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베르토 [라] Norbertus

Norbertus(1085~1134). 성인. 축일 6월 6일. 주교. 프레몽트레회 창립자. 독일 쾰른 부근의 산텐(Xanten)에서 태어나 마그데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친은 게네프(Gennep)의 영주였다. 노르베르토는 쾰른의 대주교 및 하인리히 5세의 궁정에 근무한 후 사제로 서품되었다. 1115년 벼락을 맞고 낙마(落馬)한 것을 계기로 3년간 다락방에 틀어박혀서 회개의 고행을 하였다. 1119년 벨기에의 생질(Saint Gilles)에서 교황 젤라시오 2세를 알현, 모든 교회에서의 설교를 허락받고, 북부 프랑스, 에이노(Hainault, 현 벨기에령), 브라반트(Brabant, 현 네덜란드령) 등지를 설교 여행하였다. 1121년 교황 갈리스도 2세의 제언과 랑(Loan)의 수도원장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의 원조로 프레몽트의 계곡에 수도원을 건설, 성 아우구스티노의 회칙을 본받는 수도회 프레몽트레회를 발족시켰다. 그로부터 수년 내에 유럽대륙에 수많은 프레몽트레회 수도원이 건립되었고, 1125년 교황 호노리오 2세의 정식인가가 내려졌다. 1126년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되어 여생을 마쳤다. 그는 성체(聖體)에 대해 열렬한 신심을 가진 사도였다. 유해는 마그데부르크의 프레몽트회 성당에 안치되었고, 1582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1627년 유해가 프라하 부근의 스트라호프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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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렌조 [관련] 라우렌시오

⇒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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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헌장 [한] 勞動憲章 [라] Rerum novarum

1891년 5월 15일에 공포된 레오 13세의 교황회칙으로, 사회문제를 다룬 최초의 교황 회칙이기도 하다. <노동헌장>은 당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가톨릭 사회운동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였고, 사회주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는 한편 고용자와 노동자가 상호원조 및 자기방어를 위하여 조합을 갖도록 권장하였다. 지글리아라(Francesco Zigliara) 추기경이 초고(草稿)를 쓰고, 교황 자신이 최종적으로 수정한 <노동헌장>은 사회문제, 특히 노동문제에 대한 가톨릭 원칙을 공식화하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노동헌장>은 당시 활발히 전개되던 프리부르(Fribourg)조합의 활동, 미국의 기번스(J. Gibbons) 추기경, 영국의 매닝(H.E. Manning), 더블린의 월시(W.J. Walsh) 대주교 등이 제시한 농업과 노동문제에 대한 저술에서 영향을 받아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건에 관하여’(De conditione opificum)라는 부제(副題)를 달고 있는 <노동헌장>은 다섯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첫 부분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즉 교회는 사회주의적인 해결방법을 거부하고 사유 재산권을 자연권으로 인정하는 고전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둘째 부분은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을 개괄적으로 기술하면서 교회의 노력 없이는 어떠한 해결책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교회의 사회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즉 교회는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며, 가난은 선(善)이 아니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교회는 자선과 정의의 실현을 통하여 가난을 구제해야 한다고 하였다. 네 번째 부분은 사회문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요약하고 있다. 여기서 <노동헌장>은 자유방임주의적 국가관을 배격하면서, 국가는 재화가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헌장>은 노동조합이나 교회의 여러 법인체와 같은 자발적인 조직의 자선활동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헌장>은 교회 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31년 비오 11세는 <노동헌장> 반포 40주년을 기념하여 <사회재건 대헌장>(Quadragesimo Anno)를 발표하였고, 그 뒤를 이어 요한 23세는 1961년에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3년에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바오로 6세는 1967년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Populorum Progressio)를 각각 발표하였고, 1971년 <노동헌장> 반포 80주년을 기념하여 <80주년 기념회칙>(Octogesima Adveniens)을 발표하였다.

[참고문헌] L. Watt, A Handbook to Rerum Novarum, Oxford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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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한] 勞動組合 [영] trade union [독] Gewerkschaft [관련] 노동권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노동조건, 나아가서 생활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위해 조직한 자주적이고 계속적인 단체를 말한다. 노동조합은 임금, 노동시간, 작업환경 등 노동조건의 안정과 개선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사회 · 경제 · 문화 · 정치적 지위향상을 위하여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정치적 활동까지 담당하게 된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1824년 영국에서 탄생, 공인되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본가와 정부권력은 노동자의 단체활동을 단체금지법으로 금지하고, 노동운동가들을 공모죄와 반란죄의 명목으로 처단하였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노동자의 의식이 발전하고, 또한 하나의 작업장에 많은 노동자가 모이게 되어 사용자와의 계약에 있어서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나타난 것이 직업별 노동조합(craft union)이다. 19세기말 제2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종래 숙련공위주의 폐쇄적인 노동조합은 급격히 증가하는 반숙련공, 잡노동 제공자, 보조노동제공자의 등장에 따라 더 넓은 조직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새로이 산업별 조합(industrial union)이 탄생한다. 직업별 조합과 산업별 조합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 잡역 노동자들이 결집하여 나타난 것이 일반조합(general union)이다.

노동조합의 기본임무는, 조합원의 고용안정과 노동조건의 개선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수단(도구)을 소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유일한 소유물인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노동자는 일반적으로 시장지식에 어두운 데다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에게 팔아 생활재료를 구입할 화폐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게 된다. 또한 광범하게 존재하는 실업(失業)은 노동자 사이에 노동력 판매경쟁을 유발시키고 이에 따라 임금은 형편없이 인하된다. 노동력이란 원래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판매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판매되지 않는 노동력이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 또한 노동력 판매자인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건의 하나다. 이런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의 판매자인 노동자는, 노동력의 구매자인 사용자와 대등한 입장에서 거래하는 당사자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노동자들의 자각이 일반화하면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개별적으로 고립, 분산된 형태로 사용자와 거래를 할 것이 아니라,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거래함으로써 자신들의 지위를 개선시켜 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비로소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 노동조합이 노동자사이에 노동력 판매경쟁을 피하게 하고, 사용자에게 제시한 노동조건을 사용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조합원들에게 노동력 제공을 거부케 함으로써 조합의 요구를 관철시켜 나간다. 여기에 대해 사용자측은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하거나 연성화(軟性化)하려 한다. 이에 따른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투쟁은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사를 노동자의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은 일제시대에 태동하게 된다. 당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 고유의 기능뿐만 아니라 민족해방의 과제까지 떠맡아 투쟁하였기 때문에 더욱 가혹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노동조합은 활성화되는 듯했지만 제1 공화국 초기의 극단적인 좌우대립, 6.25동란 등을 경과하는 사이에 노동운동은 탄압을 받게 되고 노동조합도 침체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뒤 5.16 이후에도 근대화의 미명 아래 노동조합의 활동은 극히 제한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모순을 반영하여 1970년대부터 노동운동은 치열한 국면을 맞게 되고 마침내 극한의 탄압과 저항의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노동조합의 진정한 활동을 추구하는 노동운동가는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히거나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무권리 상태에 내던져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게 되고, 궁핍은 가속화한다.

노동은 “하느님께서 자신이 시작한 창조사업을 완성할 수단과 방법으로서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과정을 통해 사회는 완전한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고 교황 바오로 6세는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에서 밝히고 있다. 한편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어머니와 교사>를 통해 “노동자들이 합법적인 경제적 직업적 이익을 달성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기구를 조직할 권리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조직 내부에서 자치적으로 활동할 권리”가 자연적임을 선언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현대세계의 사목헌장>(1968)을 통하여 “노동조합을 진실로 대표하며 경제 질서를 올바로 수립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조직할 권리와 아무런 보복 없이 조합 활동에 참여할 권리는 기본인권”이라고 선언하였다. (⇒) 노동권

[참고문헌] 조용범 외, 한국노동문제의 구조, 1979 / 한국노동 문제연구원, 한국노동조합운동사, 1979 / 사목헌장, 제2부 제3장 /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촉진에 관한 회칙, 제1부 제3장 / 오경환, 천주교와 노동운동, 사목 48호,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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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사목 [한] 勞動者司牧 [영] Pastoral for the labour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막대한 재산이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대다수 노동자계급은 점차 더욱 심한 빈곤 속에 허덕이게 된다. 임금은 최저생계비도 못 미칠 경우가 허다하며, 노동조건은 강압적이다.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비인도적 노동이 자행되며, 실업의 유령이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궁핍한 생활에 비해 극소수 특권층의 사치와 향락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비인도적인 착취와 수탈이 강압적으로 시행된다”<어머니와 교사>

요한 23세의 이러한 언급처럼, 인간의 창조적 행위인 노동이 극소수의 억압과 비인도적 대우 속에서 노예의 도구로 타락하여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비인간적인 노예로 전락한 노동자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고, 정의가 관철되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교회의 활동이 노동자 사목이다. 노동자 사목의 역할은, 인간성이 말살당하고, 인간의 개성과 참다운 본능의 충족이 무시당한 채 희망의 가지가 잘린 노동자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전하여, 노동자들로 하여금 노동의 가치와 인간적인 삶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준다는 데 있다.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은 1891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발표된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회칙은 “사회와 경제의 변화에 따라 노동문제가 절실한 사회문제임에 주목, 교회는 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1925년 가톨릭 노동청년회(Jeunesse Ouvriere Chretienne = J.O.C)의 발족으로 구체화 되었다. J.O.C.는 카르딘(Joseph Cardijin)추기경이 남녀 청년 노동자들을 규합하여 세포조직체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벨기에의 브뤼셀에 총본부를 둔 이 운동은 4개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 J.O.C.는 1958년 11월 카르딘 주교의 참석 하에 가톨릭대학 박성종(朴成鍾, 프란치스코) 신부를 지도신부로 하여 발족됐다. 이들 J.O.C.는 공장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되고, 조직된 회원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의식화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한편 교황 비오 11세는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를 발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을 재확인, 부연하였다. 노동자 사목의 주된 관심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적인 삶의 개선에 있다. 왜냐하면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물질적 가치로 전락하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가 통용되는 한, 하느님 나라의 건설은 요원하다는 논리의 귀결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사목은 노동자들에게 상존하는 빈곤을 해결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동자들이 받는 불의와 억압의 상태에 동참한다. 그들의 삶 속에서 더불어 같이 살며, 부대낀다. 취업, 임금, 노동조건, 노동환경, 산업재해, 노동자단결 등에 대한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파업 등의 행동에 실제로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물려받은 정의와 사랑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노동자 사목이 정부당국이나 지배계급들로부터 좌경, 또는 용공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올바른 노동자 사목이 이뤄지면 지배계급이 지금까지 은폐하기에 급급하던 온갖 부정과 부패가 폭로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어서 노동자 사목의 성과는 매우 컸다. 1967년 강화도 J.O.C.사건에서 한국 교회는 노동자의 권익옹호에 앞장섰고, 1978년 인천 동일방직 사건에서도 한국 천주교는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행동하였다. 이밖에도 J.O.C.의 활동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사목의 중요성이 이렇게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사목을 전담하는 성직자와 수도자가 적다는 것은 200년을 맞는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참고문헌] 레오 13세, Rerum Novarum, 1891 / 비오 11세, Quadragesimo Anno, 1931 / 사목헌장, 제 2부 제 3장 / 기타 교회의 노동사목에 대한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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