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칼리즘 [영] syadicalism [프] syndicalisme [관련] 노동운동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혁명적인 노동조합주의을 말한다. 주로 프랑스에서 성행하였고, ‘생디카’(勞動組合, syndicat)를 새로운 사회에서의 중심체로 파악, 전국적인 총파업(general strike)을 통해 자본주의를 붕괴시키고, ‘생디카’를 생산과 분배의 기본단위로 하자는 이론으로 프루동(Pierre-Paul Prudhon, l758~1823)을 이론적 시조로 하고 있다. 신디칼리즘의 대두는 당시 프랑스 자본주의의 발전단계에 따라 나타났는데, 그 이념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1906년의 <아미앙헌장>이다. 이에 따르면 신디칼리즘은 상품불매, 태업, 파업, 총파업 등 일상투쟁을 통해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등 직접적 성과를 얻어 냄으로써 노동자의 단결을 꾀하고, 노동자의 지위를 향상하며, 자본가의 수탈에 대한 전면적 해방을 목표로 한다.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은 총파업이며, 현재에는 저항집단인 ‘생디카’는 장래 생산과 분배의 기초단위가 되고 사회를 재조직하는 기반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아미앙선언은 정당정치를 통한 사회개혁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자 자본가계급에 의해 노동자들에게 행사되고 있는 일체의 도덕적 물리적인 착취와 억압수단에 대항하여 경제적 영역에서 노동자로 하여금 저항하도록 하는 계급투쟁에 대한 확인이었다. 그러나 신디칼리즘은 ‘생디카’가 경제적 요구에만 안주하여, 정치적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노동조합주의와는 다르다. 다만 정당의 입김이 노동조합에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일 뿐이다. 프랑스에서의 신디칼리즘은 1906년에서 1913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때의 참전(參戰)으로 인해 노동자에게서 등돌림을 당하였다. l908년 신디칼리스트들은 권력자들에게 “국제적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노동자계급은 총파업으로 보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가, 전쟁이 발발한 1914년에는 “우리가 전쟁으로 향함을 당연하도록 하게 하는 것은 독일만중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증오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어쨌든 1차 세계대전은 이제까지 신디칼리즘이 제시했던 유토피아적 환상을 부숴버렸다. 이후 신디칼리즘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주류에서 탈락하였다. (⇒) 노동운동

[참고문헌] M.R. Clark, A History of the french Labor Movement, Berkeley l930 / W.Y. Elliott, The Pragmatic Revolt in Politics: Syndicalism, Fascism and the Constitutional State, New York l928 / 프랑스노동운동사, 광민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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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들의 총체 [한] 信徒~總體 [라] universitas fidelium [영] university of the faithful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의 무류성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용어. “성령의 도유(塗油)를 받는 신도들의 총체(1요한 2:20 · 27)는 믿음에 있어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니 주교로부터 마지막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가 신앙과 도덕에 관하여 같은 견해를 표시할 때에 백성 전체의 초자연적 신앙감에서 이 특성이 드러난다(교회헌장 12)”고 한다. 이는 하느님의 백성이 영위하는 신앙생활의 전체가 살아있는 전통을 이루고, 이 전통안에 성령께서 진리의 수호자로 항상 계시므로, 모든 신도는 계시의 신비에 대하여 그르칠 수 없는 믿음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를 이루는 신도들의 총체가 지니는 무류성은 교도권의 무류성의 근본이다. 목자들도 목자이기 전에 신자이며 가르치기 전에 믿는 사람들이므로 그들 봉사직의 무류성은 교회의 무류성의 특수한 발로이며 교회의 신앙의 무류성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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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도리 [한] 信德道理 [관련] 교의

교리 중에서 반드시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교리 즉 그 교리를 믿지 않으면 이단자가 되는 중요한 교리로 교의(敎義)를 말한다. ⇒ 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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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 [한] 信德 [라] virtus fidei [영] virtue of faith

믿음을 가진 덕이란 의미다. 신학적 의미에서의 신덕은 크게 두 가지로 불 수 있다. 하나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거져 주신 은혜이며 능력으로서 인간은 이 은혜로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인간이 하느님을 신봉(信奉)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때에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계시(啓示)하여 주신 진리를 받아들여 믿고 그를 생활의 규범으로 가지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신앙을 고백하고 선포하며 보호하고 더 깊이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는 태도를 종합해서 말한다. 따라서 신덕에 위배되는 행위에는 배교, 불신, 이교, 열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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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본당 [한] 新堂洞本堂

1948년 명동본당 산하로서 공소(公所)형식의 신당동 분당(分黨)으로 출발, 그 해의 12월 초대 본당주임 조인원(趙仁元, 빈첸시오) 신부가 부임하여 본당으로 창설되었고 귀속 재산 가옥(약 50평)을 사들여 성당으로 삼고, 1949년 5월 조 신부 집전으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6.25전쟁 때인 1950년 11월 2대 주임으로 발령을 받은 신원식(申元植, 루가) 신부는 1951년 8월에야 피란지 경주(慶州)에서 상경, 부임하였다. 1954년 3대 본당주임 김창문(金昌文, 요셉) 신부가 부임, 1956년 7월 현 대지(326평)에 한국 최초의 현대식 블록조 성당(건평200평)이 낙성, 1960년에는 문화관 및 사무실 건물(150명)이 준공되었다. 한편 적극적인 전교활동의 결과 신자수가 급증됨에 따라 1958년 천호동(千戶洞)본당, 1962년에는 금호동(錦湖洞)본당을 각각 분리 독립시켰고, 1959년에는 팔당(八堂)에 본당묘소(약 8만 5,000평)를 마련하였다. 5대 양기섭(梁基涉, 베드로) 신부는 1971년 구 성당 자리에 새 성당(건평 114평)을 신축 준공시켰다. 8대 이계중(李啓重, 요한) 신부는 1977년에 부임 후 가난한 변두리지역 구파발본당의 건립지원금(4,000만원)을 모금해 보내주었고, 1980년 신학생 후원회 기금(2,000만원)을 조성하였다. 이 본당의 주보는 성녀소화 데레사, 신자수는 6,888명(1983년 현재), 현재 주임은 김득권(金得權, 굴리엘모) 신부이며,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전교수녀가 상주하여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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