화된 노동자로 육성하고 교육하기 위한 조직체이다. 따라서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노동의 그리스도교적 의미와 가치관을 가르침으로써 올바른 노동윤리를 고취시키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조건과 환경을 비판적으로 관찰하도록 의식화시키고 훈련시킴으로써 그것을 개선하도록 돕는 것이다. 셋째는 회원 각자가 노동자 대중의 의식화와 교육을 위해서 노력하도록 지도하고 후원하는 것이다.

1956년에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활성화하기 위해서 기초교회공동체(Basic Ecclesial Community)에 착안한 이는 브라질의 바라 도 피갈(Barra do Pigal) 교구의 로시(Rossi) 주교였다. 원래 기초공동체는 남미 전역에 산재하여 있는 수적으로 많고 무지한 신자들과 고질적인 사제 부족으로 침체된 교회의 문제를 극복할 목적으로 창안된 수단이었다. 이것은 성직자의 노력과 힘에만 의존하던 구태의연한 사목방법과 본당조직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평신도의 열성과 역량을 사목활동과 복음화에 도입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기초공동체 운동은 수많은 촌락에 분산되어 살지만 사제부족으로 인해서 종교교육을 받을 기회와 성사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농촌신자들과,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 따라 도시 주변으로 이주하였으면서도 격차 있는 문화와 생활수준을 가진 중산층과 상류층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도시의 기존본당의 전례와 활동에 참여하기를 기피하는 도시의 영세민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다. 이 운동은 성직자와의 접촉을 거의 갖지 못하는 촌락과 도시 빈민가의 주민 신자 중에서 몇 사람을 선정하여 지도자로 육성하여 그들에게 공동체의 활성화 임무를 위임한다. 그뿐 아니라, 단기 교육과 정을 통해서 양성된 지도자에게 성직자만이 수행하면 신자 교육, 전례 집전, 상담 등의 사목활동을 시키는 데에 주력한다. 이와 같은 착안이 서로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살며 동시에 너무 비대한 도시본당의 활성화를 위해서 도입된 것이 도시의 기초공동체에 운동이고, 최근에는 전세계적으로 도시사목 활동이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하고 있다. 도시의 기초공동체 운동은 같은 본당에 속하고 가까운 인근지역에 거주하면서도 직장, 직업, 생활수준이 상이하기 때문에 서로 모르고 지내는 신자들을 규합하여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대략 1980년부터 서울 대교구와 몇몇 교구의 도시본당에 기초공동체 운동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도시본당에 수십년간 유지되던 구역과 반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전부터 있던 구역이나 반에는 40~60의 신자가구가 포함되고, 구역장이나 반장이 임명되어 있었으나, 구역원과 반원들은 서로 모여서 접촉하고 친교를 맺으며 신앙과 대화를 갖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기초공동체가 도입되면서 도시본당은 신자의 거주지별로 10~15가구씩 세분되고 반과 구역이 조직되었다. 반원들은 매달 주기적으로 모임을 갖고서 공동유대의 강화와 연구에 힘쓴다. 그들은 새로운 이주자와 냉담자를 흡수하여 신앙생활을 돕고 본당과 연결한다. 그들은 예비자도 빨리 흡수해서 격려함으로써 교리교육과 세례 준비를 용이하게 한다. 그들은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당하여 돕고 나눈다. (吳庚煥)

[참고문헌] 두봉 편저, 노동과 인간화,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81 / 오경환, 도시 본당의 구조적 결함과 그 개선방안, 사목, 77, 1981 / 오경환, 가톨릭의 산업선교와 신학적 이론, 문학과 지성, 1981. 11 / 요한 바오로 2세, 이종흥 역, 현대의 복음선포,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7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김남수 역, 사제양성에 관한 교령, 공의회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75 / Daniel H. Levine Religion and Politics, Politics and Religion, in Daniel H. Levine de, Churches and Politics in Latin America, Sage publications, Beverly Hiels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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