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실증주의 [한] 論理實證主義 [영] logical positivism

실리크(Moritz Schlick), 카르납(Rudolf Carnap), 노이라트(Otto Neurath) 등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1922년 형성된 빈학파(Winer Kreis)가 주장한 철학운동. 언어분석을 기초로 하여 모든 과학을 통합하려 하였고, 형이상학을 적극 배격하고 나섰다. 논리실증주의의 뚜렷한 특징의 하나는 이해 할 수 없는 형이상학을 단순히 포기하거나 형이상학의 유용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 그치지 않고, 형이상학적인 문장을 기술하려는 노력과 형이상학이 제기하는 문제 그 자체가 궁극적으로 무의미함을 보여주어 형이상학을 철학에서 축출하려 한 데 있다. 이러한 철학적 분위기는 흄(David Hume), 그리고 “인류지성사(人類知性史)에서 형이상학의 단계는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한 콩트(Auguste Comte) 등의 고전적 실증주의, 미국의 실용주의(Pragmatism)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다. 그는 빈학파의 모임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실리크 등과 개인적으로 교제했었고, 1921년 출판된 비트겐슈타인의 저작《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의 주제는 모임의 토론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1929년 빈학파는 《Wissenschaftliche Weltauffassung》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고 논리실증주의 철학 운동이란 “과학의 확고한 기초 구축과 의미 없는 모든 형이상학에 반대”하는 운동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문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을 사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과학적인 명제는 모두 프로토콜명제(protocol sentence)[원자명제(atom fact)이면서 그 진위(眞僞)는 직접 관찰을 통해 검증될 수 없는 명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현대과학의 명제를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정밀한 분석법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학기초론에서 유효한 기호논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현대과학의 명제를 프로토콜명제로 환원시키기 위해서는 기호논리학의 방법론을 모든 과학에 확장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때 우선 주어진 명제를 기초화하여 논리적 통어론(logical syntax)[어떤 언어에 속하는 문장을 단순한 기초로 배열하여 언어의 구조를 분석하는 이론]의 규칙에 따라 분석해 나간다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에 따르면, 철학의 임무는 모든 과학의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일이며, 이것은 위에서 말한 대로 프로토콜명제로의 환원이며, 프로토콜명제는 시간과 공간으로 이뤄진 좌표로서의 물리적 명제로 환원되기 때문에 물리학을 기초로 하여 모든 과학을 통일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종래의 형이상학은 프로토콜명제로 환원시킬 수 없는 의사명제(擬似命題, pseudo-proposition)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모든 철학은 무의미한 사상의 역사에 불과하였고, 논리실증주의의 출현과 함께 비로소 과학적인 철학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논리실증주의는 분석 불가능한 프로토콜명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자기모순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즉 프로토콜명제가 과연 과학적인 명제인가를 증명할 수 없다면 프로토콜명제를 통해 분석해 낸 결과의 과학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대답을 해야 한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프로토콜명제의 내용을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은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참고문헌] A.J. Ayer, Logical Positivism, 1959 / J.R. Weinberg, An Examination of Logical Positivism, 1936 / V. Kraft, The Vienna Circle; The Origin of Neo Positivism,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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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 [원] Knox, Ronald Arbuthnot

Knox, Ronald Arbuthnot(1888~1957). 영국의 가톨릭 성직자, 저술가. 옥스퍼드대학 출신. 가톨릭으로 개종(1917년), 옥스퍼드대학 전속 성직자로 있었다(1926~1939). 불가타(Vulgata) 성서로부터의 영역자(신약 1945, 구약 1949)로서 알려지고, 또한 유머와 기지에 넘치는 많은 수필을 썼으며, 추리소설가로도 저명하다. 주요 저서로 《The Belief of Catholics》(1927), 《Caliban in Crub Street》(1930), 《The Body in the Silo》(1933), 《Let Dons Delight》(1939), 《God and the Atom》(1945), 《Enthusiasm, A Chapter in the History of Religion》(195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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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수녀회 [한] ~修女會 [영] 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Notre-Dame

1848년 아델곤드 월브링(Adelgonde Wolbring)과 리제테 퀼링(Lisette Kuhling)이 독일에서 창설한 수녀회. 1789년 프랑스의 아미앙(Amiens)에서 줄리 빌리아르(St. Julie Billiart)가 창설한 여자교육활동 수녀회의 수족중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의 코스펠트(Coesfeld)에 본부를 둔 수녀회(Sisters of Notre-Dame of Coesfeld)가 1967년 한국에 진출하였다. 여성 교육사업과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형제사랑으로 돌보면서 더욱 건설적인 세계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 수녀회는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崔再善) 주교의 요청으로 내한하였고 한국인 지원자를 1962년 서독으로 보냈다. 1967년 서울 계동(桂洞)에 서울 분원을 설치하고 1971년 국내에서 한국인의 지원자를 받았다. 1972년 부산 부민동(富民洞)에 부산분원을 설치하면서 한국지부가 설정되었다. 1975년과 1977년에는 인천 송림동(松林洞)과 경기도 오산(烏山)에 각각 분원을 설치하였다. 1968년부터 1971년까지는 여대생들을 위한 기숙사업을 비롯한 버스 안내양들을 위한 교양교육사업 등을 전개하는 한편 1972년 10월에는 부산 부민동에 유치원을 개원하고 1975년부터는 인천의 박문여자중고등학교를 위임 경영하였다. 1975년 9월부터는 농어촌유치원 교육을 위하여 오산에 마을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1977년 오산유치원과 1979년 3월 안내양교양센터를 각각 개원하여 한국지부장 마리아 알렉산드라(Maria Alexandra) 수녀 외에 76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 현재 4개 지역의 분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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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대성당 [한] ~大聖堂 [프] Cathedrale de Notre-Dame de Paris

파리의 시테섬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성당. 공사는 1163년에 시작되어 1250년에 완성되었다. 쉴리 주교의 지휘로 착공하여 루이 9세 때 완공된 것이다.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에 측면 제실(祭室)의 증설로 겨우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때 건물은 많은 파손을 입어 19세기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이 건물은 130m의 장대한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오랑식(五廊式)으로 된 웅대한 건축이며, 중앙통로의 양측에는 열주(列柱) 등으로 명쾌한 3중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서쪽 정면에는 하층에 <최후의 심판> 부조(浮彫)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고,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은 이 성당의 위용을 돋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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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한] 盧天命

노천명(1912~1957). 여류시인. 초명은 기선(基善), 세례명은 베로니카. 황해도 장연군 순택면 비석포리(黃海道 長淵郡 蓴澤面 碑石浦里)에서 장연본당 회장 노계일(盧啓一)의 차녀로 출생, 1930년 진명여고보(進明女高普), 1934년 이화여전(梨花女專)문과(文科)를 졸업하고 잠시 <중외일보>(中外日報), <여성>(女性)지의 기자로 있다가 극예술연구회의 신극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35년 <시원>(詩苑)의 동인으로 동지(同誌) 창간호에 시(詩) ‘내 청춘의 배’를 발표하여 문단에 등장하였고 그 후 <매일신보>, <서울신문>, <부녀신문> 등의 기자를 역임하였다. 작품의 대부분은 서정시(抒情詩)로, 초기에는 감상적이고 여성적인 서정성을, 김동명(金東鳴)과의 실연(失戀) 이후에는 비현실적인 내면세계의 고독을, 1954년 입교를 전후한 말기에는 승화된 사랑, 종교적 참회 등을 표현하였다. 비교적 초기의 작품에 속하는 대표작 ‘사슴’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珊瑚林≫, ≪窓邊≫, ≪盧天命詩集≫, ≪별을 쳐다보며≫, ≪사슴의 노래≫(遺稿集)와 수필집 ≪산딸기≫, ≪生活의 白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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