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한] 敎會史 [라] historia Ecclesiae [영] history of Church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30년경 유태교의 축제일인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아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구세주)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복음 선포를 경청하여 받아들인 이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셨다.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할손례, 정화례, 안식일 등의 유태인의 종교적 의무를 성실하게 준수하는 유태교 종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특수한 공동체를 이루고 고유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과 그 밑에 야고보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단과 스테파노를 지도자로 하는 부제단이 구성 되었다. 사도들의 열성적 선교활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 전파되었다. 이 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두 그룹이 공존하였는데, 하나는 아직도 엄격한 유대 사상을 보존하면서 실천하던 유대지방의 예루살렘 교회, 갈릴래아 교회, 사마리아 교회,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교회 등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며, 다른 하나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 로마 교회 등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이는 개종한 그리스인, 헬레니스트, 기타 비유태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과격한 유대 민족주의의 등장과 바울로 사도의 선교 활동으로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장하였고,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쇠미하였다.

2세기에 이르러 12사도들이 모두 사망함으로써 계시의 사도시대가 끝나고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후시대에 전달하는 사도후시대(100~300)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다시 사도교부시대(100~150), 호교교부시대(150~200), 초대교부시대(200~300)로 구분되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교회 관습은 아직도 유태교적 또는 유대계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둘째로 교계제도가 최종적으로 확립되어 주교, 장로(신부), 부제 등의 세 성직계급이 등장하였다. 넷째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로마제국의 영토 확장에 따라서 널리 전파되어 교세가 급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다섯째로 이러한 교세 확장으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 정치적 불안감을 안겨 주어 200년간의 박해를 받았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종식되었고, 313년에 밀라노칙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이후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의 호의적 도움을 받으며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였다.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2년에 포고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러한 국교 시대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교는 여러 분야에서 발전하였다. 첫째로 수도원이 창설되어 발전하면서 수도생활은 일반 신자들의 영성강화에 도움을 주었다. 둘째로 공의회가 그리스도교의 주요한 조직으로 등장하여 교회의 모든 현안문제를 해결하거나 결정하였다. 셋째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함께 전례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 국교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정통과 이단 사이의 격렬한 교리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당시의 신학적 쟁점은 천주성삼(삼위일체), 그리스도,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교리 논쟁은 일련의 공의회를 통해서 해결되어 최종적으로 정통 가톨릭 교리가 정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세기 중반기에 국경지대의 게르만민족이 이동하면서 로마제국을 멸망시키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붕괴될 위험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본래의 사명인 선교의 열의를 잃지 않고 유럽 세계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는 게르만민족을 개종시켰다. 특히 서부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족의 개종은 유럽사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민족이 융합하여 새로운 중세 문화를 탄생시켰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 같은 신앙 위에서 일치된 중세기 그리스도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게르만민족의 이동과 프랑크왕국과 교황청의 융합이라는 과도기(450~750)를 거쳐서 시작되는 중세기(750~1300)는 시대적으로 양분될 수 있다.

중세 전기(750~1054)에는 프랑크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고 종교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의 확장과 교황령의 탄생 등의 외적 발전이 이룩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은 반면에 황제의 내정 간섭을 받아 교회의 세속화와 교권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교회와 국가가 밀착된 관계로 프랑크제국의 정치적 붕괴는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권한이 쇠퇴하는 교회의 암흑기(880~1046)를 탄생시켰다. 암흑기 동안에 그리스토교는 처음에(800~962) 로마 귀족의 지배를 받았고, 후에는(962~1046) 독일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교회 내정 간섭으로 자율권을 상실하였다. 아울러 교리 논쟁 이후로 서방 라틴 교회와 동방 비잔틴교회가 각기 다른 노선으로 발전하였다. 8세기에 동방 교회는 성화상 파괴 논쟁을 통해서 서방 교회와 신학적 충돌을 하였고 1054년에 두 교회는 완전히 결별하였다.

중세 후기(1054~1300)에는 클뤼니 수도단체의 개혁과 교황 그레고리오 7세(재위 : 1073~1085)의 교회쇄신으로 교회는 세속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세속권을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두 가지 개혁운동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각성시켰고 평신도의 영성 강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는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운동과 청빈운동에서 나타났다. 십자군운동은 기사 수도회의 탄생과 서구의 비잔틴문화와 이슬람문화의 접촉을 가능케 함으로써 학문, 특히 스콜라철학과 신학과 예술의 발달에 이바지하였다. 청빈운동은 교회의 생활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나 지나친 주장은 이단으로 변질되었으며 이러한 이단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부정적 방법으로 종교재판이 생겨났고 긍정적 입장에서 탁발수도회가 창설되었다. 탁발수도회는 이단자의 개종과 선교활동 이외에 13세기에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에서 학술활동을 통해서 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14~15세기(1300~1500)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의 정치체제 또는 지방 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불행한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대분규(서구의 대이교)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로 말미암아 공의회 우위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더욱이 신학적 자유주의는 신학의 불확실성시대를 초래하였고, 이는 신학자들의 대립과 이에 따른 신학의 쇠퇴를 가져왔다.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일부 르네상스 교황들은 문화적 업적을 쌓았지만 그들의 시대적 사명, 즉 교회 쇄신작업에 소홀하였으며 귀족 출신인 고위 성직자들도 그들의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였다. 한편 일반 대중의 신심생활은 매우 활발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성당의 건립, 자선활동, 신심서의 보급 확대, 모국어성서의 번역, 새로운 신심의 번창(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삼종 기도, 성지 순례 및 성인과 성해공경)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 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 비난과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기에 이르렀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사회의 수사 신부이며,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과 동료 교수 ·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유명한 ‘95개조항의 신학 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전통신앙의 기저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리스도교계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는 종교 개혁시대(1500~1650)를 열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 종교 개혁을 위시하여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국교회가 탄생하였다.

한편 가톨릭도 15세기초부터 교회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그 실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던 중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자극을 받아 교회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콘스탄스 공의회(1414~1417년)와 바젤 공의회(1413~1491년)에서 교회 쇄신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고, 르네상스 교황들도 산발적으로 교회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모두 좌절되거나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교황들과 교황청에 이를 시행할 만한 내적 및 종교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회 쇄신을 위한 공의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 1523~1534)는 공의회 소집을 주저하였다. 그 이유는 교황이 공의회주의, 즉 공의회우위 사상의 재등장을 우려하였고 교황령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27년 5월에 발생한 ‘로마의 함락’ 사건은 교황 바오로 3세(재위 : 1534~1549)에게 교회의 반성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몇 차례의 연기를 거쳐 1545년 12월에 가톨릭의 교회 쇄신 공의회는 트리엔트에서 개최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는 퇴락된 교회에 대해 반성하면서 신앙과 교리를 재정리하고 교회 규율을 혁신하였다.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 교회는 교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교황청을 중심으로 지방 교회와 수도원에서 교회 쇄신에 착수하였다. 트리엔트 개혁 정신은 선교활동에서도 나타났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유럽의 종교’로 머물러 있었던 가톨릭 교회는 교회 쇄신의 일환으로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을 통해서 세계 선교에 나섰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등의 수도회와 예수회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사아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동서양에 걸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가톨릭교회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첫째로 정치적인 면에서 국가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국교회 사상은 특히 프랑스(갈리아주의), 독일(페브로니오사상), 오스트리아(요셉주의)에서 가톨릭 교회를 괴롭혔다. 둘째로 종교적 측면에서 외적으로 경건주의와 엄격주의를 내세우면서 내면으로는 가톨릭 정통 신학을 반대하던 이단운동인 얀세니즘은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셋째로 사상적 측면에서 근세의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한 계몽주의는 신학적 합리주의를 탄생시켜 자연종교, 이신론, 종교적 보편주의는 가톨릭신학에 전면 도전하였다.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는 외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켜 가톨릭 교회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지역에서 그 권위를 상실하였고 세속화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교황청과 지방 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교황청의 승리를 안겨 주었다. 교회는 반가톨릭적 국가에서 단결되었고 국가지상주의와 국교회 사상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운동(교황지상주의)을 일으켰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가톨릭 자유주의는 교회를 내적 혼란 속에 휩싸이게 하였으나 신앙 오류표(Syllabus)의 반포로 인해 외적으로 평온에 들어갔다.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에 대한 신조결정으로 분열되어 독일에서는 ‘구가톨릭 교회’가 떨어져 나갔으며 이른바 ‘문화 투쟁’으로 교회는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하였으나 가톨릭인의 단합으로 결국은 승리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상처받은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였으며 가난해진 교회는 근로대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 1878~1903)는 1891년에 ‘가톨릭 사회주의의 대헌장’ 또는 ‘노동헌장’이라 불리는 칙서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여 근로 대중을 위한 사회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 칙서는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운동을 어느 정도 저지하고 그리스도교 노동조합을 창설, 발전시키며 가톨릭 정신이 구현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적 정당을 탄생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우선 성직자 중심의 교회 체제에서 벗어나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되었으며 ‘평신도 신학’이 정립되어 성직자와 평신도가 교회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교황 요한 23세(재위 : 1958~1963)가 소집하여 교황 바오로 6세(재위 : 1963~1978)가 마무리 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이다. 1959년에 교황 요한 23세는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고 외적으로는 문호를 개방하여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촉진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고 교회법을 개정할 것을 선포하였다. 이 계획은 3년 동안의 공의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며, 1983년에 새로운 교회법이 선포되어 1984년에 발효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동시에 다른 그리스도교와의 일치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도 폭넓은 대화의 길을 모색,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재위 : 1978~ )의 등장은 가톨릭 교회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455년 동안의 전통을 깨뜨리고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현대 가톨릭 교회의 세계화와 더불어 미래 세계를 향한 교회의 획기적 방향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金聖泰)

[참고문헌] Louis J. Rogier, Roger Aubert, M. David Knowles(edd.), Christian Centuries: A New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v.5, London, New York 1964 / Thomas Bokenkotter, A Concis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rev.), New York 1979 / 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revised by Robert T. Handy(3rd ed.), Edinburgh 1976 / 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2vols. (rev.),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London 1975 / Owen Chadwick(ed.), The Pelican History of the Church, 6vols, Harmondsworth 1967-1971 / J.B. Duroselle, E. Jarry(edd.), Histoire de l’Eglise depuis les origines jusqu’a nos jours, 26vols. Paris 1938-1963 / Charles Poulet, Histoire de l’Eglise, 3vols. (rev.), Paris 1959-1962 / H. Daniel-Rops, Histoire de l’Eglise de Christ, 10vols. Paris 1948-1968 / K. Bihlmeyer, H. Tuchle, Kirchengeschichte, 3vols.(18th ed.), Paderborn 1962-1966 / Hubert Jedin(ed.), Handbuch der Kirchengeschichte, 6vols., Freiburg i. Br., Basel, Wine 1962-1971 / Joseph Lortz, Geschichte der Kirche in ideengeschichtlicher Betratung, 2vols.(21th rev.), Munster 1962-1964 / August Franzen, Kleine Kirchengeschichte(3rd ed.), Freiburg i. Br., Bacel, Wien 1970 / 최석우 역, 敎會史, 분도출판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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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분열 [한] 敎會分裂 [관련] 이교1

⇒ 이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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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전 [한] 敎會法典 [라] Codex Juris Canonici [영] Code of Canon Law [관련] 교회법

공번된 가톨릭 교회로서 모든 교회들이 준수해야 할 교회법규들을 담은 책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법전은 1582년 파리에서 발간된 교회법령집 ≪Corpus Juris Canonici≫에서 기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교령집 혹은 법규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140년 그라시아노는 이때까지의 전통적 법령집들을 집대성하여 ≪그라시아노 법령집≫이라 불리는 ≪Concordia discordantium canonum≫을 완성하여 교회법의 근거, 성직 임명, 성직자 추천선거, 소송절차법, 교회재산, 이단, 전례, 성사, 준성사 등의 법령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법령집에 몇몇 교령집을 첨부하여 재편찬한 것이 바로 ≪Corpus Juris Canonici≫로서 구로마교회법전이라고도 한다. 그 뒤 트리엔트 공의회(1545~1963년) 중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교황청 행정기구가 구성되어 통일된 교회법 체제를 갖고 각 분야별로 법전이 발전되어 갈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1917년에 와서야 구로마교회법전 외의 여러 분야의 교회법 자료들을 수합하여 ≪Codex Juris Canonici≫가 공포되었다. 신로마교회법전이라고 하는 이 법전은 1904년 성 비오 10세가 총칙(universal norms), 교직제에 관한 법(personal law), 교회사물에 관한 법(law of things), 형벌법(penal law), 교회재판소송법(procedural law) 의 내용으로 입안하였던 것으로 총 2,414개 조항이 들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와 그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에 따라 법전의 적지 않은 부분이 개편되었고, 공의회정신에 따른 새로운 법전이 1983년 1월 25일에 공포되어 같은 해 11월 27일부터 발효되었다. (⇒) 교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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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인 [한] 敎會法人 [영] juridical person in the Church

자연인이 아니나 교회법상 인격이 주어진, 권리 및 의무의 주체를 말한다. 사도좌에 의해 획득되어진 교회사법인 및 교회공법인의 권리나 특권은 교회법에 의해 명백히 폐기되지 않는 한 손상되지 않는다. 교회법인은 사도좌와 지역교회들과 같이 법에 따라 세속적 재산을 획득, 보존, 관리, 처분할 수 있으며 교황청의 지상권 하에서 어떤 재산의 소유권은 그것을 합법적으로 획득한 그 법인에게 속하게 된다. 교회법에서 교회란 사도좌 혹은 가톨릭 교회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직접 설립한 여러 공법인(公法人)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교회공법인의 재산, 즉 교회재산은 그것이 특별히 교회법전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먼저 그 법인의 정관(定款)에 의해 통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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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법 [한] 敎會法 [라] ius canonicum [영] canon law

교회법은 넓은 의미에서 교회에 관련된 모든 교회의 법(ius ecclesiasticum)을 말할 수도 있겠으나, 본의미의 교회법은 카논법(ius canonicum)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교회법(ius canonicum)은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종교법(ins ecclesiasticum)과는 전혀 다른 법계(法界)를 이루고 있다. 종교법(宗敎法)은 한 국가의 종교문제를 다루는 국내법으로서의 교회법을 말하거나 또는 교회와 국가간의 정교조약(政敎條約)을 말하기 때문이다. 교회법은 그리스도교 신자단체로서의 교회에 관한 법이며, 교회의 조직과 활동을 규율하는 법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 사회현실인 가톨릭 교회의 전세계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법은 교회가 규정한 순수한 교회의 제정법뿐 아니라, 우리 양심에 부여하신 하느님의 영구법인 자연법(自然法)과 하느님이 성서(聖書)나 성전(聖傳)에 제시하신 신제정법(神制定法)을 포함하고 있다.

1. 교회법의 명칭 : 교회법의 명칭인 카논(kanon)이란 그리스어로 규율 또는 규범이란 뜻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율법을 ‘노모이’(nomoi)란 용어로 표현하였다. 이는 사회의 범규범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의 그리스도 교회는 이와 대칭되는 새로운 믿음의 규범이란 의미로 카논이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바울로 사도는 신앙의 법칙을 말씀하시며(갈라 6:16), 걸어온 관습의 원칙이란 말씀을(필립 3:16) 카논이라 쓰고 계신다. 이에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는 새로운 그들의 믿음의 규범이며 행동의 규범이란 의미로 이 카논이란 용어를 쓰게 되었다. 즉 4세기 니체아 공의회에서부터는 ‘노모이’에 대칭되는 새로운 교회의 규율이란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였으며, 그라시아노(J. Gratianus)는 교회법령이란 의미로 써왔다. 이리하여 차차 이 카논이란 용어가 교회법의 공식명칭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교회법 명칭은 어디에 중점을 두어 그 성격을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교회법의 첫 제정자로 보아서도, 또한 내용과 목적으로 보아서도 ‘거룩한 법’(ius sacrum)이라 부르기도 하며, 법의 기초로 보아 하느님의 법(ius divinum), 입법의 관할법으로 보아 ‘교황청 법’(ius pontificium), 법을 지켜야 하는 대상이나 내용으로 보아 ‘교회의 법’(ius ecclesiasticum)이라 불리기도 한다.

2. 실천신학으로서의 교회법 : 교회법은 그 이름이 뜻하는 바와 같이 교회의 규율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초기 교회는 사도들의 권위를 빌어 실생활을 위한 규범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도들의 가르침(didache)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교회가 발전하고 제도화됨에 따라 4세기부터는 각 지역별 법령집(法令集)들이 나오게 되고, 크게 발전하여 9세기에는 가짜 법령집들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교황 성 그레고리오 7세는 이러한 법령집들을 정비하여 개혁 법령집을 내게 되어 법학으로서의 길을 열었다.

교회법은 조직신학인 교의신학(敎義神學)과는 달리 구분되는 실천신학으로 둘 다 신법을 다루고는 있으나 다루는 기본 요소의 차이를 갖고 있다. 교의신학은 우리 믿음의 대상으로서의 영원한 진리를 탐구하고 제시한다. 반면에 교회법은 교회를 밑받침하고 있는 교의적 진리 사실자체를 제시하고 규범을 추정하고 논함으로써 교회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인간행동에 이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윤리신학은 일반적으로 인간행동에 이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윤리신학은 일반적으로 인간행동의 내적인 동기를 살펴보며, 사회적 윤리나 종교적 윤리 계명에 이런 동기를 어떻게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하느님께 대한 책임성에서 나오는 죄악을 논하게 된다. 윤리규범에 대한 침해는 주로 내정(內廷)에서 다루게 된다. 반면에 교회법은 신자들의 행동을 교회의 외적이고 사회적 질서로서 다루게 된다. 따라서 교회법 규범을 범할 때는 본의미의 범죄를 이루게 되고 외적 판결과 법적 벌이 따르게 된다. 그 책임성의 주안점은 일반적으로 외적 관계이며 법이 바라는 이상을 향하도록 한다.

3. 법학으로서의 교회법 : 실천신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교회법이 12세기에는 차차 법학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마호메트 세력의 압력을 받고 있던 동로마 제국의 많은 문화 유산이 서방으로 넘어오면서, 북이탈리아에 세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의 설립과 함께 법학이 꽃을 피우게 되었다. 12세기는 볼로냐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그라시아노 신부는 교회의 여러 법령집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법학적인 체제를 갖춘 법령집을 집대성함으로써 교회법이 법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였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법학의 전문가였던 교황들이 이에 이어 계속 공식법령집들을 발표하여 중세 교회법의 전성을 이루게 되었다.

드디어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1582년 교회법 대전집(大全集)을 공포하게 되었다. 로마법에 있어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로마법대전>(~法大全, Corpus Juris Civilis)에 대비할 수 있는 <교회법대전>(Corpus Juris Canonici)을 발표하여 교회법의 통일된 법전을 이룩하였다. 첫 권은 1140년경 이루어진 ≪그라시아노 법령집≫(Decretum Gratiani)으로 비록 사적 법령집이지만 그 때까지 교회 여러 법령들을 법적인 체계를 갖추어 정리한 것으로, 수록된 이 구법령에 의한 법적 효력 밖에는 없었으나 큰 권위를 갖고 있었다. 둘째 권은 그레고리오 9세 교황께서 1234년 ≪그라시아노 법령집≫ 이후의 법령을 모아 편찬하여 공포한 ≪그레고리오 9세 칙령집≫이다. 이는 공적 법령집이다. 셋째 권은 1234년 이후 16인의 교황들이 수많은 칙령 등을 반포하여 다시금 잡다하게 되어 불편을 겪게 되자 법학에 정통한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그레고리오 9세 칙령집≫ 이후에 반포된 법조문을 모아 1298년 ≪보니파시오 8세 법령집≫을 공포하였다. 공식 법령집으로 그 때까지의 모든 법령들을 폐기하였으며 ≪그레고리오 9세 칙령집≫ 다섯 권에 이은 법령집이란 뜻에서 여섯째 권(Liber Sextus)이라고도 불린다.

넷째 권은 아비뇽에 체류했던 첫 교황 글레멘스 5세는 자신과 선임 교황들의 칙령과 비엔 공의회 결정을 모아 편찬하여 1314년 공식 공포하였으나 단 며칠 뒤 서거하였다. 따라서 그의 후계자인 요한 22세는 1317년 이를 다시 공식 반포하였다. 이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의 여섯째 권에 이은 일곱째 권(Liver Septimus)이라고도 불린다. 공적인 법령집이나 배타적으로 다른 법령집들을 폐기하지는 않았다. 그밖의 다섯째 및 여섯째 권은 두 개의 누락된 법조문 법령집들(Extravagantes)이다. 첫째는 요한 22세의 누락된 법조문 법령집(Extravagantes Joannis XXII)인데 이는 1325년 요한 22세의 여러 칙령 중 20개를 시대순으로 모아 주해를 붙인 것이고, 두 번째 공통된 누락 법조문 법령집(Extravagantes Communes)은 1500년 보니파시오 8세 이후 식스토 4세에 이르기까지의 70여개의 칙령을 공식 법령집에 시대순으로 부록처럼 첨가한 것이었다. 이 둘은 사사로이 편찬된 것이며 공식법령집은 아니다.

이 <교회법 전집>에 포함된 여섯 권은 각기 동등한 하나의 법령집은 아니다. 이것은 각 부분이 각각 다른 효력을 갖는 여러 법령집들의 합본일 뿐이다. 그러나 전집은 교회법전이 나오기까지 교회법의 주원천(主源泉)이 되어 왔다.

4. 교회법전(敎會法典) :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준비과정에서 이미 교회법전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법전이 나오기 전까지 교회는 많은 입법을 하였을 뿐 아니라 개신교의 대두로 많은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게 되었다. 따라서 중복 혹은 상치되는 법조항들이 너무 많았으며, 법조문 내용이 너무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많았다. 또한 체계적 순서도 잘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폐기된 것도 많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유효한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교회는 체계적 순서와 단순성을 갖춘 간결명료한 현대적 법전 편찬이 요구되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1904년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17년 베네딕토 15세가 전세계에 공포하여, 1918년 5월 19일부터 발효되도록 체계적이고 통일된 법전을 완성하였다. 이 법전은 ≪그레고리오 9세 칙령집≫의 체계(iudex, iudicum, clerus, conubia, crimen)를 따르지 않고, 사회법전과 같이 유스티니아누스 법령집 체계(personae, res, actiones)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제1권은 총칙, 제2권은 인(人), 제3권은 물(物), 제4권은 소송을 다루고, 마지막 제5권에 범죄와 형벌을 다루고 있다. 총 2,414조에 달하는 이 법전은 비록 외적 형태는 사회접전을 따르고 있으나 교회 특성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아직도 많은 윤리 규범을 포함하고 있었다.

5. 새 교회법전 :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교회법도 새로운 변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요한 23세는 1959년 교회법 개편 의사를 발표한 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와 그 정신에 입각한 바오로 6세의 점진적 개혁이 결실을 맺어, 1983년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교회법전을 공포하였다. 이 법전은 과거의 법전과는 달리 더 이상 윤리규범을 다루지 않고 순수한 법전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의 현세 사회단체이기는 하지만, 세례로부터 시작되는, 즉 성사(聖事)로써 질서지어져 있는 ‘하느님 백성’을 위한 것으로 교회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교회직무를 명확히 드러내도록 구성하고 있다.

제1권 총칙은 교회법도 하나의 법체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제2권은 하느님 백성, 즉 교회의 인적 구성을 논하고 있다. 제3권은 교회의 고유한 가르치는 직무를, 제4권은 교회 성화 임무를, 제5권은 교회의 재산법을, 제6권은 형법을, 제7권은 재판법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총 11,752조에 달하는 이 새 교회법전은 비록 외적인 구성에 있어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하느님 백성의 구원을 위한 고유한 법으로서의 특성을 드러내도록 구성하고 있으나, 전의 법전보다는 좀 더 법규범에 따른 간소한 법전이 되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 새 법전은 교회 대림 첫 주일(1983. 11. 27)부터 전 세계 가톨릭 교인들에게 법적 효력을 발하게 되었다. (朴俊榮)

[참고문헌] 정진석, 敎會法源史, 분도출판사, 왜관 1975 / V. Del Giudice, Nozioni 야 Diritto Canonico, Giuffre, Milano 1970 / M. Da Casola, Compendio 야 Diritto Canonico, Marietti Torino 1967 / G. Michiels, Normae Generales Juris Canonici, v.1, Desclee et Socii, Paris 1949 / J.A. Abbo, The Sacred Canons, v.1, Herder, St. Louis 1952 / A. Jacobbi, Storia del Diritto, Canonico, Ascoli Piceno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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