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교구지도서 [한] 大邱敎區指導書 [라] Directorium Missionis Taikou

1912년 성신강림 대축일에 반포된 대구교구 지도서이다.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됨으로써 한국 교회는 2개의 교구가 생기게 되었고, 이로 인해 1887년 반포된 ≪한국교회지도서≫는 각 교구의 실정에 맞게 새로 편찬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12년 대구교구장 드망즈(Demange, 安世華) 주교는 교구성직자 피정을 통해 성직자회의를 개최한 후, 지도서 초안을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작성하여 프랑스어 초안은 프랑스 성직자들에게, 라틴어 초안은 한국인 성직자들에게 보내 검토하게 했고, 이를 토대로 다시 9차의 회의를 통해 원문을 완성하여 1912년 성신강림 대축일에 대구교구 전지역에 반포하였다. 지도서 원문은 1914년 홍콩의 라자렛인쇄소에서 라틴어로 간행되었다.

≪대구교구지도서≫는 본문과 부록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문은 총 3편(篇) 20장(章) 291조목(條目)으로 되어 있으며, 부록은 18개의 항으로 되어 있다. 본문의 1편은 사제의 행동에 관한 대목으로 장상, 동료신부, 교우, 외교인, 당국 등과의 관계가 5장 29조목에 걸쳐 언급되어 있고, 2편은 사제의 성무에 관한 대목으로 성무집행, 공소방문, 성사집전, 회장, 신심단체, 영해회, 연말보고 등이 11장 208조목에 걸쳐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며, 3편은 교회재산 관리규정이 3장 54조목에 걸쳐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부록에서는 각종 교회문서 양식과 주교서품 예절, 신심단체 입회 예절, 새 신부들이 5년간 시험치러야 할 신학과목, 영해(嬰孩) 바치는 문서, 어린이들의 고해 · 영성체에 관한 칙령, 일몰 · 일출시각표, 성인축일표 등 모두 18가지의 사항들이 수록되어 있다. ≪대구교구지도서≫의 내용 중 회장에 관한 부분은 드망즈 주교에 의해 내용이 더욱 보강되고 체계화되어 1923년 ≪회장의 본분≫이라는 제목으로 저술 간행되었고, 이는 대구교구의 회장지도서로 쓰였다.

[참고문헌] Le Catholicisme en Coree, Hong Kong 192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대구가톨릭대학 [한] 大邱~大學 [관련] 선목신학대학

대구 대교구 관구의 신학교. 원 명칭은 선목신학대학이었으나 1985년 3월 1일자로 대구가톨릭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선목신학대학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대교구 [한] 大敎區 [라] archidioecesis [영] archdiocese [관련] 대주교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어 대주교가 다스리는 교구. 대교구는 일반적으로 산하의 여러 교구(속교구)와 함께 관구(管區)를 이루고 대도시 지역의 중심이 되고 있다. 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우리나라에선 ‘대성당’으로 불려진다. 한국에는 서울, 대구, 광주 등 3개의 대교구가 있다. (⇒) 대주교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대건신학대학 [한] 大建神學大學 [영] Daegun Theological College

재단법인 광주 대교구 유지재단이 민족과 인류의 복음화에 기여할 사제를 양성할 목적으로 1962년에 설립한 신학대학. 이 유지재단은 헨리(Harold W. Henry, 玄) 대주교의 명을 받아 1961년 전라남도 광주시 상무동에 학교부지 9만여평을 확보하여 시설을 완비한 후 1962년 3월 7일 철학과와 신학과 과정의 대건신학교 설립을 인가받고 4월 1일 개교하였다. 1964년 사립학교법 개정으로 법인명을 대건학당으로, 학교명을 대건신학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69년에는 예수회가 맡고 있던 학교 운영권이 관구주교단에 이양되었고, 1971년에는 대학원이 설립되었다. 처음에 모집대상 신학생은 광주, 전주, 제주(濟州), 대구, 부산 등 교구 신학생 지원자와 살레지오회,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소속 신학생들이었으나, 살레지오회, 프란치스코회, 예수회 신학생들이 가톨릭대학으로, 대구 · 부산교구 소속 신학생들이 선목신학대학으로 각각 전출되어 현재는 광주, 전주, 청주, 제주교구 등 관구소속 신학생 및 그 후 전입해 온 예수고난회, 과달루페회 소속 신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다. 부속기관으로는 도서관과 ‘전망’ 편집부가 있고, 정기간행물로는 교지 <새아람>과 계간지 <신학전망>이 발행되고 있다.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쌍촌동 305번지 소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당진본당 [한] 唐津本堂

대전교구 소속 본당. 현 소재지는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507로서 본당 주보는 ‘모든 성인’이다. 1970년대에 당시 대전 교구 소속인 합덕본당(合德本堂)은 당진군 내의 10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당진면 구룡리가 신자 수 170여 명으로 가장 큰 공소였다. 1939년 5월 교구 사제피정이 끝난 후 당진은 합덕본당 관할에서 분리되었고, 당시 금사리에서 전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로망투(Emile Fromentoux, 包萬壽) 신부가 초대(1939~1940년) 본당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당진본당이 설립되었다.

프로망투 신부는 곧 당진면 읍내리에 있는 그 전 당진 보통학교 대지를 매입하여 성당을 건립하였다.

당진본당의 역대 주임신부와 신자수, 관할 공소수는 다음과 같다.

2대(1941~1946년) 박원영(朴垣英, 프란치스코), 3대(1947~1948년) 이복영(李福永, 요셉), 4대(1948~1950년)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코르데스(Marius Cordesse, 孔) 신부로서 6.25동란으로 1950년 8월 22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3~26일 사이에 살해되었다. 다음 5대(1952~1965년) 본당주임은 유인성(劉寅成,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14년 동안 사목하였는데, 공소 수는 15개였고, 1958년 6월 23일 대전교구의 설정으로 본당소속이 서울교구에서 대전교구로 바뀔 당시 신자 수는 2,451명이었다. 6대(1966~1967년)는 변갑선(卞甲善, 치릴로) 신부로서 당시 관할구역 내 주민인구가 8만 명인데 대해 신자수는 2,500명, 공소수는 19개로 성가수녀회가 진출하여 전교활동을 담당하였고, 부속 유치원 · 중학교 · 진료소 · 고아원 · 신용조합을 운영하는 등 크게 발전된 상태였다. 7대(1967~1968년)는 김순호(金順浩, 프란치스코) 신부로서, 신자 수 2,674명, 공소 수는 19개이며, 8대(1968~1971년)는 구자오(具滋五, 베네딕토) 신부로서 공소수는 그대로이나 신자수는 2,261명으로서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을 보였다. 9대(1972~1976년) 조병기(趙炳起, 바오로) 신부 때인 1973년에는 신자수 1,938명, 공소수 17개, 1975년에는 2,120명, 17개였고, 10대(1977~1980년) 김병재(金丙宰, 바오로) 신부 때인 1977년에는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대신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가 전교활동을 담당했는데, 신자수는 2,275명이고 공소수는 15개로 줄었다. 그 뒤 1년만인 1978년에는 신자수 2,349명, 공소수 16개로 늘었고. 1979년에는 2,354명, 16개, 1980년에는 2,405명, 16개였다. 현재 본당주임은 11대(1981~현재) 장영식(張英植, 토마스) 신부인데 1981년 신자수 2,467명, 공소수 21개, 1982년 2,486명, 20개, 1983년 2,632명, 21개로서 신자 수는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84년 현재 신자수는 2,680명, 관할 공소수는 21개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