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이 [한] 權珍伊

권진이(1819~1840).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성녀 한영이(韓榮伊)의 딸. 세례명은 아가다. 서울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친 권 진사(進士)가 임종 때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자, 부친의 뜻에 따라 모친과 함께 입교하였다. 13세경 교우청년과 결혼했으나 남편이 너무 가난하여 남편과 떨어져 정하상(丁夏祥)의 집에서 살았다.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가 입국한 후로는 신부의 처소를 돌보았고 그 뒤 유방제 신부가 조선을 떠나자 모친에게로 돌아가, 한 집에 살게 된 이경이(李瓊伊)와 함께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한 배교자의 밀고로 모친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이경이와 권진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권진이와 이경이는 사관청에 갇히게 되었는데, 김순성이 납치하려 하자 한 포졸의 도움으로 사관청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숨어 있던 교우집에서 다시 체포되어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福者)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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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일신 [한] 權日身

권일신(?~1792). 한국 천주교의 창설을 주도한 3대 인물의 하나. 세례명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호는 이암(移庵). 조선조 중기의 실학자 안정복(安鼎福)의 사위이며 권철신(權哲身)의 아우. 1784년 9월(음) 이벽(李檗)의 권유로 즉시 천주교에 입교, 천주교의 열렬한 전파자가 되었으며 특히 제자 중 이존창(李存昌)과 유항검(柳恒儉)을 입교시킴으로써 복음을 멀리 호서 · 호남 지방에까지 전하였다. 1785년 명례방(明禮坊) 김범우(金範禹) 집에서 종교집회를 가졌을 때 권일신도 그의 아들 권상문(權相問)과 함께 참석하였다. 이 때 형조관리에게 발각되어 검거되고 성물이 압수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중 김범우만 형벌을 받고 권일신 등은 사대부 집안의 자제라 훈방(訓放)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형조로 들어가 성상(聖像)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였다. 그 뒤 그는 소위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 때 이승훈으로부터 신부로 임명되어 한때 성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의 여파로 홍낙안(洪樂安) 등이 권일신을 천주교의 교주(敎主)라고 고발해서 잡히는 몸이 되었다.

그는 심한 고문에도 배교치 않아 사형시킬 것을 상소하였지만 정조(正祖)는 사형을 허락지 않고 제주도로 유배시킬 것을 명하였다. 옥에서 나와 유배지로 떠나기에 앞서 서울에 머물러 있는 동안 형조에서는 그에게 팔순 노모에 대한 불효를 구실로 유혹하였으므로 그는 이에 굴복하였다. 그리하여 감형(減刑)되어 예산(禮山)에 유배키로 되었다. 그는 노모를 만나 본 뒤 유배지로 가는 도중 옥에서 받은 상처로 객사(客死)하였다. 때는 1792년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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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은 [한] 權相殷

권상은(1913~1972). 기업인. 세례명은 가밀로. 대구시 침산동(砧山洞)에서 공소회장 김경집(金敬執)의 3남으로 출생. 고향에서 해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8세 때 상경(上京)하여 직공, 고물장사 등으로 생활하다가 1948년 흥아초자공업사(興亞硝子工業社), 1954년 신아상공(新亞商工), 1957년 대양상사(大洋商社) 등을 설립, 경영하였다. 1963년 조광법랑공업사(朝光琺瑯工業社)를 설립하여 기업의 발판을 굳힌 후 교회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신, 많은 희사를 하는 한편 이웃돕기와 기도생활에도 모범을 보였다. 1968년 가톨릭 교리연구소의 창설에 깊이 관여, 운영비를 전담하였고, 병인순교 24위 시복식을 참관하고 돌아와 꾸르실료 교육을 수료한 후 말년에는 실업계에서 은퇴하여 교회사업과 교리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1972년 2월 10일 구로1동 본당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담화 중 선종,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소흘리 정릉본당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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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연 [한] 權尙然

권상연(1750~1791). 순교자. 세례명 야고보.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신. 원래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고종사촌(姑從四寸)인 윤지충(尹持忠)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윤지충의 어머니인 고모가 세상을 떠나자 자기 사촌의 용감한 행동을 본받아 교리를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음으로써 친지와 친척들의 욕설과 비난을 받았고 급기야는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역도(逆徒)로 몰려 체포령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윤지충과 함께 진산군수(珍山郡守)에게 자진 출두하여 수감된 그는 천주교리를 설명하여 자기의 처사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였다. 1791년 10월 28일 전라감영으로 이송되어 사교이단(邪敎異端)으로 몰아 배교하기를 강요하는 감사의 훈유나 고문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이어 참수형이 내려지자 윤지충과 함께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맞은 매로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즐거운 표정으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설교를 하여, 그의 성스러운 모습에 모두들 감탄하였다. 1791년 12월 8일 참수치명하였는데,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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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문 [한] 權相問

권상문(1768~1802). 순교자.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 권일신(權日身)의 2남. 경기도 양근(楊根)에서 태어나 백부(伯父) 권철신(權哲身)의 양자(養子)로 들어갔다. 1800년 7월(음 6월) 양근에서 체포되어 심한 형벌로 한때 배교한다는 말을 했다가 포청과 형조로 이송되어서는 그 말을 취소하고 1802년 1월 30일(음 1801년 12월 27일) 양근에서 참수(斬首)당하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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