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중국 명(明)의 학자 양정균(楊廷筠, 1577~1627)이 저술한 호교서(護敎書)로 1624년에 간행되었다. 외교인들이 천주교에 대해 갖고 있는 여러 의문스런 점을 모두 17개의 답(答)을 통하여 밝혔고, 또한 천주교와 유교(儒敎)와의 유사성, 차이점들을 밝혔다.
-
최신 글
-
-
-

한역 서학서(漢譯西學書). 중국 명(明)의 학자 양정균(楊廷筠, 1577~1627)이 저술한 호교서(護敎書)로 1624년에 간행되었다. 외교인들이 천주교에 대해 갖고 있는 여러 의문스런 점을 모두 17개의 답(答)을 통하여 밝혔고, 또한 천주교와 유교(儒敎)와의 유사성, 차이점들을 밝혔다.
대영광송
그리스도교의 찬미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단연 대영광송을 들 수 있으며, 그 시작부분의 가사가 드러내고 있듯이 그 기원은 주님의 강생 신비를 기념하는 성탄 대축일 미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성탄 대축일 미사 중에 대영광송을 부르던 관습이 얼마 안가서 보다 중요한 최고의 축제일인 부활성야 미사에도 적용되었을 것이고, 그런 다음에, 부활 성야 미사의 원형이며 주님 수난과 부활이라는 동일한 빠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모든 주일 미사에로 대영광송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었습니다. 교회의 전례적 전통안에서 대영광송은 처음부터 환희와 영광의 노래였으며 매우 경사스럽고 기쁜 날에 삼위일체의 영광을 현양하며 바치는 성시였습니다.
그러다가 대림절과 사순시기에 대영광송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림절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참회와 속죄의 기간이고, 사순시기는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참회하며 기도, 단식, 자선을 통하여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므로 이 두 기간은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대영광송이 어울리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성야의 대영광송이전까지는 종과 악기의 사용도 금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순시기에는 참고 있다가 부활을 맞이하여 온 마음으로 대영광송을 바치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고재판소로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들로 구성, 국가의 대법원에 해당된다. (⇒) 교황청법원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이 행해지는 신학교를 이르는 말. 1928년 서울 예수성심 신학교와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의 중등교육과정을 동성상업학교의 을조(乙組)로 개편하면서 이들을 구별하여 부르기 위하여 대학교육이 행해지는 학교를 대신학교라 불렀고, 중등교육이 행해지는 학교를 소신학교(小神學校)라 불렀다. 현재 대신학교는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와 대구 선목신학대학, 광주 대건신학대학, 수원 가톨릭대학 등 네 학교가 있다.
1934년 평양시 대신리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평양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막달레나. 평양시 관후리(舘後里)본당에서 분할, 창설되어 평양시의 동부지역 및 평남 대동군(大同郡)과 강서군(江西郡)의 일부지역을 관할하며 유서 깊은 논재[畓峴], 고둔[楸斌里], 쑥개[艾浦里] 등의 공소를 포함하여 12개의 공소를 두었다. 창설 당시의 본당명은 선교리(船橋里)본당이었으나 1939년 성당 준공 이후 신리(新里)본당으로 바뀌었고 1944년 다시 대신리 본당으로 바뀌었다. 초대 주임신부로는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가 부임, 1938년 9월까지 사목하면서 성당을 신축하고 6년제 초등학교기관 동평학교(東平學校)를 설립하는 한편 양로원과 보육원을 개설했고, 이어 메리놀회의 듀피(Duffy, 都) 신부가 2대 주임신부로 1938년 9월에서 1941년 12월까지, 김필현(金泌現, 루도비코) 신부가 3대 주임신부로 1942년 2월에서 1944년 4월까지,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4대 주임신부로 1944년 4월에서 11월까지 각각 사목하였다. 그 후 박용옥(朴-玉, 디모테오) 신부가 5대 주임신부로 사목하던 중 1949년 12월 7일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자 본당도 폐쇄되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했을 때 평양교구 내의 일부 본당이 복구되면서 2대 주임신부였던 듀피 신부가 다시 사목했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12월 2일 듀피 신부와 많은 교우들이 월남함으로써 다시 침묵의 본당이 되었다.
대신리 본당의 심신단체로는 청년들로 조직된 예수성심회, 40세 이상의 여교우들로 조직된 성부 안나회, 40세 이하의 여교우들로 조직된 소화 데레사회, 미혼여성들로 조직된 성모성심회, 남녀중학생으로 조직된 미사회 등이 있었고, 본당 운영의 사업체로는 1935년 개설된 나자렛 양로원과 영해 고아원, 1936년 개교한 동평학교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평양교구사편찬위원회편, 天主敎平壤敎區史, 분도출판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