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서 [한] 湛軒書 [관련] 홍대용

조선조 후기의 북학파(北學派)실학자 홍대용(洪大容, 湛軒은 號, 1731~1783)의 문집(文集). 홍대용이 직접 편찬(編纂)해 남긴 《담헌내집》(湛軒內集)과 《담헌외집》(湛軒外集)을 후대(後代)에 와서 하나로 합본한 것으로, 1939년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담헌서》라는 제목 하에 7책(冊)으로 복간했고 이 책을 다시 1969년 경인(景仁)문화사에서 상 · 하 2책으로 재복간하였다.

<내집>(內集) 4권, <외집>(外集) 10권, 총 14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두 266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내집>과 <외집>의 중반부까지에는 실학적 주제를 가진 글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고 <외집> 7권부터 마지막 10권까지에는 1766년 홍대용이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북경을 방문했을 때의 기행문들과 북경의 남당(南堂)에서 예수회 선교사 할레르시타인(Hallerstein, 중국명 劉松齡) 및 고가이슬(Gogeisl, 중국명 飽友管)과 가졌던 학문적인 대화들이 수록되어 있다. (⇒) 홍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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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천 [한] 談天

영국인 천문학자 헤셸(Herschel)이 저술한 천문학 개설서 《천문학》(Astronomy)을 중국인 학자 이선란(李善蘭)이 한역(漢譯), 편집한 천문역산서. 1859년 18권 3책으로 초간되었고 1874년 중간되었다. 1책은 권1(卷一)에서 권6(卷六)까지로 지구(地球) · 측량법 · 지학 · 천도(天圖) · 태양의 운동 등에 대해, 2책은 권7(卷七)에서 권13(卷十三)까지로 달 · 행성 · 위성 · 혜성 등에 대해, 3책은 권14(卷十四)에서 권18(卷十八)까지로 항성 · 성운 · 역법 등에 대해 각각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3책의 끝에는 부록으로 각종 천문학 도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간행된 직후부터 조선에 전래되어 조선에서의 천문학 연구에 자극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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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원] Damm, Fabian

Damm, Fabian(1900~1964). 독일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원, 덕원교구 선교사, 신부. 독일바덴(Baden)주에서 출생. 한국명 탁(卓)세영. 성 오틸리엔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여 1928년 5월 10일 뮌헨 대학의 졸업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이애 7월19일 한국에서 입국했고, 그 뒤 덕원교구의 원산본당에서 20여년 동안 주임신부로 사목하였다, 6.25동란 직전인 1949년 5월 11일 베네딕토회 선교사들과 함께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노동수용소에 4년 동안 수용되어 있다가 1954년 1월 석방되어 독일로 귀국하였다. 그러나 1956년 다시 한국에 돌아와 왜관(倭館) 대리구에서 사목하면서 1958년 경북 김천의 평화동본당을 창설하고 초대 주임신부로 재직 중, 1964년 7월 20일 휴가를 보내다가 사망, 왜관 베네딕토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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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티카 [라] dalmatica [영] dalmatic

부제복(副祭服). 부제가 미사와 행렬 등 장엄한 의식 때 다른 모든 제의(祭衣) 위에 입는 옷, 소매는 폭이 넓고 짧으며 양 옆이 터져 있고 길이는 무릎까지 온다. 앞과 뒤에, 어깨에서 가장자리까지, 소매 끝에 다양한 색상의 줄무늬가 두 줄로 장식되어 있다. 미사 집전 사제의 제의와 동일한 천과 색으로 만들어 진다. 라틴 전례에서 부제서품 때 수여된다.

달마티카라는 이름은 달마티아(Dalmatia)의 모직으로 만들어진 데서 유래하며,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 : 284~305) 치하에 달마티아에서 로마로 전해져 귀족계급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교황만이 입었고 특전으로서 교황이 다른 이들도 입도록 허용했다고 전해진다. 4세기에 로마의 부제들이 처음 입게 되었고 12세기까지는 모든 부제들이 입게 되었으며 주교가 주교미사 때 제의(chasuble) 아래에 입기도 하였다. 원래 달마티카는 모직이나 아마포, 비단으로 만들어져 길이가 발등까지 오고 흰색으로 고정되었으나, 9세기에 로마 밖에서 길이가 무릎까지로 짧아졌고 옷 입기 편하게 양 옆이 터지게 되었다. 12세기에 색상도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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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레 [원] Dallet, Claude Charles

Dallet, Claude Charles(1829~1878). 신부.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교회사가. 1829년 10월 18일 프랑스 디종(Dijon)의 동북부에 위치한 랑그르(Langres)에서 출생. 랑그르의 소신학교(小信學校)를 거쳐 대신학교(大神學校)에 진학하여 수학하던 중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1850년 10월 5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 1852년 6월 5일 사제서품을 받고 인도 마이수르(Maissour) 지방의 선교사로 포교에 전념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벌여 1859년 마이수르 지방의 개신교의 공격을 논박한 교리서 《A Controversial Catechism or short Answers to the Objections of Protestants against the true Religion》을 영어로 저술, 모든 선교사들의 필수품이 될 정도로 찬사를 받았다. 1860년 간질(癎疾)에 걸려 귀국, 치료를 받고 병이 어느 정도 낫자 힌두어의 보급을 위해 힌두어 활자를 주조(鑄造)하여 파리 국립인쇄소에 힌두어 인쇄시설을 갖추게 하고 1863년 포교지 인도로 돌아갔으나 간질이 재발되어 1867년 다시 귀국, 파리에서 병을 치료한 후 파리 외방전교회와 신학교를 위해 활동하였다. 1871년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보불전쟁(普佛戰爭)이 일어나 신학교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캐나다와 미주지역을 방문, 기부금을 모집하는 한편 캐나다와 북미(北美)에서 파리 외방전교회의 활동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였고 이듬해 한국 주재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보낸 기초 자료와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의 비망기, 보고 및 편지들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사의 편찬에 착수, 2년 후인 1874년 상 · 하 2권으로 된 《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ee)를 출판하였다. 그 후 파리 외방전교회사의 편찬에 착수, 자료 수집차 외방전교회 관할의 각 포교지를 방문하기 위해 1877년 2월 파리를 떠나 일본(日本), 만주(滿洲)를 방문하였으나 한국에는 들어오지 못하고 북경(北京)에서 오래 체류한 뒤 다시 코친차이나, 홍콩을 거쳐 안남(安南)의 케소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케소에서 이질에 걸려 1878년 4월 25일 사망, 케소에 안장되었다. 평소 시와 철학에 관심이 깊어 몇 편의 철학 논문을 남겼고 선교사로 떠나가는 동료신부들을 격려하는 시 《선교사의 출발에 붙이는 노래》(Chant du depart des missionnaires)에는 작곡가인 친구 구노(Gounod)가 곡(曲)을 붙이기도 하였다. 달레의 사망으로 편찬이 중단되었던 《파리외방전교회사》(Histoire generale de la Societe des Missions-Etrangeres)는 1894년 동회원 로네(Adrien Launey)에 의해 완성되어 전 3권으로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崔奭祐, 韓國敎會史의 探究, 1982 / Les Missions Catholiques, t. X, 1878, pp.417-418 / Compte-Rendu, 1878 /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1879, pp.7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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