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리대 [한] 金琉璃代

김유리대(178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율리에타. 시골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따라 상경하여 서울에서 자랐다. 17세 때 혼담이 있었으나 수정(守貞)을 결심, 부모의 결혼 강요를 뿌리치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전부 뽑아 혼담을 중지시켰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를 겪은 후 부모는 냉담하여 고향으로 내려갔으나 홀로 서울에 남아 있다가 궁녀로 뽑히게 되었다. 그 뒤 10년 동안 궁녀생활을 하다가 궁에서는 천주교의 봉행이 어려워 궁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서 열심히 일해 집을 장만한 후, 홀로 살면서 열심히 수계(守誡)했고 항상 언행에 조심스럽고 성품이 강직하여 교우들로부터 ‘절대로 나쁜 짓 하지 않을 여인’으로 불렸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7월에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했으나 이겨 내고 9월 26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 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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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영 [한] 金元永

김원영(1869~1936). 신부.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충청도 공주(公州)에서 태어났다. 1882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말레이반도의 페낭신학교에 유학, 10년 동안 공부했으나 1891년부터 신학생들을 국내로 불러들이게 되자 이듬해 귀국하여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편입하였다. 1899년 종현(鐘峴, 현 明洞)성당에서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의 주례로 이종국(李鍾國), 홍병철(洪秉喆)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이해 5월 페네(Peynet, 裵嘉祿) 신부와 함께 제주도에 첫 선교사로 들어가 서귀포 한논(현 西烘里)에 본당을 창설하였다. 그 후 황해도 봉산(鳳山), 함경도 안변(安邊) 등지에서 사목하다가 1904년 경기도 행주(幸州)에 부임하여 성당을 건립하는 한편 1914년부터는 수원 갓등이(현 華城郡 峰潭面 旺林里)본당 주임신부를 겸하면서 갓등이본당에서 운영하던 삼덕학교(三德學校)를 4년제의 신명의숙(新明義塾)으로 개편했고, 1917년 정식으로 행주에서 갓등이로 전임된 후 한층 더 교육사업을 발전시켜 1927년 샤르트르 성 바오로회 교사수녀들을 초청, 교육을 전담시켰다. 1933년 황해도 신계(新溪)본당으로 전임되어 3년간 사목하다가 1936년 봄 신부피정차 상경하였으나 피정을 마친 후 몸이 쇠약해져 주교관에서 휴양 중 10월 7일 사망하였다.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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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윤 [한] 金玉允

김옥윤(1905~1978).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한국연합회 3대 회장. 세례명 세자 요한. 수도명 요한 보스코. 1927년 경성전기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성 전기주식회사에 입사, 8.15광복 대까지 근무하였다. 1946년 중앙기공주식회사를 설립, 대표 이사에 취임하고 이어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대한 전기공사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교회활동으로는 1938년 장면(張勉), 정지용(鄭芝溶), 조종국(趙鍾國) 등과 혜화동본당에서 창설된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에 입회하여 1945년 종신서원을 했고, 6.25 전쟁 후 정체된 재속형제회의 재건을 위해 노력, 1961년 임시회장, 서울수련장에 선입되었다. 1962년 혜화동본당 총회장에 임명되어 1964년까지 혜화동본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고, 1972년부터 1974년까지 프란치스코 서울형제회 회장, 1978년부터 선종할 때까지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한국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평생을 교회활동과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의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1980년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의 수련교재 《작은 형제들의 길》을, 1983년 노인용 큰 글씨 기도서를 발행하고 프란치스코 재속형제회 새 수련교재의 간행을 준비하던 중 1984년 7월 25일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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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한] 金英烈

김영렬(?~1931). 간도(間島)지방의 첫 천주교인. 세례명 요한. 함경북도 온성(穩城)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공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곧 회의를 느끼고 오직 진리탐구에만 전념, 강도의 벽지인 서학대(棲鶴臺)에 은거하여 도학자(道學者) 김이기(金以器)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895년 스승 김이기가 동학당으로 몰려 체포되어 회령(會寧)감옥에서 옥사할 때 참다운 진리는 천주교에 있다는 유언을 듣고 즉시 천주교에 대해 알려고 남하, 원산에 이르러 베르모렐(Josephus Vermorel, 張若) 신부를 찾아가 천주교에 대한 토론 끝에 3주일 동안 세례준비를 한 수 1896년 성신강림절에 영세, 입교하였다. 영세 후 많은 성물과 성서를 갖고 서학대로 돌아가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에게 전교, 1896년 가을에 친척 2명을 원산으로 데리고 가 입교시켰고, 이어 1897년 초봄 ‘북관(北關)의 12종도(從徒)’로 불리는 12명의 예비자를 원산으로 인도하여 입교시켰다. 그 후 다시 간도로 돌아가 교우촌을 세우고 전교에 힘써 간도지방 천주교 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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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이 [한] 金連伊

김연이(?~1801). 순교자. 세례명 유리안나.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여 강경복(姜景福) 등 주로 궁녀(宮女)들과 모임을 갖고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그해 7월 2일(음 5월 22일)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을 비롯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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