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한] ~王 [라] Christus Rex [영] Christ the King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왕국을 다스리시는 왕이심.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왕국의 영광을 차지하셨다. 그리스도왕께서는 그 왕국을 확장하시고 모든 것을 당신께 복종시킬 것이며, 마침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1고린 15:27-28).

그리스도왕은 구약에서 예언되고 준비되었다. 가나안 정착시기에 왕정의 필요를 느낀 이스라엘은 야훼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탄생시켰고 왕조의 존속을 약속받았다(2사무 7장). 그러나 다윗왕조가 몰락하자 종말의 왕인 메시아의 약속이 있었다(에제 34장). 왕이신 메시아에 대한 백성들의 기대는 인간적인 희망과 현세적인 왕권관념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예수는 지상생활 동안 그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예수는 헤로데의 권위도(루가 13:31-) 로마 황제의 권위도(마르 12:13-17) 반대한 적이 없다. 예루살렘 입성(入城) 때 당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찬양하는 백성을 묵인하고(루가 19:38) 빌라도 앞에서 당신이 이스라엘 왕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나 당신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였다(요한 18:36-37). 그 왕국의 성격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께 군사들이 조롱한 행위에서 드러난다(마르 15:18). 예수의 왕위는 십자가에서 빛나고 있으며, 왕의 영광은 부활 후에, 그리고 재림 때 나타나는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는 당신 왕국에 들어가셨다. 그 왕국은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이다(교회헌장 36). 왕국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확장된다(사도 1:8). 재림 때 ‘모든 왕의 왕이시며 모든 군주의 군주이신’(묵시 17:14) 그리스도 왕은 모든 왕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그 왕국을 성부께 바치실 것이며, 성부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실 때까지 군림할 것이다(1고린 15:24-25).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며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교회헌장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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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양태론 [한] ~樣態論 [라] modalismus [영] modalism [관련] 성부수난설 사벨리우스주의

단일신론의 엄격한 형태로서 이단 이론이며 하느님의 유일적 존재성을 지나치게 과장 변화한 데 기원을 두고 있다. 그리스도 양태론은 삼위일체에 있어서의 위격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는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다만 나타나 여러 양태에 지나지 않고, 하나의 성질의 여러 국면이며, 신성한 동일 인격의 발현 에네르기에 지나지 않고, 하느님이 각각 하는 일이 다르게 됨에 따라 그 기능에 따라서 각각 다른 이름이 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역할로서 ‘창조’가 이루어졌고, 성자의 자격으로서 ‘구속’이 행하여졌으며, 성령의 자격으로서 ‘성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영원부터 하나인 하느님은 언제인가 세 인격이 되었으며 성자가 인간 세상에 오신 일은 성부가 사망했다는 논리적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성부 수난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로마에 도입된 양태론의 최초의 주창자는 프락세아스(Praxeas)로 3세기 초의 일이며, 테르툴리아노는 그 이론을 반박하였다(213년). 프락세아스의 이 이론은 니체아 공의회 이전 시기에 사위일체 교리에 가장 공헌하였다.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프락세아스의 설은 성부와 성자의 동일성이 너무나 철저하여 성부가 친히 성모 마리아에게 하강하여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자신이 수난을 당하고 따라서 성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양태론은 동방에서는 사벨리우스주의로 알려졌고, 노에투스(Noetus)의 설에 영향을 미쳤으며, 교황 성 갈리스도(St. Callistus) 1세에게 파문을 당하였다. (⇒) 성부수난설, 사벨리우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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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양자론 [한] ~養子論 [라] adoptianismus [영] adoptionism [관련] 그리스도논쟁

그리스도의 위격적 일치의 방식을 오해한 이단의 하나로 그리스도가 천주성으로는 하느님의 친자(親子)이나 인성으로는 양자(養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테오도로(Theodore of Mopsuestia)가 처음으로 주장하였으나 공적으로 논의된 것은 스페인의 엘리판두스(Elipandus) 대주교가 강생에 대한 미제시우스(Migetius)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비롯되었는데, 그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명백히 구분하기 위하여 영원으로부터 탄생한 말씀을 하느님의 친자로, 시간 안에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말씀을 하느님의 양자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교황 하드리아노(Hadrianus) 1세는 ‘양자’란 말이 성서와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반할 뿐 아니라 네스토리우스파의 부활을 뜻한다는 이유로 이를 단죄하였고 프랑크푸르트 교회회의(794년)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천명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었으나 친자의 명칭을 그대로 지닌다. 오직 한 분의 아들이 있을 뿐이며 그는 양자가 아니다.” 12세기 아벨라르(Abelard, Folmar of Trier)와 질베르(Gilbert de la Poree)는 말씀과 그의 인성의 일치는 우유적(偶有的)인 것이라 했는데, 그렇지 않고 본질적인 것이라면 그 일치는 성삼위 안에 유한성을 형성하는 셈이 되어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양자일 뿐이라고 하였다. 교황 알렉산데르 3세는 1177년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주장을 단죄하면서 “그분이 참 하느님이듯이 또한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된 진정한 인간이시다” 하였다. 2세기 후 두란두스(Durandus)와 스코투스파의 몇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는 성화 은총으로 충만하므로 친자인 동시에 양자라고 했는데 이 또한 승인할 수 없는 견해이다. 양자란 그가 양자로 되기 전에는 양부모에게 타인인 법인데, 그리스도는 성부께 타인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아버지의 친자이자 양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 그리스도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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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론 [한] ~論 [라] Christologia [영] Christology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특히 위격적 결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그리스도론은 교부시대 이래 연구되어 왔으나 이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론이 서방세계에 등장한 것은 주로 종교개혁 이후이다 루터교의 그리스도론은 다양성을 용인하는 가운데 아폴리나리아니즘에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로 강조하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지닌 위격의 단일성 및 그리스도가 좀체로 신성(神性)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인성(人性)을 취했다는 주장이다. 칼빈주의자나 종교개혁자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가 지니는 신성과 인성의 상위점을 강조함으로써 네스토리아니즘에 접근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전통에서 한걸음 나아가 개신교 그리스도론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정의하여 예수는 단지 ‘나자렛 출신의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가톨릭의 그리스도론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니체아, 콘스타니노플, 에페소, 칼체돈 등의 공의회에서 확인된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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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그리스도단의론 [한] ~單意論 [라] monotheletismus [영] monotheletism [관련] 그리스도논쟁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 논쟁을 해소하기 위해 발전된 이단설. 단성론과는 달리 그리스도에게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두 가지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 두 성이 위격적 결합(位格的 結合)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는 하나의 의지(意志)만이 있어서 그 움직임도 하나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순수한 인간적인 의지는 신적인 의지 속에서 해소되어 흡수된다고 주장한다. 이 설의 대표적 인물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세르지오(Sergius, 재위 : 610~638)로, 그는 그리스도 단성론자와 교회를 화해시키기 위해 이 설을 창시했고, 황제 헤라클리우스의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반대한 자는 예루살렘의 소프로니우스였다. 그러나 교황 호노리오(Honorius) 1세는 사적 서신을 통해 단의론을 인정했기 때문에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년)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공의회는 이들의 설을 이단으로 배척했고, 교황 호노리오 1세도 단죄되었다. (⇒) 그리스도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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