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천주교연맹 [한] 大韓天主敎聯盟

산발적으로 추진되어 온 가톨릭 운동을 통합하여 본격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1949년 8월 26일 결성된 한국 가톨릭 평신도운동의 중앙추진단체. 본 연맹은 그 해 봄 주교회의에서 결성한 천주교 중앙위원회가 가톨릭 운동을 지도한다는 방침이 결정되면서, 이 방침을 실천한 기구의 필요성이 이미 제기되어 있었다. 이와 아울러 각 청년단체들도 가톨릭 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전국가톨릭청년연합회’(가칭) 결성을 촉구하여 왔다. 이러한 필요성과 흐름을 수용하여 8월에 열린 서울교구 연합청년회에서는 전국 청년단체를 결성할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를 총망라한 연맹의 결성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에 따라 대한 천주교연맹을 결성하기로 하고 28일 오후 2시 명동성당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연맹은 총재(초대 盧基南 주교), 고문(각 교구장), 중앙위원회(초대 위원장 朱秉煥, 총무 李海南, 위원 朱秉煥, 李海南, 朴秉來, 趙鍾國, 韓昌愚, 崔正福)로 구성되고 그 아래 교구별 연맹을 두며, 교구별 연맹에 본당별 연맹이 소속되는 조직형태를 취하였다. 그러나 창립 당시에는 본당연맹이나 교구연맹이 미처 결성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위로부터 아래로의 하향식 조직 형태를 취하였다. 연맹은 대내적으로 단결을 강화하여 운동의 통일을 기하고, 대외적으로는 입법, 행정, 교육, 산업, 문화 등 각 방면에 가톨릭 정신을 보급함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한국 가톨릭 운동을 대표한다는 목적과 역할을 띠고 있었다. 그 후 연맹은 1968년 7월 23일 한국 가톨릭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결성에 따라 그 활동과 임무를 협의회에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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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교사기 [한] 大韓聖敎史記 [관련] 조선성교사기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 한글역본의 표제. (⇒) ≪조선성교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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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한] 大韓聖公會 [관련] 성공회

⇒ 성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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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가톨릭학생총연합회 [한] 大韓~學生總聯合會 [관련] 대한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 대한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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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한] 大韓~學生全國協議會 [영] Korean Catholic Student Assembly

가톨릭 신자 대학생들이 학생으로서 더욱 나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창립한 전국 규모의 학생회 협의체. 1954년 대한 가톨릭학생 총연합회로 발족되어 1955년 팍스 로마자(Pax Romana) 국제본부에 가입하였다. 1972년 해체되었다가 1975년 대한 가톨릭학생 전국협의회라는 명칭으로 재발족하였다.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해방 직후 중 · 고등학생과 대학생 구분 없이 서울에서 가톨릭학생회가 조직되어 활동하였다. 6.25동란으로 인하여 부산을 피난간 후 그 곳 중앙성당에서 피난 교우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과 신심활동을 하기 위하여 학생회 창립총회가 개최되어 전국적인 유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4년 전국성년대회 때 공식적으로 전국 교구대의원회의를 개최하여 대한 가톨릭학생 총연합회를 발족시키고 같은 해 11월 13일 서울 동성중고등학교에서 제1차 전국대회를 개최하였다. 1960년대는 필리핀으로부터 도입한 셀 테크닉(cell technique)을 채택, 본당보다는 학교 중심으로 발전해 갔다. 1961년 5월 중고등학생연합회가 분리 독립되었고, 1967년 완공된 서울의 가톨릭 학생회관으로 같은 해 사무실을 이전하였다. 성지순례, 신앙강좌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그 내용의 미비로 활동이 고착되고 여러 가지 사회적 여건이 강화됨에 따라 1972년 해체되고 말았다. 1975년 대한 가톨릭학생 전국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재발족하여 보다 성숙된 활동을 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현재 사무실은 서울 명륜동 가톨릭 학생회관 내에 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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