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촌 [한] 癩患者村 [영] leper colonies [관련] 구라사업

나병은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불치의 전염병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1947년 설파제의 발견과 그 발달로 인해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해졌고 1950년 이후에는 불치의 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 나병에 대한 인식은 신 · 구약을 전기(轉期)로 하여 변화하였다. 구약시대에는 나병을 죄가 형상화된 것으로 보거나 사탄이 들린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나환자가 발생하면 일단 사제가 규범에 따라 나병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고, 만약 나병이면 그를 ‘부정한 자’ 라고 선언한다. ‘부정한 자’로 선고받은 사람은 진영(陣營)이나, 촌락에서 내쫓겨 그 외곽에서 살아야 하고, 그 사람은 머리를 산발하고 의복의 가슴팍 부근을 찢고 다니면서 거리를 다닐 때에는 ‘부정한 자’ 라고 소리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 이들과 교제하는 것도 금지된다(fp위 13:1-14:57, 민수 5:2, 애가 4:15, 욥기 2:7).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나환자의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인 소외에 깊은 연민과 자비심 및 사랑을 가지고 이들을 치유하였다(마태 8:1-4, 마르 1:40-45, 루가 5:12-16). 그리고 열두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면서 “나병환자를 깨끗이 고쳐주어라”(마태 10:5-8, 마르 6:7-13, 루가 9:1-6)고 분명하게 지시하셨다. 그 후 가톨릭 교회는 나환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다. 1978년 말 전세계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의료시설 중 나환자촌은 537개소에 이른다.

한국 천주교회의 구라사업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다. 1945년 이후 평양교구장인 캐롤(George Carroll, 安, 메리놀회 한국지부장) 주교는 서울 근교에서 떠돌아다니는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 및 의료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48년 현재 성 나자로마을이 있는 자리에 있던 세브란스병원 부속 결핵요양소를 사들여 성 나자로 요양원을 설립하였다. 1955년에는 오랫동안 중국본토에서 구라사업을 해 오던 미국 메리놀회 소속 스위니(Sweeny, 徐) 신부가 한국에 진출하여 진료를 시작하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 1980년 10월 31일 현재에는 전국 98개 나환자 정착촌 중에 49개소가 가톨릭 교회의 구라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 중 25개소는 가톨릭 교회가 직접 설립, 운영하고 있다. 각 교구별 나환자촌은 춘천교구 1개소, 대전교구 1개소, 수원교구 2개소, 부산교구 3개소, 마산교구 1개소 안동교구 6개소, 광주교구 2개소, 전주교구 9개소 등이다. 이들 각 정착촌에 살고 있는 나환자들을 1만 9,916명이다. (⇒) 구라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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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사전 [한] 羅韓辭典 [관련] 나선사전

⇒ 《나선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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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본당 [한] 羅州本堂

전라남도의 주읍(主邑)으로 옛날부터 번창하여 왔으며 이 고장에 나주본당 설립 준비기라고 볼 수 있는 병인(丙寅)박해 때 포교에 의해 나주읍에 압송 또는 체포되어 순교한 강영원(姜, 바오로), 유치성(柳致成, 안드레아), 유문보(교명미상) 등 3명의 순혈(殉血)로써 가톨릭과의 접촉이 비롯된다. 이리하여 1933년 5월 당시 나주 십팔은행(十八銀行) 지점장인 임탁일(마태오)의 부인 이(李)루시아가 시장에서 삼종기도를 바치는 양천본당(良川本堂) 복사 이응범(李, 아오스딩)과 만나 이곳에 임시공소를 만들고, 양천본당 박재수(朴在秀, 요한) 신부에게 첫 인사를 드렸다. 1934년 7월 박신부는 대지 3,000평을 매입, 임시성당(건평 50평)과 사제관을 준공하여 1935년 5월 본당 승격을 보았다. 이것이 현재 나주본당이 자리 잡고 있는 전남 금성시 산정동 18번지이다. 당시 교세는 신자수 234명, 공소수는 5개소였다. 1937년에 광주지목구로 승격되어 오늘에 광주 대교구 관하에 있다. 나주본당의 역대 주임신부는, 1대(1935~1942년) 헨리(Harold Henry, 玄, 그후 광주교구 대주교) 신부를 비롯, 2대 (1942. 9~1942. 11) 오기순(吳基順, 알벨도), 3대(1942. 12~1943. 11) 김루수, 4대(1944~1945년) 김양홍(金洋洪, 스테파노), 5대(1945~1949년) 박문규(朴文圭, 미카엘), 6대(1949~1951) 우드(Franciscus Wood), 7대(1952~1953년) 로한(Patrick Lohan), 8대(1953~1954년) 장옥석(張玉石, 루치오), 9대(1954~1964년)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10대(1964~1969년) 김병준(金丙準, 요한), 11대(1969. 4~1969. 11) 장옥석(張玉石, 루치오), 12대(1969~1973년) 김충호(金忠鎬, 미카엘), 13대(1973~1976년) 조철현(曺喆鉉, 비오), 14대(1976~1980년) 김희배(金喜培, 요한), 15대(1980~1981년) 고재영(高在榮, 야고버), 16대(1981~현재) 이성규(李成揆, 라파엘) 신부로 이어지고 있다.

초대 헨리 신부 때인 1937년 10월에는 당시 성당을 80평으로 늘려 로사리오 성모를 주보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고, 그 뒤에 와서 대지 총 면적이 5,000평으로 늘어났으며 성당도 40평이 더 증축되어 120평이 되었다. 그동안 함평, 영산포, 남평 등 소속 공소가 모두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9대 김창현 신부가 1961년 5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기도 하였다. 나주본당의 1984년 6월 현재 신자수는 2,777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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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원] Nigeria

서 아프리카의 연방국가. 면적 92만 3,768㎢에 인구 약 8,239만명(1982년 추계)이며, 기니아만, 디오메, 니제르, 차드, 카메룬과 접경하고 있다. 15세기에 포루투갈인들이 해안 지방에 그리스도교를 포교하였으며, 19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이 있었다. 1950년에 교계제도가 설정되었으며, 1964년 현재 3개의 대교구, 15교구 4개의 지목구가 있다. 가톨릭 신자는 약 589만명(1982년 현재)이며, 가톨릭 학교, 병원 등을 운영하며, 가톨릭계 주간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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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소자전 [한] 羅鮮小字典 [라] Parvum Vocabularium Latino-Coreanum

최초의 나한자전(羅韓字典). 1891년 홍콩의 파리외방전교회 나자렛인쇄소에서 한국 신학생들을 위해(Ad usum studiosae juventutis Coreanae) 간행하였다. 저자는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로 전해지지만 그를 이 소사전의 유일한 저자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병인박해(1866년)에서 살아남은 리델(Ridel, 李福明) 주교와 2명의 신부들이 그들의 선임자인 순교자들이 일한 것을 부분적으로 다시 살려 《한불자전》(韓佛字典)과 ≪한어문전≫(漢語文典)을 1880~1881년에 간행한 것처럼, 《나한소자전》도 박해로 순교한 다블뤼, 푸르티에(Pourthie, 申),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 등이 편찬했던 《나한자전》을 살아남은 선교사들이 부분적으로 다시 만들어 홍콩에서 간행하게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사전에는 약 1만여 개의 단어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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