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득 [한] 金丁得

김정득(?~1801). 신유(辛酉)박해 때의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충청도 공주(公州) 출신. 내포(內浦)의 사도 이존창(李存昌)에 의해 천주교에 입교하여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공주 무성산으로 피신하여 성물, 성서 등을 감추었으나 밀고자에 의해 거처가 알려져 잡혀서 홍주(洪州) 감옥으로 압송되었다. 그 곳에서 다시 청주(淸州)로 이송되어 여러 달 혹형을 받았으나 끝내 배교치 않으므로 다시 서울로 이송되어 1801년 8월 25일(음 7월 17일) 대흥(大興)고을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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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한] 金在德

김재덕(1920~1988). 주교. 제5대 전주(全州)교구장.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 24번지에서 출생. 1935년 3월 전북 진안 마령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를 거쳐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祖)[소신학교, 성신중 · 고교의 전신]에 진학, 1941년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졸업했고, 이어 성 유스티노 대신학교와 덕원 성 분도 대신학교를 거쳐 1947년 10월 28일 성신대학(聖神大學, 가톨릭大學의 전신)을 졸업함과 동시에 전주교구의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전주 대동본당 · 전북 화산본당 · 김제본당 · 군산본당 · 전주 중앙본당 등의 주임신부를 역임하고 1961년 전주교구 부주교로 임명되어 이듬해 당시 전주교구장 한공렬(韓공烈) 주교의 수행원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했고, 1996년 전북 이리본당 주임신부, 1969년 전주 전동본당 주임신부, 1972년 전주교구 부교구장 겸 상서국장을 거쳐 1973년 2월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해 3월 19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다. 그 후 주교회의 상임위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총재를 역임하는 한편 1975년 제2차 극동주교회의에 참석하고, 1978년과 1980년 2차에 걸쳐 로마교황청을 방문하고 유럽을 순방하였다. 1981년 4월 10일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은퇴하여 현재 전주시내에 머무르고 있다.

[참고 : 김재덕 주교는 1988년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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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복 [한] 金長福

김장복(1797~1815).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1801년 아버지 김흥금(金興金)과 함께 충청도 연풍(延豊)에서 입교했고 입교 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아버지를 따라 경상북도 진보(眞寶)로 피신해 살았다. 1815년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아버지를 비롯한 30여명의 마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진영에서의 혹형과 고문을 이겨냈으나 대구감영으로 이송된 후 그곳에서의 형벌과 굶주림으로 이해 10월(음) 아버지와 함께 옥사(獄死)하였다. 동생 작단(作丹)은 배교하고 석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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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금 [한] 金長金

김장금(1789~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안나. 서울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고, 중년에 과부가 된 뒤로는 친정 노모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수계했는데, 이웃에 사는 이광렬(李光烈)의 가족과 매우 화목하게 지내 그 평판이 교우들 사이에 널리 퍼졌었다. 1839년 4월 7일 이광렬 일가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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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이 [한] 金任伊

김임이(1811~1846).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데레사. 서울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나 7세 때 수정(守貞)을 결심하고 그 뒤 오직 신앙생활에만 전념하였다. 20세 때 부친이 사망하자 오빠 베드로와 함께 친척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고, 1839년 기해(己亥)박해 후에는 이문우(李文祐)의 양모 오 바르바라의 집에서 살았으며, 1845년부터는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처소를 돌보며 살았다. 1846년 5월,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자 신부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과 함께 현석문(玄錫文)이 마련한 새 집으로 피신했으나 결국 7월 11일 현석문, 정철염(鄭鐵艶), 이간난(李干蘭) 등과 함께 체포되어 9월 20일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몸으로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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