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아 [라] gloria [영] glory

‘영광’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전례용어로는 영광송(榮光頌)을 지칭한다.

① gloria in excelsis : 대영광송(great doxology)이라고 번역된다. 예수가 탄생할 때 천사가 부른 찬미의 노래(루가 2:14)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천사의 노래(Hymnus)라고도 하며, 내용은 성삼위(聖三位)의 찬미다. 성령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짧게 언급된다. 첫 부분은 콘스탄티누스대제 이전시대에 지어졌고, 성자에 관한 부분은 아리우스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4세기경의 문서인 <사도헌장>에서 그 원형(原形)을 찾아볼 수 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씌어진 5세기의 문서에 나오는 것은 오늘날의 것과 상당히 가깝다. 라틴어로 된 오늘날의 글로리아는 9세기경 지어졌다고 하나 작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로마식 전례에서는 6세기경부터 미사에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주일과 순교자의 축일에 주교만이 노래 부를 수 있었고, 부활절에만 사제도 노래 부를 수 있었다. 11세기 이후 이러한 구별은 사라지고, 또 모든 축일미사에서 사용되었다. 입당기도 뒤, 본기도 전에 불린다. 그러나 평일 · 대림절 · 사순절 미사나 죽은 이와 관련된 미사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② gloria patri : 그냥 영광송이라고 하며 알렐루야나 아멘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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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멘스의 편지 [영] The Epistle of Clement [관련] 글레멘스1

로마의 글레멘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문서는 많지만, 진정란 문서는 《제1 글레멘스의 편지》밖에 없다. 이것은 그가 로마 교회로부터 고린토 교회로 보낸(95/96년?) 공개 편지로, 까닭도 없이 배척당한 장로들을 올바로 대우하고, 불손한 자에게 순종의 태도를 배울 것을 타이른 것이다. 65장(章)으로 되어 있고, 교회제도와 예배방식에 관한 서술, 바울로와 베드로의 순교(殉敎)를 최초로 전하는 내용이 있다. 전반적으로 ‘신율법주의'(新律法主義), ‘그리스도교적 율법주의’의 정신이 보이는 대표적인 문서이다. (⇒) 글레멘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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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멘스2 [라] Clemens, Alexandrinus

Clemens, Alexandrinus(150?~215?). 3세기의 교부. 알렉산드리아 초기 신학 학파의 대표적 인물. 아테네 출신으로 추정된다. 여러 지역에서 그리스도교와 철학을 배운 뒤 알렉산드리아 교리 문답학파의 지도자 판테누스(Pantaenus)의 제자가 되어 190년에는 그를 계승하였는데 202년 박해로 그곳을 떠났다. 당시는 영지주의(靈知主義)의 시대였으므로 종교적 지식 혹은 해명을 뜻하는 그노시스(gnosos)를 그리스도교적인 완성의 최고요소로 주장하는데 동의하였으나 그에게 있어서 오직 하나의 ‘그노시스’는 사도에 의해 창립되고 신의 계시를 보유하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반면, 그가 인류에 대한 신의 선물이라고 본 그리스 철학의 이념들로써 교회 신앙을 설명하고 보완하였다. 로고스, 삼위일체의 제2위인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 이성의 근원이며 인간에 대한 신의 해석자이다. 그는 최고의 계시를 주기 위해 인간이 되었고 그를 통해서 인간은 불멸성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성세와 성체 성사는 도구적인 것이다. 글레멘스는 무지와 실수를 죄보다도 더 근원적인 악으로 악으로 보았으며, 비록 인간이 모두 축복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였지만, 최악의 실수일지라도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취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인에게 주는 훈계》(Protrepti), 그리스도교인의 생활과 예법에 관한 《Paedagogus》, 그리고 《신변잡기연구들》(Stromatei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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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멘스1 [라] Clamens [영] Clement [관련] 글레멘스의 편지

Clemens, 1세(30?~101?). 성인, 교황(재위 : 88?~97). 별칭 로마의 글레멘스(Clemens Romanus). 사도교부(使徒敎父). 《제1 글레멘스의 편지》의 저자. 이레네오(Irenaeus)(Adv. haer. Ⅲ, 3, 3)에 의하면 성 베드로에서부터 3대째의 로마주교였다고 한다(Q. S. F. Tertulliannus, 기타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성 베드로 후계자로서 2대째 주교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필시 잘못으로 생각된다). 또한 오리제네스(Origenes)(Comm. in Joan. Ⅵ, 36) 이래로 그를 필립비서 4:3의 글레멘스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었으나 그 진위(眞僞)는 분명치 않다. 또한 로마황제 도미시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의 종제(從弟)인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Titus Flavius Clemens, 150?~220?)와 동일시되기도 했으나 이 역시 잘못임이 드러났다.

그의 중요성은 로마교회의 명의로 써보내진 《고린토인에 대한 첫 번째 편지》(제1 글레멘스서)가 그의 손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이 편지는 고린토 교회에서의 장로 배척운동에 대해 장로 · 집사 등의 사도적 전승과 그 권위를 주장하고, 장로의 추방을 철회하고, 회개하여 교회의 올바른 평화를 회복할 것을 권고한 것으로, 당시 교회의 상황, 사상 등을 아는데 귀중한 문헌이다. 또한 그의 이름을 붙인 《고린토인에 대한 제2의 편지》 (제2 글레멘스서)는 그가 쓴 것이 아니고, 후에 로마 또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여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이른바《가짜 글레멘스 문서》도 역시 동방에서의 그의 전설에 입각하여 후에 쓰여진 것이며, 그가 저작한 것은 아니다. 후대에 이르러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이 널리 유포되었다. (⇒) 글레멘스의 편지

[참고문헌] E. Caspar, Die alteste rom. Bischofsliste, 1925 / L. Sanders, Le Lellenisme de St. Clement de Rome et le Paulinisme, 1943 / H.v. Campenhausen, Kirchliches Amt u. deistliche Vollmacht in den ersten Jh. (BHTh 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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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회 [한] ~會 [라] Clarissae [영] Poor Clares

1212년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창설한 관상 봉쇄수도회이다.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건네받은 18세 소녀 글라라는 산 다미아노 (San Damiano)에 수녀원을 세우고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따라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도회칙은 성 프란치스코가 이들을 위해 마련해준(formula vitae)것을 기초로 하여 성녀 글라라가 손수 작성하였고 1253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었다. 글라라회가 유럽의 다른 나라로 진출하면서 초기의 수도회칙은 점차 이완되기 시작하였는데, 15세기 초 프랑스의 성녀 콜레트(St. Colette de Corbie)는 초기의 엄격성을 회복한 콜레트의 글라라회(Colettine Poor Clares)를 발전시켰다.

글라라회의 수도생활은 엄격한 성무일도, 관상기도, 정신 및 육체노동으로 이뤄지며 성식서원 수도회다. 이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속기도를 바치고, 참회를 위해 엄격한 봉쇄규범을 지킨다. 196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786개 수도원이 있고 종신 서원자의 수는 1만 7,699명이 있다.

글라라 관상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72년 6월이다. 이보다 앞서 1960년 당시 광주교구장이었던 헨리 주교의 초청을 받아 196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한국 진출과 독립된 글라라회로 인준 받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글라라회는 1969년 23명의 수녀들을 서울에 파견하여 2년간 한국어 교육을 시킨 후 1972년에 제주도에다 수녀원을 개설하고 정식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1974년 건물을 신축하기 전까지는 이시도로 목장에서 임시로 거주하였고, 1980년에는 봉쇄 소성당, 외부성당, 수련소를 증설하였다. 총 회원수는 13명이고 제주도 남제주군 한림읍 금악리에 있다. 관상수녀회이므로 사도직 활동은 하지 않으며 다만 자급자족을 위해 회원들이 소규모의 목축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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