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사 [한] 大~ [라] Missa sollemnis [영] high Mass

수 세기 동안 서방 교회에서 주요한 주일에 장엄하게 거행된 미사를 말한다. 대미사의 특징은 사제를 돕는 부제와 차부제(次副祭)의 참여, 성가대와 많은 수의 복사들, 향의 사용과 평화의 입맞춤 등에 있다. 이 미사에서 부제는 복음서의 봉독과 미사 후 파견을 담당했으며, 차부제는 사도들의 편지를 봉독하였다. 또한 성가대와 신자들은 미사 기도문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새 전례의 도입과 함께 이 용어는 공식문서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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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구 [한] 代牧區 [라] Vicariatus Apostolicus [영] Vicariate Apostolic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지 않은 지역의 교구로서 교황청에서 직접 관할하는 교구. 정식 명칭은 교황대리감목구(敎皇代理監牧區)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목구라고 하며, 이 교구의 장(長)을 대목(代牧) 또는 대목구장(代牧區長, 정식 명칭은 敎皇代理監牧區長)이라고 한다. 대목은 교황청에서 임명하며 교황을 대리하여 정식 교구의 주교와 같은 권한을 대목구에 행사한다. 이 교구제도는 17세기 이후에 정식 교구로 설정되기에 어려운 지역 및 새로운 포교지인 동양(東洋)지역에서 주로 시행되었는데, 대체로 장차 정식 교구로 설정될 수 있는 지역들에 대해 시행되었다. 그리고 이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대목은 대개 명의(名義)주교로 성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대목구들이 명의주교구를 겸하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1784년 교회가 창설된 후 곧 북경교구에 속하게 되었으나 많은 순교자를 내며 발전하여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조선(朝鮮) 대목구로 설정되어 북경교구로부터 독립되었고 초대 대목에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신부가 임명됨과 동시에 명의주교로 성성되었다. 조선 대목구는 1911년 서울 대목구와 대구(大邱) 대목구로 분리되었고 이어 1920년 원산(元山) 대목구, 1937년 연길(延吉) 대목구, 1939년 평양(平壤) 대목구, 1940년 함흥(咸興) 대목구, 1955년 춘천(春川) 대목구, 1957년 부산(釜山) 대목구 · 광주(光州) 대목구 · 전주(全州) 대목구, 1958년 청주(淸州) 대목구 · 대전(大田) 대목구, 1961년 인천(仁川) 대목구 등이 신설되었다. 그 후 1962년 3월 10일 한국 교회의 13개 대목구가 정식교구로 승격되고 동시에 서울, 광주, 대구는 대교구가 되어 3개의 대주교 관구로 나뉘어져 교계제도가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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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한] 代牧 [라] Vicarius Apostolicus [영] Vicar Apostolic, Apostolic Vicar [관련] 대목구

대목구(代牧區, 정식 명칭은 敎皇代理監牧區)를 관할하는 교구장. 정식 명칭은 교황대리 감목구장이지만 일반적으로 대목, 또는 대목구장이라 부르며, 대목구는 교계제도가 설정되지 않은 지역을 교황청에서 직접 관할하는 교구를 말한다. 대목은 교황청으로부터 임명되고 교황을 대리하여 정식 교구의 주교와 같은 권한을 대목구에서 행사하는데, 대개는 명의주교(名義主敎)로 성성(成聖)되기 때문에 이 경우 대목구는 명의교구를 겸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1831년 조선대목구로 설정되어 초대 대목에 브뤼기에르(Bruguiere, 蘇) 신부가 임명된 후 1962년 3월 10일에야 정식으로 교계제도가 확립되었기 때문에 1962년 3월 10일 이전의 교구장들은 모두 대목이다. (⇒) 대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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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원] Taiwan(Formosa) [한] 臺灣

면적은 3만 5,961㎢, 인구는 1,903만 명(1982년 추계), 가톨릭 영세교우수는 29만1,000명, 교구수는 9개, 본당 및 준본당수는 456개소(1982년 현재)이다. 7세기 초부터 이 섬의 존재가 중국인들에게 알려졌고, 1590년 포르투갈인들이 상륙, Formosa(아름다운)이라고 이름붙였다. 17세기 초에 중국대륙으로부터 대규모의 이민이 있었고, 1624년 네덜란드인이 요새(要塞)를 구축했으나 1662년 청(淸)나라 군대에 쫓겨났으며, 이때부터 대만은 청나라 복건성(福建省)의 일부가 되었다. 1858년 영국 · 프랑스와의 천진조약(天津條約)으로 안평(安平) 등 항구를 개항(開港), 청일(淸日)전쟁의 결과 1895년의 시모노세끼(下關)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가 1945년 일본의 패망에 따라 중국령으로 복구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國共內戰)에 패한 장개석(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이동, 1955년 미국과 상호방위협정 체결, 1971년 유엔의석을 상실하였다.

대만에 최초로 상륙한 가톨릭 선교사는 1626년 당시의 스페인 식민지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건너온 스페인 도미니코회 수사 마르티네스(Bartolome Martinez)와 그의 동료 선교사 5명이었다. 그들 및 그 후계자들은 대만 북부에서 활동하면서 약 4,500명을 영세케 했으나, 1642년 스페인 수비대가 남부 대만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 군대에게 패하여 철수하게 되고, 선교사들은 모조리 포박되어 자바섬의 바타비아(현 자카르타)로 호송되는 바람에 포교사업은 일시 중단되었다. 1662년 청나라에 항거하고 있던 명(明)나라 말기의 무장(武將)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군을 몰아내고 대만을 점령, 사자(使者)로서 아모이(厦門)의 도미니코회원 리치(Victorio Ricci)를 필리핀의 투손섬에 파견, 리치는 귀로에 기륭(基隆)항구에 상륙, 잠시 포교하다가 아모이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년 후 다시 건너와서 포교활동을 재개했으나 1666년 관구장(管區長)의 명으로 마닐라에 전임(轉任), 1673년에 마닐라의 도미니코회는 4명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교세회복을 도모했으나 중국관리의 심한 박해로 7개월 후에 철수, 1694년에도 선교사를 보냈지만 역시 포교에 실패하였다.

그로부터 185년간은 선교사 파견이 중단되었고 1859년에야 천진조약으로 개항(開港)이 된 것을 계기로 로마의 포교성성(布敎聖省)의 명을 받아 선교사 사인즈(Fernando Sainz)가 남부의 고웅(高雄)에 상륙, 200여 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박해 속에서 어려운 포교활동을 벌인 끝에 북쪽 대남(臺南)에까지 선교기반을 구축하였다. 또한 1868년 북부에도 포교하기 위해 헤르세(Francisco Herce)를 파견하였다. 이듬해 영국함대가 안평진(安平鎭)을 점령하고 군대를 대남에까지 진격시키자, 청국관리의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박해의 손도 늦추어져 비로소 장래 포교에 서광이 비쳤으며, 이 기회를 이용해서 기륭에 성당들이 중설되었다. 그러나 선교사 사인즈가 상륙한지 36년이 지난 1895년의 교세는 겨우 1,300명을 헤아리는 데 그쳤다. 그 해에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대만을 영유하게 된 이래로 교회는 전에 없이 평화를 누렸으며, 그 후 약 40년간에 신도가 5배로 불어났다. 1913년 그때까지 아모이 대목구(代牧區) 관할 하에 있던 대만교구는 독립하여 대만 지목구(知牧區) 관할 하에 분리되었고, 1945년 일본의 패망에 따라 중국 정부가 이 섬을 다시 장악하게 되었다. 1947년 1월 대만 지목구가 주일(駐日) 교황사절의 관구를 떠나 주중(駐中) 교황공사 관할에 들어갔고, 1949년 국민당정부가 대만에 자리 잡게 되었으며, 그 해 12월에 대만 지목구는 고웅(高雄) 지목구로 개칭되는 동시에 대북(臺北) 지목구가 신설되고, 1950년에는 고웅 지목구가 다시 분할되어 대중(臺中) 지목구를 신설, 그 포교에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1961년 대남과 고웅은 중국인 주교의 주교구로, 대중과 가의(嘉義)는 1962년에, 화련(花連)은 1963년에 각각 주교구가 되었다.

[참고문헌] D, Aduarte, Historia de la Provincia del Santo Rosario de la Orden de Predicadores en Philipinas, Japon y China, Manila 1640 / J. Fonseca, Hiotoria de los PP. Dominicos en la Filipinas, Madrid 1870~1872 / J.W. Ballantine, Formosa, Washington 1952 / P. Fernandes, One Hundred Years of Dominican Apostolate in Formosa, Quezon City, Phil. Is. 1959 / H.K. Tong, Christianity in Taiwan: A History, Taipei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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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교황 [한] 對立敎皇 [라] antipapa [영] antipope [관련] 교황선거

교회법상 부당하게 로마 교황직을 주장하거나 행사한 자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여러 가지 원인에서 기인하며 모두가 불신앙 때문은 아니었다. 이러한 혼란은 명백한 교황 선거법의 미비(未備)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 숫자는 여러 가지로 추정되는데, 1947년 이래의 바티칸 ≪교황청 연감≫(敎皇廳年鑑)에 따르면, 대립교황은 37명에 달한다. 특히 서구 대이교(1378~1417년) 때 그 숫자가 많았다. (⇒) 교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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