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라회 [한] ~會 [라] Clarissae [영] Poor Clares

1212년 이탈리아의 아시시에서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창설한 관상 봉쇄수도회이다. 프란치스코로부터 수도복을 건네받은 18세 소녀 글라라는 산 다미아노 (San Damiano)에 수녀원을 세우고 성 프란치스코의 이상에 따라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수도회칙은 성 프란치스코가 이들을 위해 마련해준(formula vitae)것을 기초로 하여 성녀 글라라가 손수 작성하였고 1253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었다. 글라라회가 유럽의 다른 나라로 진출하면서 초기의 수도회칙은 점차 이완되기 시작하였는데, 15세기 초 프랑스의 성녀 콜레트(St. Colette de Corbie)는 초기의 엄격성을 회복한 콜레트의 글라라회(Colettine Poor Clares)를 발전시켰다.

글라라회의 수도생활은 엄격한 성무일도, 관상기도, 정신 및 육체노동으로 이뤄지며 성식서원 수도회다. 이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보속기도를 바치고, 참회를 위해 엄격한 봉쇄규범을 지킨다. 1960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 786개 수도원이 있고 종신 서원자의 수는 1만 7,699명이 있다.

글라라 관상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72년 6월이다. 이보다 앞서 1960년 당시 광주교구장이었던 헨리 주교의 초청을 받아 196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한국 진출과 독립된 글라라회로 인준 받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글라라회는 1969년 23명의 수녀들을 서울에 파견하여 2년간 한국어 교육을 시킨 후 1972년에 제주도에다 수녀원을 개설하고 정식으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1974년 건물을 신축하기 전까지는 이시도로 목장에서 임시로 거주하였고, 1980년에는 봉쇄 소성당, 외부성당, 수련소를 증설하였다. 총 회원수는 13명이고 제주도 남제주군 한림읍 금악리에 있다. 관상수녀회이므로 사도직 활동은 하지 않으며 다만 자급자족을 위해 회원들이 소규모의 목축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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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봉쇄수녀회 [한] ~封鎖修女會 [라] Ordo S. Clarae [영] Order of St. Clare

이 수녀회는 성 프란치스코 제 2회로서 1243년 성년 아시시의 글라라(Clara)에 의해 독일 레겐부르크에서 ‘보속의 여자수도원’으로 설립되었다. 엄격한 봉쇄를 지키는 이 회의 회칙은 1253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의해 인가되고, 1260년 ‘성 글라라 수녀원’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수녀원의 특성은 글라라 성녀의 말대로 ‘가난한 동정녀로서 가난한 그리스도를 모시는 가장 고귀한 청빈생활과 고독 속에 침묵하고 기도하는 은거 생활 중에 거룩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한국 진출은 1980년 5월 서독 본원의 부원장과 현분원장 마리아 그라치아 수녀가 한국 진출을 위해 현지 답사차 방한(訪韓), 전주교구 소관인 전북 익산군 팔봉면 월성리의 해바라기 농장 일부를 수녀원 부지로 기증받음으로써 진출이 구체화되었다. 1981년 6월에는 임시수녀원 기공식이 김재덕(金在德,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 8월15일 수녀원이 축성되었다. 수녀들의 첫째 과제는 봉쇄수녀원의 특성에 맞추어 수녀원을 봉쇄구역과 외래객이 출입할 수 있는 성당과 응접실을 구분하여 숨은 생활을 보존시키고, 아울러 수녀원의 고유의 사명, 즉 지존하신 성체께 흠숭드릴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현재 서독의 모원(母院)의 회원수는 26명, 한국분원에는 5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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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관상수녀회 [한] ~觀想修女會 [영] Order of St. Clare [관련] 글라라회

⇒ 글라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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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라 [라] Clara [관련] 글라라회

Clara(1194~1253). 성녀. 글라라회의 창설자. 축일은 8월 11일. 1212년경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설교에 감동되어 가족 친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녀가 되었으며, 성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성인의 도움을 받아 산 다미아노 (San Damino)에서 글라라회를 세웠다. 이 수도원은 1215년에 대수도원이 되었으며 자신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원장을 지냈다.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Alexander) 4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 글라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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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조선정감 [한] 近世朝鮮政鑑

1886년 7월 일본 도쿄(東京)의 중앙당(中央黨)에서 간행된 대원군(大院君) 집권시기의 야사(野史). 내용은 철종(哲宗)의 즉위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원군의 인물상, 정치적 견해를 중심으로 대원군 집권 시기를 전후한 한국의 정치이념과 병인박해(丙寅迫害)에 관한 많은 사실들을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박제경(朴齊絅)이며 특기할 것은 책 분량의 1/3에 해당하는 부분은 배전(裵-)의 평(評)이며, 일본에서 간행되었으므로 나가 미찌요(那珂通世)의 일본식 훈점(訓點)이 첨가되었다. 저자와 평자는 책의 간행 후 자신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하고자 박제형, 배차산(裵次山, 배전의 호가 此山)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박제경은 개화파의 일원으로 박영효(朴泳哮), 김옥균(金玉均)과 함께 개화운동에 참가했다가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실패하자 희생된 인물이며, 배전은 박제경의 스승이자 동지로 박제경보다 훨씬 진보적인 사상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저술 시기는 1884년 감신정변 이전으로 저자가 저술을 끝낸 후 배전에게 평(評)을 의뢰했을 것이므로 갑신정변 훨씬 이전에 저술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 책에 실린 이수정(李樹廷)의 서문(序文)에서 이 책이 상하 2권으로 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1886년 7월 동경 중앙당에서는 상권만이 간행되었고, 하권은 끝내 간행되지 않은 것 같고 실제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의 가치로는 야사(野史)로서 사실기술에 다소 착오를 범하고 있긴 하지만, 1880년대 개화파의 사상과 개화파의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는데 있다.

[참고문헌] 朝鮮政鑑(上), (韓國敎會史硏究資料 弟二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68 / 李翼成 譯, 近世朝鮮政鑑(上), 探究堂, 1976 / 李光麟, 近世朝鮮政鑑에 대한 몇 가지 問題, 韓國開化史硏究, 一潮閣,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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