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영] demon [한] 鬼神 [라] daemon

귀신이란 원시신앙이나 종교의 대상의 하나인 범신론적인 존재를 말하며,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다고 하는 혼령 또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내려 주는 정령(精靈)을 가리키는 것이 동양의 일반적인 관념이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악마’ 또는 ‘악령'(惡靈)으로 번역되는 ‘demon’이라는 말이 일반 술어상으로 ‘귀신’에 해당되며, 그 어원은 라틴어 ‘daemon’ 즉 ‘악령’에서, 그리스어 ‘daimon’ 즉 ‘신’, ‘천재’, ‘영혼’ 등을 뜻하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본디 ‘demon’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 개재하는 영적인 존재였으나 점차 유해한 의미를 지니게 되어, 악의에 가득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뜻하게 되었다. 구약성서 중에서의 ‘악령’은 신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 허락을 받아 비로소 인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생각되었었다(판관 9:23, 1열왕 22:19-22). 신약성서에서 ‘악령’ 또는 ‘악마’로 번역되는 ‘demon’은 인간에게 파고 들어와 귀신들리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거나(마태 11,18), ‘이방의 신들'(사도 17:18)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중국, 한국에서 쓰이는 ‘귀신’이라는 어휘에는 각각 특수한 의미가 있다. 중국의 경우, ‘귀'(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며, 제(祭)를 받지 못하면, 사람의 주변에 방황하며, 화를 일으킨다고 믿어 왔다. 동북방을 ‘귀문'(鬼門)이라고 하여 귀신의 화가 이 방향에서 들어오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좋다는 관습을 낳았다. 한국의 민간신앙에 있어서의 ‘귀신’의 발생을 보면 ① 사람의 몸에는 혼(魂) · 백(魄) · 귀의 셋이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에 오르고, 백은 땅에 들어가고, 귀는 그 중간에서 떠돌아다닌다. 귀는 산 사람으로부터 충분히 제를 받으면 원이 풀려서 자연히 없어지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산 사람에게 지핀다. ‘인귀'(人鬼)의 발생이 바로 이것이다. ② 귀의 거처하는 곳인 금수나 목석 등 그 자체가 하나의 귀가 된다. 무당들의 신기(神器)는 대체로 귀의 힘을 지녀 병자에게 접촉시키면 병을 없애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③ 기(氣)의 응집에 의해서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이 경우 중국의 귀신론과 깊이 관련되며, 동양철학적인 관념 즉 “천지간에 있는 만물이 모두 생기(生氣)에서 나왔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다. 기가 응집한 것이 정(精)이고, 정의 작용이 바로 영(靈)이다. 정은 체(體)이고, 영은 용(用)이라고 보며, 정이 되어서도 작용하지 않는다면 ‘신명'(神明), ‘귀’가 아닌 것이다. 이 때문에 후사가 없는 사람의 귀는 제사를 받지 못하므로 ‘원귀'(怨鬼)가 되고, ‘기’의 사고방식에서 사람 이외에 산, 강, 나무, 돌 등 모든 것에 ‘귀’가 숨어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귀신은 원체(原體)로부터 떨어진 변생체(變生體)이고, 자기보다 강한 힘에 진압되나 바람을 일으키며, 닫힌 문을 열고 장애없이 어디에든 나다닐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귀신은 자신의 뜻을 채우지 못하면 심술을 부리고,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백주에 대접을 받지 못한 집 또는 원한이 있는 집에 돌을 던지거나, 난데없는 불을 지르기도 한다고 해석되었다. 특히 농촌이나 산촌의 밤길은 귀신들의 출몰로 위험하며 행인을 까무러치게 한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귀신은 그 자체 성격 때문에, 쫓기고 살해되는 존재이다. 영리하지 못하므로 인간의 재간에 농락당한다고 이해되었다. 예를 들면, 문첩(門帖), 부적(符籍) 등에 쫓기고, 용사나 무당의 칼에 위협받는 존재이다. 박달나무 · 복숭아나무의 방망이에 매를 맞는 존재이며, 일반대중의 양귀(禳鬼)방법 즉 귀신 쫓는 방식에 의하여 그 난동이 진압되는데, 특히 굿거리는 귀신을 쫓고 신령님의 도움을 얻는다는 점에 중점이 두어진 양귀의례(禳鬼儀禮)로서 한국의 민간신앙을 형성함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禮記 <祭儀篇> / 李瀷, 星湖僿設 / 成俔, 용濟叢話, 卷3, 4 <志佑> / 權鼈, 海東雜錄 <家鬼條> / 增補文獻備考, 卷63 / 東國輿地勝覽 / A. Kohut, Uber die judische Angelologie und Damonologie, Leipzig 1866 / J. Smit, De daemoniacis in historia evangelica, Roma 1913 / H. Obendiek, Satanismus und Damonie, 1928 / M. Gruenthaner, The Demonology of the O.T., Cath-BiblQuart 6, 1944 / E. Langton, La demonologie : Etude de la doctrine juive et chretienne, Paris 1951 / 孫晋泰, 韓國民族說話의 硏究 / 張秉吉, 韓國의 固有宗敎와 大衆宗敎, 새교육, 20권 5호(통권 163호), 서울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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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한] 權喜

권희(179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바라. 성인 이광헌(李光獻)의 처. 성녀 이 아가다의 모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역시 외교인이던 이광헌과 결혼했으나 1817년 경 남편과 함께 입교한 후로는 열심히 수계했고, 박해로 인해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장의 직무를 맡은 남편을 도와 주교와 신부를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케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혹독한 형벌을 당했는데 12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이 고문당하는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모정을 억제하고 모든 유혹과 형벌을 견뎌냈고 이러한 처참한 5개월 동안의 옥살이 끝에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그 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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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한] 權限 [라] facultates [영] faculties

주교들이 성청과 교구 사제들이 지역 재치권자로부터 각각 부여받은 재치권 행사의 권능. 이는 고해성사의 사죄권과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 용어이다. 즉 고해신부가 고해성사를 합법적이며 유효하게 집전하기 위해서는 서품을 통하여 받은 신품권뿐 아니라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사목 행정상의 ‘권한’을 아울러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다(교회법 제966, 969조 참조). 권한은 고해성사와 기타 모든 성사의 집전을 위해서 뿐 아니라, 널리 신품권과 교도권과 협의의 사목권의 합법적 행사를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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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품천사 [한] 權品天使 [라] principatus [영] principalities [관련] 천사

⇒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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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철신 [한] 權哲身

권철신(1736~1801). 남인(南人) 학자로 초기 천주교 신자의 한 사람. 세례명은 암브로시오. 호는 녹암(鹿菴). 학문이 높아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또 제자들이 많았다. 당시 조선에는 북경으로부터 한역서학서(韓譯西學書)가 많이 들어와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권철신은 1777년 자기 고향 양근(楊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어사(走魚寺)에서 강학(講學)을 주도하고, 이벽(李檗), 제자인 정약전(丁若銓) 등과 같이 서학(西學)의 종교서적을 놓고 천주(天主)의 존재, 인생의 기본문제 등에 관해 연구회를 가졌다. 연구 결과 그들은 천주교 진리를 희미하게나마 깨닫고 천주교 계명을 아는 대로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벽을 제외하면 그것이 오래 계속되지 못하였다. 그러는 동안 이승훈(李承薰)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와 이 벽과 같이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이 벽은 학덕이 높은 학자를 포섭하여 천주교의 기반을 굳힐 생각으로 1784년 9월(음) 먼저 양근의 권씨를 찾아가 입교를 권고하였다. 셋째인 권일신(權日身)은 즉시 입교하였고 맏이인 권철신은 처음에는 좀 주저했으나 결국 입교하였다. 그 후 권일신은 열렬한 전도자가 되었으나 권철신은 직접 전도하지는 않았고 또 천주교 일에도 결코 관여하지 않았다. 그는 늘 집에서 학문과 종교생활에 전념하였다.

천주교 반대파들은 통문(通文)으로, 때로는 혹은 상소로 그를 천주교 두목으로 몰았으나 정조(正祖)의 비호로 화를 면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사망하고 이어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자 권철신도 이가환(李家煥), 이승훈, 정약용(丁若鏞) 등 저명한 남인 학자들과 같이 잡혀 국문(鞠問)을 받았다. 그는 국문에서 천주교 신앙을 거부했고 마침내는 매를 맞아 2월 22일(음) 66세로 옥사하였다. 달레(Dallet)는 그를 순교자로 보고 있으나 그것은 황사영(黃嗣永)의 백서(帛書)를 근거로 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황사영 자신의 말과 같이 2월 15일(음) 이전 사건에 관한 기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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