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임 [한] 金成任

김성임(1787~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마르타. 경기도 부평(富平) 출신으로 결혼에 실패한 후 상경, 장님 점쟁이와 재혼했고, 이 때 시집식구의 한 사람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그 뒤 남편이 사망하자 미신을 끊고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집을 떠나 교우들의 집을 전전하며 천한 일과 궂은 일을 하는 가운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났을 때 이매임(李梅任)의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명혁(南明赫)과 이광헌(李光獻) · 이영희(李英喜) 자매, 김누시아(金累時阿) 등과 남명혁의 집을 파수하던 포졸들에게 자수하였다. 포청에서 5차례의 주뢰형을 받아 다리와 팔을 쓰지 못했으나 견뎌 냈고 형조에서 다시 한 차례의 형문을 이겨 낸 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7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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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한] 金星禹

김성우(1795~1841).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안토니오. 경기도 광주 구산(龜山)에서 부유한 가정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입교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곧 입교, 열렬한 신앙으로 친척과 이웃에게 전교하여 자신의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그 뒤 중년에 이르러 양친을 여의고 서울로 이주,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고, 회장으로 임명되어 자신의 집을 공소로 개조하고 교우들을 돌보며 신부를 보필하였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했는데, 고향 구산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 체포되어 큰 동생 김덕심은 2년 후인 1841년 옥사했고, 작은 동생은 여러 해 동안 옥살이를 하였다. 그러나 피신해 있던 김성우도 1840년 1월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으나 이겨났고, 오히려 옥(獄)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며 함께 갇힌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 그 중 2명을 입교시켰다. 1841년 4월 28일 치도곤 60도를 맞은 후 이튿날인 4월 29일 1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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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집 [한] 金~

김사집(1745~1802). 순교자. 세례명은 프란치스코. 충청도 덕산(德山) 베방고지[菲芳]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청주(淸州)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과거에 목표를 두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천주교가 들어오자 곧 입교, 그 후로 세속영화를 위한 학문을 버리고 오직 기도와 독서에 전념하였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교회서적을 베껴 나누어 주며 무지한 교우들과 외교인을 모아 교리를 가르쳤다. 1901년 신유(辛酉)박해 대 그가 베낀 많은 교회서적 때문에 체포되어 청주에서 교향인 덕산관아로, 덕산관아에서 다시 해미진영(海美鎭營)으로 이송되면서 잔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이겨냈고, 1802년 1월(음 1801년 12월) 해미진영에서 청주병영(淸州兵營)으로 이송된 뒤 사형선고를 받아 1802년 1월 25일(음 1801년 12월 22일) 청주 장터에서 곤장 81도를 맞고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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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일 [한] 金~

김사일(?~1815).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경기도 출신으로 청송(靑松)의 노래산(老萊山)에서 살았다. 1815년 부활축일을 지내던 중 고성대(高聖大) · 고성운(高聖云) 형제를 비롯한 35명의 마을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경주진영(慶州鎭營)으로 이송된 후 그 곳에서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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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건 [한] 金思健

김사건(?~1839). 순교자. 세례명 안드레아. 중인으로 충청도 서산(瑞山)출신. 1815년 을해(乙亥)박해를 피해 큰아버지 김강이(金綱伊), 아버지 김창귀(金昌貴)와 함께 경상도 머루산으로 피신해서 살고 있던 중, 하인의 밀고로 함께 잡혀 안동 진영에 수감되었다. 그의 큰아버지는 순교하고, 아버지는 보성으로 유배되었으나, 그만은 나이가 어려 석방되었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로 다시 체포되어 상주(尙州)진영으로 압송, 모진 고문을 받다가 다시 대구, 전주 등 감옥으로 끌려 다닌 끝에 기해(己亥)박해 때인 1839년 5월 26일(음 4월 14일) 대구에서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샤를르 달레 原著, 安應烈 · 崔奭祐 譯註, 韓國天主敎會史, 中, 분도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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