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한] 爛抄

조선 23대 임금 순조(純祖)시대의 사건 기록. 저자는 철종(哲宗) 때 이조판서를 지낸 윤치희(尹致羲, 1797~1866). 모두 24권(卷) 23책(冊)으로 구성되어 있고, 1800년 7월 순조 즉위 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垂簾聽政)에서 1834년 11월 순조 승하까지의 순조 재위기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중앙과 지방관서의 계(啓), 계사(啓辭), 그리고 상소(上疏), 통문(通文), 전언(傳言) 등을 약술하여 사건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주로 정사(政事)에 관한 것이며 천주교 관계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기록된 천주교 관계 사건은 1801년 신유(辛酉)박해, 1815년 을해(乙亥)박해, 1827년 정해(丁亥)박해 등에 관한 것으로서, 척사자(斥邪者)인 목만중(睦萬中)과 홍의호(洪義浩)의 상소, 정순 왕후의 척사윤음(斥邪綸音) 반포, 1815년 경상도 지역에서의 천주교인 처형을 기록한 경상감사 이존수(李存秀)의 계(啓) 등이 약술 되어 있고 이 밖에도 천주교와 관계있는 많은 계, 계사, 상소 등이 약술되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낙태 [한] 落胎 [라] abortus [영] abortion [관련] 임신중절

낙태는 외부의 간섭에 의해서 일어날 경우(abortus provocatus)와 외부로부터의 간섭이 없이 자연적으로 일어난 경우(abortus spontaneus)의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문제는 아직 생존능력이 없는 미숙한 태아의 살해라는 점에 있으며, 위의 두 가지 중 앞의 것에 두드러진 문제점이 따르게 마련이다. 범죄로서의 낙태와 의학적인 임신중절과의 구별은 긴급할 때 어머니를 구하기 위한 수술이 무죄로 인정되고 있는 이상, 단순한 형법상의 의의를 갖고 있을 뿐이다. 도덕상으로는 이와 같은 구별은 정상이 무겁다거나 가볍다는 차이밖엔 없는 것이며, 이런 행위가 도덕상 용납될 수 없다는 점에선 변함이 없다.

점점 세속화되어 가는 문화 속에서 개인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윤리적인 결정들 중, 이 낙태문제만큼 기본원리들을 적용하는 데 있어 커다란 복잡성이 뒤따라 얽히는 문제는 없다. 우리가 낙태문제에 대하여 내린 결단은 그 선택이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인구과잉 및 임박한 식량부족, 그리고 어린이를 부담시하는 잘못된 결혼관 등과 같이 우리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예측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성서적인 지침에 나타난 기본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들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성서에 비추어 보면, 자궁 속에 있는 생명은 반드시 인격적 존재의 견지에서 생각되어져야 하며, 법에 있어서는 어머니나 또는 그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아이, 혹은 양쪽 모두 다치게 하였을 경우에 적용되도록 만들어져 있다(출애 21:22-24). 태아의 생명은 하느님 앞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 것이다. 하느님은 다른 모든 인간들처럼 그러한 태아의 생명도 영생을 얻도록 하셨다(시편 139:16, 1디모 2:4).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요, 인간은 영생을 위해 창조되었다. 생명은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창조주와 영구적인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며, 창조주의 뜻은 그의 창조물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영원히 그의 면전에서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의지에 불복하여 왜곡시키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인간생명의 시초를 자기 마음대로 단축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임신기간 동안, 태아의 생명이 어머니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두 존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따르게 되는데, 이 때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한 명의 발육된 인간으로서의 이미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생명을 구해야만 한다는 데 있다. 어머니의 생명이 태아의 생명보다 우월하다고 보는 그런 상황에서 행해지는 낙태는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취해지는, 간접적이고 불행한 결과이다. 이러한 경우에 적용돼 왔던, 두 가지 죄악 중에서 덜한 편을 택한다는 윤리적 원리는 의학적 징후의 완전한 극복, 즉 태아 쪽도 살릴 수 있다는 치료의 모든 가능성이 찾아질 때 자동적으로 폐기될 것이다.

우리가 낙태문제에 대해 적절한 결단을 내리는 데 있어 중요시해야 할 요인으로서는 성취에 대한 문제도 있다. 인간 생명은 성취를 위해 창조되었다. 하지만 보다 완숙한 생의 성취는 자기중심적 쾌락을 바라는 욕구 혹은 편익에 대한 관심이나 안락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아이가 재정적인 압박을 초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가능성 자체만으로는 태아의 생명을 유산시키고자 하는 데 대한 만족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사회적인 궁핍은 사회위생, 사회보장, 사회정책 등의 수단을 통해 극복되어져야 할 일이지, 결코 태아의 살해로써 극복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낙태를 포함한 모든 형식의 피임은 단순히 사회적 궁핍을 확대하며 그것을 영속화시킬 따름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회적인 징후로서의 낙태문제를 볼 때는 순수한 ‘살인허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생명과 죽음은 하느님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다(필립 1:21-24).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결정으로 인간생명을 종식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때로는 명예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을 때, 어머니가 자살할 위험성이 있을 때, 혹은 폭행, 능욕, 근친상간, 종족능욕 등의 범죄행위의 결과로 임신했을 때, 윤리적인 근거에서 영아 살해의 권리가 요구되어져 온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덕파괴에서 빚어진 결과를 다시 도덕률(道德律)의 새로운 파괴로써 제거하려고 한다면, 이는 윤리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 데서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피임문제를 토의할 때 ‘자연법’의 이론을 인용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수백년 동안 가톨릭 윤리신학자들은, 현대 윤리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연법 학설을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현대에 와서 교회가 특수 윤리문제에 있어 엄밀한 의미상의 자연법 학설을 적용한 유일한 분야는 예컨대, 피임, 단종, 수음, 이식 등 혼인문제와 의학윤리의 분야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인 <현대세계의 사목현장>에 따르면, 교회로서는 생명 전달에 관한 하느님의 법과 진정한 부부애를 보장하는 하느님의 법 사이에 참된 모순이 있을 수 없음을 일깨워 주면서, “낙태와 유아살해는 가증할 죄악”이라고 언급한 뒤, “교회의 자녀들은 산아조절에 있어서 하느님의 법을 해석하는 교권(敎權)이 금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과 생명전달의 임무는 현세에만 국한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현세의 관점에서만 평가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인간의 영원한 목적과 관련시켜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 임신중절

[참고문헌] John T. Noonan, Jr., Contraception: A History of its Treatment by the Catholic Theologians and Canonists, Cambridge, Mass. 1965 / DCE 1=Car1 F. Henry, Baker’s Dictionary of Christian Ethics, Canon Press, 1973 / 兪鳳俊, 倫理神學에 있어서 自然法의 位置, 가톨릭 大學論文集, 第3輯, 가톨릭大學神學部, 1977 / 사목헌장, 제2부 제1장 / 교황 바오로 6세, 산아조절에 관한 회칙, 1968.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낙원 [한] 樂園 [영] paradise [그] paradeisos [관련] 천국

천국과 동의어. 폐쇄된 공원 혹은 유원지를 암시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pairidaeza’에서 유래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에서는 위의 의미로 세 번이나 사용되었다(느헤 2:8, 전도 2:5, 아가 4:13). 70인역 구약성서는 에덴 동산을 가리키는 말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 후기 유대문학에서 낙원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랍비문학에서 많이 보인다), 정신적인 것이든 축복받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쓰이게 되었으며, 신약성서에서도 정신적인 의미로 세 번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낙원’은 루가복음서 23:43에서 처음 나오는데,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회심한 우도(右盜)에게 낙원에 대한 약속을 한다. 또한 묵시록 2:7에는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라는 언급이 나오며, 바울로는 고린토 후서 12:4에서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간 그리스도 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중세문학, 특히 후기에서 이에 대한 많은 고찰이 엿보인다. 근대에 있어서 낙원은 흔히 미래의 축복 상태를 암시한다. (⇒) 천국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낙산본당 [한] 洛山本堂

왜관대리구(倭館代理區) 소속 본당. 주보는 성녀 안나. 소재지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 낙산동(慶北 漆谷郡 倭館邑 落山洞 764)이다. 1894년 기와집 한 채를 사서 본당을 설치하고 파이아스(Pailhasse, 河敬朝)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895년에 전임되었다. 1913년 5대(1911~1944년) 투르뇌(Tourneux, 呂東宣) 신부 재임시에 구성당이 준공되었고, 1923년 벽돌양옥 성당 및 사제관 신축에 착공, 1924년에 준공, 그해 9월에 축성식이 거행되었다. 1928년 6월 투르뇌 신부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 행사가 있었다. 이해부터 1년간 투르뇌 신부는 신설된 왜관본당 주임을 겸임하였다. 1954년 12월 본당 창설 60주년 기념 기념식을 거행, 1955년 6월 성체거동 행사가 있었다. 현재 본당 관할구역은 왜관읍 일부, 달성군(達成郡)의 하빈면(河濱面)과 다산면(茶山面)이며, 공소는 하빈면의 하산(霞山) 공소, 다사면의 다사공소, 다산면의 논실[蘆谷洞] 공소의 3개소이다. 현 19대 송만협(요셉) 신부는 앞서 1960년부터 1964년까지 15대 주임신부로 재직한 바 있었다. 신자수는 719명(1984년 현재), 공소는 3개소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나훔서 [영] Book of Nahum [한] ~書 [라] Prophetia Nahum

1. 인물 : 엘코시(Elkosh) 출신의 예언자 나훔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길은 그가 남긴 조그마한 예언서밖에 없다. 그나마 이 예언서까지 숱한 주석상의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주석가들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추정은. 그가 유대 출신의 예언자라는 사실 뿐이다. 왜냐하면 예언자가 유다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동시에 유다에 구원을 선포하고 외적의 공략이 없으리라는 보장(2:1)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M. Delcor.). 그리고 1:2-8에 있는 시편으로 인해 나훔이 ‘성전(聖殿) 예언자’(un prophete culturel)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나훔이 성전의 제 의식(儀式)과 활동에 정통한 예언자로서 성전 주변에 머무르며 자기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2. 나훔서의 구조 : 나훔서는 알파벳 순서에 따른 시편(1:2-8)으로 시작되며, 이어 유다에게 구원을 선포하는 언사(言辭, 1:12.13, 2:1-3)와 니느웨(Nineveh)를 위협하는 언사(1:11)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편에서는 성서에서 잔인하고 호전적인 민족으로 이름난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의 함락에 대해 단도직입적인 말을 하고 있다(2:4-3:19)[R. Weiss, A Comparison between the Masoretic and the Qumran Texts of Nahum 3:1-11, R.Q., 1963, pp.433~439], 한편 1:9-2:3절 사이의 단락은 니느웨가 멸망되기 직전에 쓰여진 것 같다. 물론 몇몇 구절(2:1, 3:8.19)이 니느웨의 함락을 기정사실인 듯 전제하고 있지만, 이는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이미 실현된 듯이 표현하는 ‘역사적 현재’의 기술방법 때문이다[Van Wyck, Allusions to Prehistory and History in the Book of Nahum, Melanges van Sehms, Leiden 1971, pp.222~232]. 이 귀절에서는 하느님 야훼께서 역사를 다스리는 주인(2:14)이라는 사실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다. 그리고 의로운 이는 비극적인 순간에서도(1:12) 구원을 상징하는 하느님의 ‘포도밭’(2:3)으로 인도되나, 불경한 이들이 범한 죄악은 엄청난 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3:1. 4-6).

3. 메시지 : 나훔서는 주님의 분노를 알리는 알파벳 순서의 ‘시편 – 예언자의 반성 – 역사적 사건의 회고’ 라는 도식으로 짜여져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 중, 이 찬미의 노래를 부름으로써 야훼의 지상 통치권을 찬양하였다. 비록 나훔서의 서두에 나오는 이 시편이 예언자 나훔의 생존 당시보다 훨씬 후대에 작시(作詩)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지만, 아직 확증할 방도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훔이 직접 이 시편을 작시했거나, 아니면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노래를 인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찬양시를 봉독하며 우주를 지배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찬미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를 주제하는 하느님의 정열과 그분의 선하심과 권능에 대한 신앙을 견고케 할 수가 있었다. 이에 이스라엘 살들은 하느님이 가지 나라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를 괴롭히는 이방민족까지 지배한다고 믿고 있었다.

신앙고백과 찬미로 시작하는 이 예언자의 반성은 그가 선포한 메시지를 역사적 현실을 들어 예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하느님은 원수를 응징하는 하느님이요 외로운 이들에게 구원을 베푸나 불경한 이들에게는 벌을 내리는 하느님이다. 물론 여기서 의인(義人)이란 이스라엘 백성이고 악인이란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아시리아인이다. 예언자는 기도문으로 사용된 이 예언서에 풍부한 비유적 표현을 통해 죄악의 도성(都城) 니느웨가 멸망하리라 예고하였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도 전례 때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니느웨의 함락을 목적의 현실처럼 절감하고, 오랜 시일 동안 신앙과 희망을 고취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훔서의 저자는 의(義)와 불의(不義)에 대해서 정열적으로 작품을 썼다[De Vries, The Acrostic of Nahum in the Jerusalem Liturgy, VT, 1966, pp.476~481(A. Bentzen, Introduction to the O.T., Copenhagen 1953 참조)].

나훔서의 메시지는 한 마디로 역사 안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을 찬양하자는 외침이다. 예언자가 전례나 설교에서 역사의 하느님을 상기시키는 의도는 현재 생황의 의미를 깨닫고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목표가 어디 있는지 밝히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정자의 전갈에서 중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나 모든 인류의 ‘절대 미래’는 바로 하느님이라는 사실이다. (徐仁錫)

[참고문헌] P. Humbert, Essai d’analyse de Nahum 1:2-2:4, ZAW 1926; Le probleme de livre de Nahum, RHPR, 1933 / J. Leclercq, Nahum, in: Etudes sur les prophetes d’Israel, Paris 1954 pp.85~110 / A. George, Nahum, SDB, VI, Col. 291~301, Paris 1958.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