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빈 [한] 金漢彬

김한빈(1764~1801).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충청남도 보령(保寧)에서 태어났다. 1800년 9월(음) 상경하여 정약종(丁若鍾)의 집에서 행랑살이를 하면서 정약종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이 해 6월(음) 체포되었으나 탈출한 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박해에 관한 상황을 수집하여 제천 배론[舟論]에 숨어 있는 황사영(黃嗣永)에게 보고, 백서(帛書)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1801년 11월 6일(음 9월 29일) 배론에서 황사영과 함께 체포되어 11월 29일(음 10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황심(黃沁)과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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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현 [한] 金泌現

김필현(1910~?).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 루도비코. 1910년 3월 평남 평양시 관후리(舘後里)에서 부(父) 김성호(金聲鎬)와 모(母) 기씨(奇氏) 사이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 관후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 乙組)에 진학, 소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당시 평양교구장 모리스(Morris, 睦) 주교의 추천으로 박용옥(朴瓏玉)과 함께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 유학, 1939년 3월 18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박용옥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동년 10월 24일 귀국, 평양 대신리(大新里)본당 보좌신부로 첫 사제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41년 12월 일제(日帝)에 의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남과 동시에 평양교구 소속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체포될 때 함께 체포되어 3개월간의 옥고(獄苦)를 치르고 풀려나 3년 동안 대신리 본당의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1944년 4월 평양교구 부주교 겸 관후리 주교좌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었다. 광복 후 일제에 의해 징발되었던 관후리성당을 되찾게 되자 성당신축을 책임맡고 공사를 총지휘하였고, 1948년 북한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더욱 더 가중되어 원산교구장 사우어(Sauer, 辛) 주교, 평양교구장 홍용호(洪龍浩) 주교가 체포되어 행방불명된 상태에서, 1949년 6월 10일 교구 경리부장 겸 주교비서 최항준(崔恒俊) 신부, 대성당 기성회 이사(理事) 강유선(姜有善)과 함께 북한 정치보위부원에게 연행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그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순교(殉敎)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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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헌 [한] 金風憲

김풍헌(?~1801). 세례명 토마스. 중인(中人) 출신으로 충청남도 청양(靑陽)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았다. 강직한 성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풍헌(風憲)[조선시대에 面이나 里의 일을 맡아하는 사람. 오늘날의 面長과 里長에 해당됨]을 하였고, 천주교인이 된 후에도 계속 이 일을 맡아보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796년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집행 3일전에 청양현감이 파면되어 그로 인해 석방되었다. 그후 고향을 떠나 부여(夫餘), 금산(錦山), 고산(高山) 등지를 떠돌며 극기의 생활을 하는 한편 교우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러던 중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산속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자수하려 했으나 가족들의 만류로 포기, 이 해 7월(음) 전라북도 용담(龍潭)에서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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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본당 [한] 金浦本堂

걸포리(傑浦里) 공소에서 출발한 이 본당은 8.15광복 후 교세가 발전함에 따라 1948년 겨울,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1949년 걸포리 본당에서 김포본당으로 개칭(改稱)된 후, 1962년 8월 8일 서울교구로부터 인천교구가 분할설정을 보게 됨으로써 인천교구의 관할이 되었다. 경기도 김포군 김포읍 복변리 259번지에 자리 잡은 이 본당은 그 뒤에도 꾸준한 발전으로 1965년 8월 5일 통진교회가 설립되어 김포본당에서 분할되어 갔다. 1983년 1월 1일 현재로 고촌, 계양, 상아리, 고창, 불노리, 금곡, 오류리 7개 공소를 거느리던 이 본당은, 지금은 금곡, 오류리 공소를 인천 석남동 본당의 관할로 분리시키고 5개 공소만 관할하고 있다. 주보로 매괴의 성모를 모시는 이 본당의 1984년 신자수는 3,363명이다.

이 본당의 초대 주임은 김병호(金炳昊, 베네딕토) 신부였으며, 2대는 김피득(金彼得, 베드로), 3대 신원식(루가), 4대 브랜스필드(Bransfield), 5대 다비스(Davis, 黃), 6대 켈러(Kelleher, 桂), 7대 에건(Egan, 都), 8대 김병상(金秉相, 필립보), 9대 박성규(朴成圭, 분도), 10대 최기산(崔基山, 보니파시오), 현재는 조성교(趙誠敎, 요한 금구) 신부가 주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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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한] 金太權

김태권(?~1839).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전주(全州) 출신. 그가 체포당한 장소와 경위는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1826년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전주, 대구 등 감옥에서 13년간이나 옥고를 치렀다. 그동안의 고통은 이루 형언키 어려웠으나 그의 신앙은 더욱 굳어져 오직 순교의 영광만을 기다리며 함께 신자들을 격려하고 위안하는 데 진력하였다. 1839년 5월 26일 드디어 사형이 집행되어 그는 함께 갇힌 5명과 같이 순교하였는데, 당시의 형조판서(刑曹判書)는 이들 무고한 사람을 죽인 죄책감 때문에 사임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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