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이 [원] D’Ailly, Pierre

D’Ailly, Pierre(1350~1420). 프랑스의 추기경, 신학자, 철학자, 콩피엔(Compiegne)에서 태어나 아비뇽(Avignon)에서 죽었다. 1380년 파리 대학 신학박사 및 교수가 되었고, 1384년 스페인 나바라 신학교 교장, 1389년 국왕 샤를르 6세의 고해신부 및 자선자금 관리인이 되었으며, 파리대학 총장이 되었다. 아비뇽의 교황 글레멘스 7세에 의해 랑(Laon)의 주교로 선출되었으나, 샤를르 6세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으며, 1394년 성 루이가 건립한 생트샤펠의 보물관리자로 임명되었다.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395년 그에게 르퓌(Le Puy) 주교구를, 그 이듬해에는 명예로운 캉브레(Cambrai) 주교구를 맡겨 자기 사람을 만들려고 하였다. 피사당(黨)이 승인한 교황 요한 23세는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함으로써 자기편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다이이는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년)에서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였다.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선출된 교황 마르티노 5세는 그를 아비뇽 주재 교황특사로 임명하였다.

유명론자(唯名論者)인 그는 오캄(Occam)의 사상을 그 누구보다도 강력히 실천에 옮겼다. 공의회운동에 있어서의 그의 태도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롬바르도(Petrus Lombardus)의 신학명제집에 관한 그의 논제집 ≪Quaestiones super libros sententiarum≫은 파리에서 많은 신봉자를 얻었다. 그는 공의회를 교황보다 우위에 놓으려는 공의회 수위설을 주장했을 뿐 아니라, 일반적 공의회도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견해를 품고 있었다. 그의 문필활동은 다방면에 걸쳐 174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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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론 [라] Pluralismus [영] pluralism [독] Pluralismus [한] 多元論

철학적인 현상과 사물의 설명에 있어, 두 개 이상의 궁극적인 존재, 원리, 개념, 방법 등을 생각하는 입장이나 경향의 총칭을 다원론이라고 한다. 넓은 의미에선, 어떤 문데, 현상이나 사물의 영역에 대하여 많은 서로 독립된 근본적인 원리, 요소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이고, 좁은 의미로는, 세계가 서로 독립된 많은 근본적인 원리, 요소로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세계관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많은 수(數)를 원리로 삼은 피타고라스(Pythagoras)학파, 땅 · 물 · 불 · 바람의 네 원소를 생각한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다수의 씨앗’ 즉 다수의 원소를 상정했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등은 질적 다원론이며, 데모크리토스(Demokritos)의 ‘원자론’(原子論)은 양적 다원론이다. 근세의 라이프니츠(G.W. Leibniz)의 ≪단자론≫(單子論), 현대의 논리적 원자론 등도 존재론적 다원론의 예이다. 일원론과 다원론의 대립은 전통적인 철학의 문제로서, 형이상학적인 가정에 떨어지기 쉬운 일원론에 비하여 다원론은 충분한 원리로써 자신을 주장할 수가 있다.

가톨릭 ‘교리상의 다원론’(doctrinal pluralism)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 의하여 배척되었는데, 이 경우의 다원론은 교회가 교리라고 정의하며, 혹은 통상의 보편적인 교도권에 의해 가르치는 일과 반대되는 입장을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다는 설을 지칭하였다. 또한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는 다종다양한 신학상의 입장을 가리키는 ‘신학상의 다원론’(theological pluralism)은, 교회가 그러한 다양성을 허가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장려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가톨릭 신학자가 다양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의 규준을 존중하고, 로마 주교 아래 있는 성직 위계의 교도(敎導)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전제이다.

[참고문헌] H. Marcus, Die Philosophie des Mono-Pluralismus, 1908/G.A. McCool, Philosophical Pluralism and an Evolving Thomism, Continuum 2, 1964/John A. Hardon, S.J.,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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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 [독] Polytheismus [프] polytheisme [한] 多神敎 [영] polytheism [관련] 원시종교

다수의 신을 가진 종교체계로 일신교(一神敎)와 대비된다. 동식물은 물론 산 · 강 · 바다 · 바위 등의 무생물에도 정령(精靈)이 잠들어 있다고 믿어 사물에 독립된 하나의 인격적 존재를 인정하는 애니미즘(animism)의 경우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정령의 존재가 자연현상에 내재(內在)되어 있다고 하는 원시인의 신앙 속에서 보여지는 신관념(神觀念)의 원초적인 형태라고 생각된다. 자연 속에 움직이고 있는 초자연적인 특별한 힘이 항상 제멋대로 무질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질서를 가지며 특성을 갖춘 개성이 있는 것이 될 때 신의 모습으로 부상하게 된다. 태양신, 지신(地神), 바다의 신, 바람의 신 등과 같은 자연신과 진리 · 정의 · 질서의 신, 생식(生殖)의 신, 기술의 신, 사고(思考)의 신 등과 같이 추상적인 힘이나 관념을 지배하는 신들이 있다. 그리스의 예술에 있어서의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신이 표현되는 경우에서처럼 이들 신의 활동은 인간에 가까운 성격과 특성을 가진다. 그리스 이외에도 부분적으로든 전체적으로든 인간의 모습을 띤 신, 즉 신인동형관(神人同形觀)에 의한 신이 많다. 이들 신은 보이지도, 접촉되어질 수도 없는 일신교의 초월신과는 달리 감각되어질 수 있는 형태로서의 존재이다. 물론 다신교에 있어서 신의 형태가 동물이나 어떤 이상한 얼굴을 가진 것도 보여지며, 신의 존재와 본질이 이간과 다른 이질성을 가진 것도 많다.

이러한 다신교의 신들은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지배하며 인간의 생활도 담당하는 존재로 인정되기 때문에 신들의 수도 많고 그들이 맡은 일도 제각기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문화가 발전하고 인간생활에 질서가 확립되고 사회 · 경제가 변화하자 신의 관계도 정리되어 하나의 유력한 신이 주신(主神)으로 군림하여 다른 모든 신을 종속시킨다. 이러한 면에서 다신교와 일신교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발전상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 원시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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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가지 방법 [한] ~方法 [라] quinque viae [영] five ways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섯 가지 방법.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것은 유명한 ‘신의 존재증명법’으로 결과에서 원인을 추론하는 연역적 방법을 사용, 창조된 결과인 우주에서 그 원인인 신을 추론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즉 ① 우주의 운동(혹은 변화)은 그것을 움직이게(변화하게) 한 제1운동자(運動者)[제1운동자 자체는 움직이지 않는다]의 존재를 증명한다. ② 세계에서 관찰되는 능동인(能動因, efficient causes)과 그 결과 사이의 관계는 제1원인인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③ 그것 자체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 즉 우연적인 존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적이고 필연적인 존재, 즉 신을 논증한다. ④ 사람들이 일반적인 비교를 통하여 어떤 것을 진(眞), 선(善), 미(美), 성(聖)이라고 생각할 때 이들 모두를 완전하게 갖춘 완전한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 존재가 발로 신이다. 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간에 지상의 모든 사물은 특정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데, 이것은 피조물을 예정된 목적으로 이끄는 전능하신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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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블뤼 [원]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1818~1866). 순교자. 성인. 한국명 안돈이(安敦伊). 파리 외방전교회원. 주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프랑스 아미앙(Amiens)에서 태어나 이시(Issy)와 생슐피스(Saint-Sulpice) 소신학교를 거쳐 1841년에 1년 반 이상 교구사제로 활약한 뒤 1843년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몇 달 동안의 수련을 거쳐 1844년 2월 류우뀨(琉球)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고국들 떠나 1844년 9월말에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조선교구의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Ferreol) 주교를 만나 그의 요청으로 조선 선교사에 임명되어 그와 함께 조선에 들어가기 위해 1845년 7월 하순에 상해(上海)로 갔다. 때마침 이곳에 다시 온 김대건(金大建) 신부와 함께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하여 10월 12일에 충청도 강경(江景)의 황산포(黃山浦)란 작은 포구에 닻을 내릴 수 있었다. 그는 이때부터 1866년 3월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신부로서 12년, 주교로서 9년) 조선의 선교사로 활약, 당시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가 되었으며 동시에 조선의 언어와 풍습에도 가장 능통하였다.

황산포에 도착하여 주교는 서울로 올라가고, 자신은 강경지방에서 조선말을 배워 이듬해 1월부터 전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서양인 성직자의 입국사실이 알려짐으로써 그는 박해를 피해 더욱 외딴 곳으로 숨어 다니며 전교에 힘썼다. 한편 교황청으로부터 성모무염시태를 조선 교회의 새 주보로 받게 되었고, 또 그 동안 성모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자 파리에 본부를 둔 성모성심회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 1846년 11월 2일 충청도의 ‘수리치골’(현재 公主郡 新豊面 鳳甲里)에서 교우들과 같이 미사를 올리고 조선에 ‘성모성심회’를 창설하였다. 또 2년 뒤에는 신학생들의 지도를 맡았다. 1853년 그와 함께 입국한 페레올 주교를 잃었으나 슬픔을 딛고 일어서서 전교에 더욱 힘을 쏟았으며 틈틈이 ≪한한불자전≫(漢韓佛字典)을 편찬하였다. 또 조선사연표를 번역하고 교우들을 위해 교리서와 신심서를 번역 · 저술하였다. 1857년 3월 25일에는 베르뇌(Berneux) 주교로부터 보좌주교로 선출되어 서울에서 아콘(Acones) 명의주교로 성성되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천주교회사와 조선 순교사의 편찬이었다. 그러나 이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을 교구장으로부터 위촉받고 1857년부터 이를 위해 새 자료를 발굴하여 그것을 프랑스어로 옮기었으며 목격증인을 찾아 증언을 수집하는 데 힘썼다. 특히 1859년을 전후하여 그는 윤지충(尹持忠) 등 주요 순교자들의 전기를 파리본부로 보내는 한편 조선 천주교회사의 편찬을 위해 조선사에 관한 비망기와 조선 순교사에 관한 비망기를 저술하여 모두 1862년에 파리로 보냄으로써 후세의 귀중한 사료가 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바탕이 되어 후일 달레(Dallet)의 유명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저술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1863년에 그의 집에 불이 나 조선말과 한문으로 된 치명일기와 주석책 등 귀중한 자료가 모두 타 버렸기 때문에 이 책은 한층 가치 있는 것이 되었다.

1861년에 그는 경상도지방에서 전교하였는데 외교인들의 적개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1865년에 들어서면서 박해가 더욱 가혹해져 마침내 그해 2월 2일 베르뇌 주교가 먼저 잡히고, 그도 3월 11일 전교 중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옥중에서 갖은 고문을 받고 충청도 보령(保寧)의 수영(水營)으로 압송되어 3월 30일 참수를 당하였다. 베르뇌주교를 도와 9년 동안을 부주교로서, 그리고 주교의 순교 후 조선교구의 제5대 주교가 된지 21일 만에 순교한 것이다.

그 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복자위(福者位)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여의도 현지에서 시성(諡聖)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신명초행≫, ≪회죄직지≫, ≪영세대의≫, ≪성찰기략≫, ≪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 등이 있으며 이 밖에 ≪성교요리문답≫, ≪천주성교예규≫, ≪천당직로≫ 등도 그가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上 · 中 · 下, 분도출판사, 1979~1980 / 崔奭祐, 달레 著 韓國天主敎會史의 形成過程, 韓國敎會史의 探求, 韓國敎會史硏究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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